2부: 현재 - 어촌에서의 삼각관계
# 『바람이 먼저 인사를 했다』
그 마을은 서울에서 기차와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며 거의 하루가 걸리는 해안가였다. 새마을호를 두 번, 무궁화호를 한 번, 그리고 시외버스와 농어촌버스까지. 마지막엔 작은 산길을 걸어 내려가야 도착할 수 있는, 말 그대로 땅끝이었다.
연수원에서 일주일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나온 나에게, 이곳은 마지막 선택지였다. 아버지도, 서영도, 그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곳.
펜션은 바다를 마주한 언덕 위에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기로 했다. 펜션 어머니는 나를 '잠깐 일하러 내려온 도시 청년'으로만 받아들였다. 내 과거를 묻지도, 미래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나는 스스로를 숨겼다. 자격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는 청년. 모든 것이 무너진 뒤의 휴지기. 그냥 조용히 머무르다, 조용히 떠나기 위한 땅이 이곳이었다.
펜션 아래로 내려가면 작은 방파제가 있었고, 그곳에서 나는 매일 아침 커피를 들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나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멈춘 듯 흘러가던 어느 날, 그녀가 도착했다.
유나.
처음엔 아무도 그녀가 누군지 설명하지 않았다. 펜션 어머니의 딸이라고만 했다.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다 방학을 맞아 내려온 것. 그녀는 거기에 딱 어울리는 말끔한 청바지와 하얀 셔츠, 깔끔한 단발머리의 여성이었다.
처음 말을 건 건 그녀였다.
"이 시간에 늘 저기 있던 사람, 당신이었어요?"
그녀는 커피를 든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은 인사.
그녀는 가만히 옆에 앉더니, 신발을 벗고 방파제 끝으로 발을 내밀었다.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바다를 함께 바라봤다. 말이 없었지만 어색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조용했고, 뭔가 단단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유나라는 이름. 이름은 상관없다는 내 대답.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녀는 가끔 방파제 아래로 내려왔고, 우리는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서로에 대해 묻지 않았고, 굳이 알지도 않았다.
그 평온한 일상은 보름쯤 이어졌다. 그런데 어느 날, 펜션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얘, 네 신원이 좀 이상해?"
"무슨 말씀이세요?"
"아르바이트생 받을 때는 신원조회 차, 집에 전화를 하는데, 네 아버지란 사람이 무척 화를 내더라. 연수원에서 도망쳤다며?"
나는 답하지 않았다.
"뭐, 네 사정은 모르겠지만... 집에서 찾고 있더라. 혹시 누가 물어보면 모른다고 할 테니 걱정은 말고."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전화로 인해 내가 발각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유나는 매일 오후 3시 50분에 방파제로 내려왔다. 기차가 지나가기 10분 전이었다. 기차 소리가 들리면, 그녀는 손을 들어 멀리 사라져 가는 기차에게 인사했다.
"왜 기차에 손을 흔들어요?"
혹시나 해서라는.. 그녀의 답. 기차 안에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 그 순간, 나는 그녀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마음.
그녀가 내 손을 잡아 위로 올렸다. 그 순간, 기차가 지나갔고,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어떠냐는 그녀의 물음에 별로 달라진 건 없다고 답했을 때, 그래도 누군가는 봤을 거라는 그녀의 말. 그럼 된 거라는 말.
그 후로 나도 기차에게 인사하는 습관이 생겼다. 유나와 함께 있을 때만.
그것이 반복되자, 나는 그 시간이 하루의 중심축이 되어버렸음을 깨달았다.
***
그 후로 우리의 만남은 더 자연스러워졌다. 유나는 경영학과 3학년이었고, 나는 그저 '쉬러 온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과거를 깊이 파고들지 않았지만, 현재의 시간은 나누었다.
"당신은 뭘 좋아해요?"
별로 좋아하는 게 없다는 내 답. 그럼 싫어하는 건 뭐냐는 그녀의 재 질문. 시끄러운 것이라고 했을 때, 그녀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그것이 우리 대화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 간단한 말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이해해가고 있었다.
