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효과'에 대한 소고
목요일 오후 3시 17분, 나는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오후였다. 평소보다 손님이 적었고, 바리스타가 에스프레소 머신을 닦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렸다. 나는 문득 손이 멈춘 책 페이지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옆 테이블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사람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50대 정도의 중년 남자였다. 아마도 선후배 관계인 것 같았다. 그들의 대화가 마치 책 속의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내 귀에 들어왔다.
"지금이라도 시작하면 늦지 않습니다." 중년 남자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격려가 담겨 있었다. "저도 마흔에 창업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최적의 타이밍이었어요."
젊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는 완전한 동의보다는 어떤 복잡하고 회의적인 기색이 보였다. 마치 좋은 말인 줄은 알지만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는 듯한 표정.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갸웃했다. 누군가는 늘 말한다. "지금이라도 시작하면 늦지 않다고." 맞는 말이긴 하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출발점이 완벽하게 수평선 위에 놓여 있다고 가정할 때만 말이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가파르게 경사진 언덕 위에서 출발한다. 같은 속도로 걸어도 더 빨리 도착한다. 같은 시간을 투자하고, 같은 강도로 노력해도 결과는 현저히 다르다. 조금 앞서 있던 사람은 "정말 잘한다"는 말을 더 자주 듣는다. 조금 더 선택받는다.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한다. 조금 더 빠르게 성장한다.
그렇게 쌓인 '조금씩'은 언젠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차이가 된다. 마치 복리처럼. 처음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차이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숨이 막힐 정도로 거대한 격차로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마태효과'다. 가진 자가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그 냉혹하고도 자연스러운 법칙.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조용히 생각했다.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내가 재능이 없어서도 아니다. 단지 시작점이 달랐을 뿐이다. 그 단순하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방울씩 떨어지더니, 이내 차분하고 고요한 빗소리로 변했다. 차가우면서도 묘하게 위로가 되는 그런 비. 빗방울들이 창문을 따라 흘러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몇 년 전, 나도 어떤 선배에게 똑같은 조언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늦지 않았어. 지금부터라도 시작해봐. 나도 그랬거든." 그때는 그 말이 따뜻한 희망처럼 들렸다. 마치 어둠 속에서 등불을 발견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선배와 내가 서 있던 출발선은 애초에 완전히 달랐다는 것을.
항상 고민했다. 왜 먼저 창업하고 성공했던 선배의 발자취를 정확히 답습하는데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왜 같은 노력이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까.
비는 더 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카페 안은 더욱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 속에 잠겨 있었다.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다. 노력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보상받을 수 있는 구조'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작은 성취에도 기뻐할 수 있고, 실패에도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자신의 노력이 허공으로 흩어지고 부서지는 소리를 먼저 듣게 된다.
마태효과는 어린 시절에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중년이 되어서도 계속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중력처럼,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한다.
그날 밤, 나는 라이언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치즈테비 색깔의 털을 가진 고양이는 내 무릎 위에서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그의 고르고 평화로운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고양이에게는 출발점의 불공정함이나 사회적 격차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과거가 어땠든,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이 따뜻하고 안전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비교를 그만두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것, 다른 사람의 성공 스토리와 내 상황을 대조하는 것. 대신 구조를 이해하려고 한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이미 기울어져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야말로 올바른 전략의 시작점이니까.
그다음은 조금씩 '내 쪽으로 경사'를 옮겨오는 일이다. 작은 이득을 놓치지 않는 것. 작은 인정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 작은 성취에도 성실히 반응하는 것. 미미해 보이는 기회라도 소중히 여기는 것.
완전히 평평한 땅을 만들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덜 기울어진 곳에서 새로 시작할 수는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구조를 이해한다는 것. 구축됨에 대한 의지를 갖는다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주목하고 있는 방향이다.
라이언의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나는 생각했다. 고양이는 세상의 불공정함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 다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금요일 저녁, 나는 선배와 작은 술집에서 술을 마셔야 했다.
그 술집은 홍대 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한, 카운터 좌석이 여덟 개뿐인 아담한 곳이었다. 재즈가 낮은 볼륨으로 흘러나오고, 마스터는 과묵한 사람이어서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가 깊은 대화를 나누기에 적절했다.
"왜 선배는 '노하우'를 숨겼나요?" 소주를 한 잔 비운 후, 나는 반쯤 농담 반쯤 진담으로 물었다. "아니면 선배가 잘못 알려준 걸까요?"
선배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숨긴 게 아니야. 다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자신의 잔을 바라봤다.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있어."
많이 살아온 건 아니지만, 지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있다.
아니다. 선배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노하우를 의도적으로 숨긴 것도 아니다. 선배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알려주었다.
하지만 선배가 성공했을 때와 지금은 환경이 완전히 다르다. 선배가 20대였을 때 통했던 방법이 지금 20대에게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선배가 30대였을 때의 시장과 지금 30대가 마주한 시장은 이름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선배는 자신이 했던 일들을 정확히 기억한다.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사람을 만났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하지만 그때의 '맥락'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할 수 없다. 당시에는 너무 당연해서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 - 경쟁자의 수, 시장의 크기, 사람들의 관심도, 정보의 양과 질, 사회적 분위기 - 이 모든 것이 지금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내가 창업했을 때는 말이야," 선배가 소주잔을 돌리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경쟁업체가 지금의 십분의 일도 안 됐어. 그때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됐거든. 실행력이야 당연히 중요했지만, 지금처럼 치열하지는 않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많은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인터넷도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아서 정보가 제한적이었어. 지금은 누구나 같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잖아. 그때는 정보 자체가 경쟁력이었는데..."
선배가 "나는 이렇게 했다"고 말할 때, 그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다만 불완전할 뿐이다. 그 시절의 공기, 그 시절의 기회, 그 시절의 예측할 수 없었던 운까지는 전수할 수 없으니까.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마치 자기 자신에게도 처음 하는 말인 것처럼 천천히 대답했다. "본질은 배우되, 방법은 네가 찾아야 해. 그게 답인 것 같아."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 고요했다. 지하철 마지막 차에 몸을 맡기고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때는 되었으나 지금은 되지 않는 이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노하우인지도 모른다.
라이언이 현관에서 나를 맞이했다. 고양이는 과거의 성공 사례에 매달리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과도한 걱정도 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집에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것. 그것이 전부다.
나는 라이언을 안아 올리며 그의 따뜻한 체온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이 답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미래를 과도하게 걱정하지도 않으면서,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 지금의 맥락을 세심하게 읽고, 지금의 조건에 맞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기울어진 출발점에서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빗소리가 위로가 되었다. 모든 것을 씻어내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소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