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하지 않는 자들』
《그 섬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가》 후기#2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돌아오지 못하는가. 혹은, 우리는 정말 돌아오고 싶은가.
『귀환하지 않는 자들』을 쓰는 동안, 나는 반복해서 한 편의 시를 떠올렸다. 시의 제목은 《What Happened on That Island》. 그곳은 실존하는 섬이 아닐 수도 있고, 실존하는 실험실일 수도 있으며, 혹은 어떤 집단의 기억 속에 남은 '절대로 말해지지 않는 방'일 수도 있다.
시 속의 다섯 남성과 한 여성은, 숫자 그 자체로 폭력을 내포한다. 한 명은 말할 수 없고, 다섯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우리는 견딜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들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기근이었을까? 아니면, 욕망을 마주한 자기 자신이었을까?
The sea had cast them out. Signals vanished into silence. Food ran dry by the fifth day. In five pairs of eyes, only one woman remained.
이 시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나는 한국어 원작이 가진 수학적 정밀함을 보존하려 했다. "cast them out"—버린 것이 아니라 힘으로 내쫓은 것이다. "vanished into silence"—신호들은 단순히 실패하지 않고, 능동적인 공허 속으로 사라진다.
"only one woman remained." 한국어에서 이것은 복수의 세계에서 단수로 살아남은 자의 무게를 담는다. 그녀는 남을 수 있는 인간성이 있다면 그것의 유일한 보관소가 된다.
"I couldn't bear all that this week held."
한국어로는 열여섯 음절. 영어로는 다른 무언가가 된다—더 느슨하고, 더 일상적이지만, 바로 그 평범함 때문에 더욱 파괴적일 수도 있다.
그녀는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다"거나 "일어나고 있는 일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주가 담고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마치 그 주 자체가 용기이고, 그녀가 그 안의 내용물을 본 것처럼.
Her neck was hung. Her skirt was torn.
두 개의 사실. 두 개의 다른 이야기. 첫 번째는 자살을 시사하고, 두 번째는 그 전에 다른 일이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시는 이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다. 단지 두 진실을 제시하고 그것들이 공존하도록 내버려둔다.
"We, too, could no longer endure this week."
한국어는 그녀의 말에 리드미컬한 메아리를 담고 있다—같은 박자, 같은 운율. 영어에서는 이 메아리가 더 미묘해지지만 그만큼 섬뜩하다. 그들은 그녀의 언어를 훔쳤고, 자신들의 정당화를 위해 그녀의 리듬을 전용했다.
"We, too"—마치 그들이 가해자가 아닌 동료 피해자인 것처럼. 마치 그들의 견디지 못함이 그녀의 것과 같은 것처럼.
They unearthed her again. Stripped what remained. Her body had not yet rotted.
여기서 진행은 임상적이고 체계적이다. 각 문장이 공포로 향하는 한 걸음씩이다. "Her body had not yet rotted"—보존된 것도, 신선한 것도 아니라, 단지 "아직 썩지 않은" 것. 부패로 측정되는 시간.
"We can no longer bear this hell."
"이 주"에서 "이 지옥"으로. 언어는 격화되지만 리듬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그들은 여전히 그녀에게서 빌린 박자로 말하고 있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바로 그 지옥에서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Her nails were gone. Her mouth stiff, open.
의미로의 번역을 거부하는 세부사항들. 사라진 손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벌어진 입은 무엇을 보존하는가? 시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말할 수 없는 것의 증거들을 축적할 뿐이다.
Five bodies fell upon a single corpse.
시 전체의 정점. 한 줄로 모든 것을 말하는, 말할 수 없는 장면. 영어에서 "fell upon"은 한국어의 "쏟아졌다"보다 더 무겁고 치명적이다. 떨어짐이 아니라 붕괴.
"Even I can no longer forgive your sins."
신조차 그들의 언어를 쓴다. 한국어에서처럼 영어에서도 신의 말은 인간의 리듬을 따른다. 이것이 이 시에서 가장 섬뜩한 순간이다.
신이 인간의 언어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의 입에 자신들의 변명을 집어넣는 것이다. 신조차도 그들의 서사 속으로 끌어들여진 것이다.
She rose. Breathless, blinking. But no one looked at her. Nor did she look back.
부활은 구원이 아니라 증언이다. 그녀는 돌아왔지만 아무도 그녀를 보지 않는다. 그녀 역시 뒤돌아보지 않는다. 완전한 단절. 영어의 "Nor did she look back"은 한국어의 "그녀도 마찬가지였다"보다 더 의도적이고 최종적이다.
이것이 진정한 귀환의 불가능성이다. 물리적으로는 돌아올 수 있지만, 관계는 영원히 파괴된 채로.
And still, the question remains: What happened on that island? The blood has washed away. But the guilt remains buried deep.
마지막 질문은 여전히 맴돈다. 영어에서 "remains buried deep"은 한국어의 "깊이 묻힌 채 남아있다"보다 더 영구적이다. 깊이 묻혔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죽었지만 살아있다.
그 섬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녀는 누구였는가. 그 다섯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정말 '귀환'할 수 있는가?
나는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한국어로 쓰든 영어로 번역하든, 그 질문은 변하지 않는다. 언어가 바뀌어도 침묵은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남긴다. 하나의 증언이자, 하나의 경고로.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진짜 답을 찾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