며칠 후, 유나는 나에게 중요한 말을 했다.
"사실 약혼한 사람이 있어요."
나는 놀라지 않았다. 어쩐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서울에 있는 사람. 떠나 있는 아버지가 정해준 사람. 졸업하면 결혼할 예정.
좋아하는 사람이냐는 내 질문에, 좋은 사람이지만 사랑은 잘 모르겠다는 답.
그녀는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어때요? 사랑해 본 적 있어요?"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서영과의 시간이 사랑이었을까?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무언가 다른 것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그럼. 우리 비슷하네요."
그날 이후,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그것은 연인 사이의 가까움이 아니었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조심스러운 위로 같은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 펜션 어머니가 우리를 불렀다.
"얘들아, 저녁 같이 먹자. 오늘은 내가 특별히 해물찜을 했다."
펜션 어머니의 해물찜은 정말 맛있었다. 신선한 바다의 맛이 그대로 살아있었다. 우리는 조용히 식사를 하며, 가끔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었다.
"유나야, 이 친구 어때?"
펜션 어머니가 갑자기 물었다.
"엄마!"
유나가 얼굴을 붉혔다.
"뭐,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조용하고, 일도 성실히 하고."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펜션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든 자연스럽게 관심을 보이고, 걱정해 주는 사람.
"하지만 약혼자가 있잖아요."
유나가 조용히 말했다.
"약혼이 뭔 대수야. 결혼 전까지는 다 취소도 될 수 있는 거지."
펜션 어머니의 말에 나와 유나는 동시에 얼굴을 마주쳤다.
그날 밤, 유나와 나는 펜션 앞마당에서 별을 보았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맑은 별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말 예뻐요."
유나가 말했다.
"그러네요."
"엄마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뭐가요?"
"약혼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그녀는 나를 돌아봤다. 별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반짝이고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는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날 밤, 우리는 오랫동안 별을 보며 앉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나눈 시간이었다.
***
그날은 갑자기 비가 내렸다.
오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 오후가 되자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유나와 나는 서둘러 펜션으로 향했지만, 이미 우리는 흠뻑 젖은 상태였다.
"어머니가 장에 가셨어요. 저녁에나 돌아오실 거예요."
유나가 말했다. 펜션에는 우리 둘만 남았다.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말. 유나는 2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1층 화장실에서 젖은 셔츠를 벗었다. 하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유나가 계단에서 내려오며, 아버지 옷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마른 티셔츠와 청바지.
그녀는 벽장에서 큰 사이즈의 티셔츠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그때 정전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어둠이 펜션을 덮었다.
"촛불이 어디 있었지?"
유나가 중얼거리며 부엌을 뒤적였다. 나는 그녀를 도우려 했지만, 어둠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었다.
"여기 있어요."
유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작은 촛불이 켜졌고, 펜션 안이 은은한 빛으로 물들었다.
"비가 정말 많이 오네요."
창밖을 보며 유나가 말했다. 정말 폭우였다. 바람도 세게 불어서 창문이 덜컥거렸다.
"오늘은 방파제에 못 나가겠어요."
"그러게요."
우리는 거실 소파에 앉아 촛불을 바라봤다. 빗소리와 촛불의 흔들림, 그리고 우리의 조용한 숨소리만이 들렸다.
"무서워."
유나가 갑자기 말했다.
"뭐가요?"
"이렇게 갑자기 어두워지는 거. 어릴 때부터 어둠이 무서웠어요."
그녀는 내 옆으로 조금 더 가까이 앉았다. 그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내가 여기 있잖아요."
"고마워요."
그때 천둥이 쳤다. 큰 소리에 유나가 깜짝 놀라며 내 팔을 붙잡았다.
"정말 무서워."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괜찮아요. 곧 지나갈 거예요."
하지만 비는 더 세게 내렸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당신과 있으면 편해요."
