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괜한 말이었다는 걸, 말하고 나서야 알았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

# 괜한 말이었다는 걸, 말하고 나서야 알았다

by 망치든건축가



괜한 말이었다는 걸, 말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순간의 찰나, 입 밖으로 나온 말들이 공기 중에서 형태를 갖추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마치 건축 도면에서 실수한 선 하나가 전체 구조를 틀어지게 만드는 것처럼, 그 말은 대화의 균형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


이 이야기를 떠올린 건,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는 말이 문득 생각나서다.


실제로 공자 앞에서 감히 '문자'를 쓴 이는 없었다. 그만큼 공자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지혜의 상징이었고, 그 말은 후대에 생겨난 교만의 우스움을 꼬집는 비유일 뿐이다.


하지만 그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그림자처럼 자신의 생각을 '당연한 옳음'이라 믿고 말 앞세웠던 제자가 있었다. 바로 자로였다. 성급하고, 의기에 넘치고, 때로는 스승보다 앞서려 했던 그 제자.


공자는 자로의 성급함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천천히, 그 성급함이 결국 정의라는 이름을 쓴 교만일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줬다. 말보다 깊은 기다림으로 다가온 가르침이었다.


나는 그날, 자로*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


오늘, 행정사를 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후 세 시쯤이었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작업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의 이름이 화면에 떴다. 전화를 받았다.


건축행정 협의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다. 행위허가, 건축법, 공동주택 관리규정, 주택건설기준... 책 속에서 배울 땐 조문 하나하나가 명확해 보여도 현장은 늘 그 틈에서 다른 리듬으로 움직인다. 나도 그런 걸 경험하며 배워왔던 터였다.


그 친구는 법에 정통한 사람이다. 말도 조리 있고, 나름 잘나간다는 느낌도 풍겼다. 평소에도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날의 질문은 내게 자꾸만 막막함으로 다가왔다.


*


틀린 질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한 내용이었다.


건축을 했던 이의 입장에선 그런 문의를 자주 받는다. 법적 근거는 분명하지만 실무에서는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들, 지자체마다 다른 기준들, 담당자에 따라 달라지는 처리 방식들. 그런 것들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내 조언이 그에게 도달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는 걸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라는 듯한 반응. 혹은 그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말한다는 뉘앙스.


"아, 그건 당연히 알고 있고..."

"그것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실무적으로는 어떤 식으로..."


그의 말들 사이사이에 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마치 내가 제공하는 정보가 이미 그에게는 기본적인 것들이라는 듯한, 그런 느낌.


말을 이어갈수록 어딘가에서 자꾸 길이 끊겼다. 내가 설명하는 것과 그가 듣고 싶어 하는 것 사이에 미묘한 어긋남이 있었다.


*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기분이네."


말끝이 차가웠다. 전화기 너머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내가 뱉은 말의 무게를 느꼈다.


그 말이 그를 향한 게 아니었다는 걸 나도 안다. 사실은, 내 말이 닿지 않는 상황이 괜히 서운했던 거다. 자신이 '전문가'라 생각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허공에다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조언을 했던 게 아니라 요령을, 그 틈 어딘가를 이야기했는데... 투명한 벽에 부딪히는 말들 같았던 시간.


하지만 그것이 내 자존심에서 나온 반응이었다는 걸, 말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


전화를 끊고 나서 마음이 불편했다.


"아,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하며 그가 당황하는 걸 들었지만, 이미 던져진 말은 되돌릴 수 없었다. 대화는 어색하게 마무리되었고, 평소보다 짧게 끝났다.


그 순간의 욱함, 그 말의 온도, 그 불필요한 솔직함.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 있었을까.'

'그냥 들어주기만 했어도 좋았을 텐데.'


카페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구조의 안정성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도 기초가 흔들리면 무너진다.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말의 기초가 잘못되면 모든 걸 무너뜨릴 수 있다.


괜한 오지랖이었구나 싶은 마음.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건, 내 마음이 조용히 고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


돌이켜보니 그날의 나는 피곤했다.


며칠째 작업 때문에 야근을 했고,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에서도 비슷한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내가 제안하는 안에 대해 "이미 다 알고있는 내용이고, 생각하고 있었다"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클라이언트, 하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들.


그런 누적된 스트레스가 친구와의 전화에서 터져나온 것 같았다. 그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단지 전문적인 조언을 구했을 뿐인데, 나는 내 감정을 그에게 투사해버렸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에서 질문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답을 듣고 싶어 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날, 그 당연함을 인정하지 못했다.


*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상대방의 무지함을 조롱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교만함을 경계하는 말이었다.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상대방의 수준에 맞춰 말할 줄 안다. 자신이 아는 걸 자랑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걸 전달할 줄 안다.


공자가 자로의 성급함을 꾸짖지 않았던 것처럼, 진정한 가르침은 기다림에서 나온다.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속도로.


나는 그날, 자로보다 못한 사람이었다. 자로는 적어도 정의를 위해 성급했지만, 나는 자존심을 위해 성급했으니까.


*


며칠 후, 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저번에 전화로 이야기할 때 좀 날카롭게 말한 것 같아서 미안해. 내가 피곤했었나 봐.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답장은 금세 왔다.


"아니야, 나도 좀 까다롭게 굴었던 것 같아. 고맙다."


그 짧은 주고받음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회복 능력인 것 같다. 실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


*


오늘은, 위로받고 싶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완벽하지 않은 나를, 때로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나를, 자존심 때문에 상처받는 나를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나조차 성장의 과정에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다.


건축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들은 완벽한 계획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예상치 못한 조건들, 그것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실수하고, 반성하고, 사과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 그것이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


괜한 말이었다는 걸, 말하고 나서야 알았다.


하지만 그 깨달음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되돌릴 수 없지만, 그 말로부터 배울 수는 있다. 다음에는 좀 더 신중하게, 좀 더 따뜻하게, 좀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는 말했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참 아는 것이니라." 나는 그날,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를 배웠다.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 내 감정을 조절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겸손함을 유지하는 일.


그것들을 모른다는 걸 이제 안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배움의 시작이다.


어쩌면 괜한 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 말을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실수였다. 자로도 그런 식으로 배워갔을 것이다. 성급함으로 실수하고, 깨닫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통해서.


오늘 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하고 싶다. 괜찮다고, 이런 것도 배움의 과정이라고, 내일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주의 청산일기〉Part.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