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독자와 잔여
질문이 사라지면 멈춘다.
쓰기 시작할 때는 질문이 있다. 이 인물은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 이 관계는 어디로 가는가. 이 장면이 왜 필요한가. 질문이 살아있는 동안은 쓴다. 질문이 죽으면 멈춘다.
막히는 것과 멈추는 것은 다르다.
막히는 것은 질문이 있는데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때는 기다린다. 글이 먼저 가기를 기다린다. 며칠이 걸리든 몇 주가 걸리든. 막힘은 질문이 너무 깊어서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다. 질문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멈추는 것은 질문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이미 답을 알아버린 것이다. 인물이 어디로 갈지 안다. 장면이 어떻게 끝날지 안다. 그 앎이 생기는 순간 긴장이 사라진다. 긴장이 없으면 밀도가 없다. 답을 아는 순간 탐색이 끝난다. 탐색이 끝나면 쓰기도 끝이다.
그때는 쓰지 않는다.
억지로 쓰면 문장이 죽는다. 결말을 알고 쓰는 문장은 그쪽으로 기운다. 기운 문장은 독자를 끌지 못한다. 독자는 작가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작가가 아는 것을 설명 듣는 것만큼 지루한 것은 없다.
그러니 멈추는 것이 맞다.
질문에도 종류가 있다.
표면 질문은 사건의 전개에 대한 것이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 이런 질문은 쉽게 답이 나온다. 한두 장면 쓰면 해결된다. 표면 질문은 플롯의 질문이다. 플롯은 풀리기 위해 존재한다.
구조적 질문은 다르다.
이 관계의 본질이 무엇인가. 이 침묵이 왜 유지되는가. 이 비대칭이 왜 안정적인가. 이런 질문은 끝까지 간다. 소설이 끝나도 완전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구조적 질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변주될 뿐이다. 같은 질문이 다른 각도에서 반복된다.
나는 구조적 질문으로 쓴다.
표면 질문만 있으면 쓰지 않는다. 그것은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다. 사건 나열은 플롯이다. 플롯은 예측 가능하다. 예측 가능한 것은 긴장이 없다. 독자가 다음을 예상할 수 있으면 읽을 이유가 없다.
구조적 질문이 있을 때만 쓴다.
그 질문이 변주되면서 끝까지 가는 것. 답이 나오지 않은 채로 끝나는 것. 그 끝나지 않음이 잔여가 된다. 독자도 답을 모른다. 작가도 답을 모른다. 그 모름이 함께 남는다.
그런데 가끔 구조적 질문도 죽는다.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답을 알아버린다. 이 관계는 이렇게 작동한다. 이 침묵은 이런 의미다. 그 순간 긴장이 끝난다. 더 이상 탐색할 것이 없다. 알아버렸기 때문에. 질문이 해결되는 순간 그 질문은 죽는다.
그때 멈춰야 한다.
멈추지 않고 계속 쓰면 설명이 된다. 내가 이미 아는 것을 문장으로 풀어놓는 것. 그것은 에세이도 소설도 아니다. 해설이다. 해설은 죽어있다. 해설은 독자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독자를 멀어지게 한다.
그래서 나는 쓰기를 멈추는 것을 배웠다.
과거에는 끝까지 썼다. 질문에 답이 나와도 썼다. 완결해야 한다고 믿었다. 시작한 것은 끝내야 한다고. 그렇게 쓴 것들은 뒤로 갈수록 약해졌다. 앞부분은 살아있는데 뒷부분은 죽어있었다. 앞에서는 탐색하고 뒤에서는 설명했다.
지금은 멈춘다.
질문이 죽으면 거기서 끝이다. 완결되지 않아도 된다. 독자가 불편해도 된다. 작가가 답을 모르는 채로 끝나도 된다. 그것이 정직하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보다 모른다고 멈추는 것이 낫다.
멈추는 것이 포기가 아니다.
질문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며칠 후. 몇 달 후. 다른 각도에서 질문이 돌아올 수 있다. 그때 다시 쓴다. 그 전까지는 그냥 둔다. 질문이 죽었다고 영원히 죽은 것은 아니다. 질문도 휴면한다.
무언가를 그냥 두는 것.
해결하지 않고 두는 것. 완결하지 않고 두는 것. 그것이 어렵다. 작가는 끝내고 싶어 한다. 마무리하고 싶어 한다. 그 욕망이 죽은 문장을 만든다. 완결의 욕망은 강하다. 하지만 그 욕망을 따르면 질문이 죽어도 계속 쓰게 된다.
나는 그 욕망을 참는다.
질문이 살아있을 때만 쓴다. 질문이 죽으면 멈춘다. 그것이 전부다. 방법론이 없다. 감각만 있다. 질문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를 아는 감각. 그 감각은 논리로 확인할 수 없다. 가슴이 먼저 안다.
그 감각은 가슴이 안다.
질문이 살아있으면 가슴이 열린다. 다음 문장이 궁금하다. 어디로 갈지 모른다. 그 모름이 두렵지 않고 흥분된다. 열림은 탐색의 신호다.
질문이 죽으면 가슴이 닫힌다.
다음 문장이 의무처럼 느껴진다. 어디로 가는지 안다. 그 앎이 무겁다. 닫힘은 멈춤의 신호다. 더 쓰지 말라는 신호다.
무거울 때 멈춘다.
그런데 때로는 무거운데도 쓸 때가 있다. 완결의 욕망이 강할 때. 독자를 위해서라는 핑계를 댈 때. 그렇게 쓴 문장은 나중에 지운다. 무거울 때 쓴 것은 결국 지워진다.
쓰기를 멈추는 것에 대해 쓰면서 지금 이 문장도 멈춰야 할 것 같다.
질문이 죽었다. 더 쓸 것이 없다. 억지로 쓰면 반복이 될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멈춘다. 질문이 다시 살아나면 그때 다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