유나가 조용히 말했다.
"나도요."
"정말요?"
"네."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샴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깨끗하고 따뜻한 냄새.
"이상해요."
"뭐가요?"
"약혼자와 있을 때보다 더 편해요. 당신과 있을 때가."
그 말이 내 가슴 한구석을 건드렸다.
"유나 씨..."
"그냥 유나라고 불러요."
"유나."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촛불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당신도 이름을 말해줘요. 진짜 이름을."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솔직하게 말했다.
"혁지에요."
"혁지."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입술이 맞닿았다.
그것은 서영과의 입맞춤과는 달랐다. 조심스럽고, 따뜻하고, 마치 처음 맛보는 것 같은 떨림이 있었다.
비는 밤새 내렸다. 우리는 촛불이 다 타들어갈 때까지 서로를 안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평안함이라는 것을 느꼈다. 서영과 함께 있을 때의 그 격렬한 감정이 아닌, 조용하고 따뜻한 안정감.
아침이 되어 비가 그치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후회하지 않아요?"
내가 물었다.
"아니요. 당신은요?"
"나도요."
그날 이후, 우리의 관계는 달라졌다. 더 가까워졌지만, 동시에 더 조심스러워졌다.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이 시간이 영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행복했다.
***
며칠 전, 펜션 어머니가 이상한 말을 했다.
"서울에 어떤 여자가 이 마을에 대해 물어봤다더라. 펜션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던데."
나는 그때부터 불안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펜션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있었다. 유나가 받았고, 내 이름을 언급한 통화가 끝난 뒤, 그녀는 복잡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방금 어떤 여자분이 전화했어요. 이름을 말하지 않았는데... 여기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나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그 여자의 말투가...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름을 물었더니 대답은 안 하고, 그냥 전해달래요. '바람은 같은 방향으로 불고 있다'라고."
나는 말없이 창문을 바라봤다. 그 창 너머로, 바다가 있었다. 그리고, 같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서영이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며칠 후, 그녀는 정말로 왔다. 서영. 예고도, 설명도 없이. 펜션 아래의 산길로 천천히 걸어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을 나는 창문 너머로 보았다.
그 순간, 어깨가 굳고 숨이 막혔다. 나는 순간적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검은 긴 머리를 묶지 않고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틈 사이로 옅게 스민 회색빛 선글라스, 그리고 여름인데도 어딘가 더워 보이는 얇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서영은 늘 계절과 어긋난 옷차림을 했다. 그건 옷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가진 기류 때문이었다.
펜션 앞 작은 마당에서 그녀는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아무 말도 없이, 오직 시선만으로. 나는 끝내 눈을 피했다.
펜션 어머니는 그녀를 위한 방을 내어주었다. 유나의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묻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고, 그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내어주는 사람. 그녀는 마치 오래전부터 예약된 사람처럼 짐을 풀었다.
유나는 눈치를 챘다. 뭔가 설명되지 않은 관계, 그러나 말할 수 없는 분위기.
"그 여자, 누군데요?"
유나가 물었다.
"아는 사람이에요."
"연인이었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거짓말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답할 수 없어서였다.
밤이 되자, 서영은 먼저 다가왔다. 그녀는 펜션 뒷마당의 나무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앉은 나는 담배를 꺼냈고, 그녀는 불을 붙였다.
"꽤 멀리 와 있었네."
그녀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말했다.
"찾을 줄은 몰랐어요."
"펜션에서 집에 전화했더라. 그래서 알게 됐어."
그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는..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녀는 나를 돌아봤다. 그 시선 속에는 많은 것들이 묻혀 있었다. 질문, 책망, 후회, 그리고 잊히지 않은 감정.
나는 솔직히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은 너무 늦었고, 너무 많았고, 너무 불필요했다.
"지금은 그냥, 조용히 있고 싶어요."
"그래서 이 바다까지 온 거야?"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바다의 어둠 속에서 부는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광경이었다.
서영은 바다를 등지고, 나를 향해 말했다.
"나, 여기 집 구했어."
"뭐라고요?"
"한 달은 있을 생각이야. 길게 보면 그 이상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그 특유의 조용한 톤으로 선언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너도 묻지 마."
"서영..."
"그리고, 난 네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펜션 방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은 여전히 바람의 일부 같았다. 무언가를 흩트리고, 다시는 원래대로 돌려놓지 않는.
그날 밤, 나는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깨닫고 있었다. 내가 버렸다고 믿었던 시간들이,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유나가,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
10화. 복잡한 삼각관계의 시작
서영이 마을에 정착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녀는 마을 안쪽의 오래된 집을 구해 혼자 살기 시작했다. 펜션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의, 대부분의 집들이 비어있는 골목 안쪽 집이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녀를 피했다. 펜션에서 일할 때도, 유나와 함께 있을 때도, 가능한 한 그녀와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작은 마을에서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느 날 오후, 나는 마을 유일의 동네 슈퍼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안녕."
서영이 먼저 인사했다. 그녀는 장바구니에 간단한 생필품들을 담고 있었다.
"안녕.. 하세요."
나는 어색하게 대답했다.
"잘 지내고 있어?"
"네."
"그 애랑은 어때?"
그 애. 유나를 말하는 것 같았다.
"누구 말씀이신지..."
"펜션집 딸. 예쁘던데."
서영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마치 날씨에 대해 묻듯 담담했다.
"그냥... 친구 사이예요."
"친구."
그녀는 그 단어를 되뇌었다.
"친구면 좋지. 친구는 오래가니까."
그리고 그녀는 계산을 마치고 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날 저녁, 유나가 물었다.
"오늘 그 여자랑 마주쳤어요?"
"네."
"뭐라고 하던가요?"
"별 말 안 했어요."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이 어두웠다.
"걱정되나요?"
내가 물었을 때, 그녀는 솔직하게 답했다.
"조금요. 그 사람... 뭔가 다르잖아요."
정말 그랬다. 서영은 이 마을의 모든 것과 다른 사람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 같았다.
며칠 후, 서영은 마을의 약국에 들렀다. 이 마을 유일한 약사, 하나. 그녀는 과묵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불길한 존재로 여겼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같은 해에 죽었고, 둘 다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영은 그런 소문에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나는 우연히 그들이 함께 걷는 모습을 보았다. 서영과 하나. 두 여자는 말없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마을 사람들도 수군거렸다.
"도시 여자와 독살녀가 붙었네."
"여자끼리 뭘 그렇게 가까이 지내나."
"둘 다 이상한 년들이라 그런가 봐."
그 소문들이 내게는 묘한 불편함을 줬다. 질투심 같은 것이었을까? 나는 확실하지 않았다.
어느 날 밤, 펜션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얘야, 너 조심해라."
"무슨 말씀이세요?"
"그 서울 여자 말이야.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어떤 면에서요?"
"글쎄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냥 느낌이 그래. 우리 유나도 걱정하고 있고."
펜션 어머니의 걱정은 근거가 있었다. 서영이 이 마을에 온 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더 조심스럽게 말했고, 아이들은 그녀가 지나가면 숨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나가 불안해했다.
"그 사람이 왜 여기 왔을까요?"
어느 날 저녁, 유나가 물었다.
"당신 때문인 것 같은데.. 맞죠?"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미안해요."
"사과할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궁금해요. 그 사람이 당신에게 뭘 바라는지."
나도 궁금했다. 서영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날 밤, 나는 서영의 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보였다.
서영과 하나였다.
그들은 무언가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다가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소외감.
나는 이 마을에서 혼자였다. 유나가 있었지만, 그녀는 언젠가 떠날 사람이었다. 서영이 있었지만, 그녀는 이제 내게서 멀어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정말로 외롭다는 것을.
바람이 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그 바람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변화의 전조 같은 것.
무언가 곧 끝날 것 같은 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