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독자와 잔여
IV. 독자와 잔여
가슴이 먼저 안다.
문장이 맞는지 틀렸는지. 밀도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눈으로 읽기 전에 가슴이 판정한다. 조여오면 오류다. 열리면 압력이다.
이것을 설명하면 틀린다.
설명하는 순간 개념이 된다. 개념이 되면 감각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이 편을 쓰고 있다. 설명하지 않으려 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그 모순을 안다. 그래도 쓴다. 감각을 언어로 옮기려는 시도 자체가 모순이지만 쓰지 않으면 전달할 수 없으니까.
조여온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슴이 답답하다. 호흡이 얕아진다. 뭔가 막힌다. 이 문장이 잘못되었다. 이 단락이 기울었다. 이 장면의 밀도가 새고 있다. 논리로 따지기 전에 몸이 거부한다.
왜 그런가.
설명할 수 없다. 다만 경험으로 안다. 조여올 때 쓴 문장은 나중에 다시 읽으면 문제가 있다. 리듬이 어긋나 있거나. 온도가 틀렸거나. 압력이 빠져나갔거나. 가슴이 먼저 감지한 것이 맞았다. 논리가 분석하기 전에 감각이 이미 판정을 내린 것이다.
열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슴이 확 트인다. 호흡이 깊어진다. 다음이 궁금하다. 이 문장이 맞다. 이 단락이 제자리에 있다. 이 장면이 살아있다. 논리로 확인하기 전에 몸이 인정한다.
이것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경험으로 안다. 열릴 때 쓴 문장은 나중에 다시 읽어도 손대지 않는다. 이미 완성되어 있다. 밀도가 유지되어 있다. 가슴이 판정한 것이 맞았다. 감각의 판정이 논리의 분석보다 정확했다.
그러니 나는 가슴을 믿는다.
논리는 나중에 확인한다. 가슴이 먼저 판정하고 머리가 나중에 따라간다. 반대로 하면 안 된다. 머리로 판단하고 가슴으로 확인하려 하면 이미 늦다. 논리가 개입한 순간 감각은 흐려진다. 논리는 감각을 사후적으로 추인할 뿐이다. 감각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논리가 뒤늦게 설명한다.
가슴의 판정은 즉각적이다.
문장을 쓰는 순간 안다. 이것이 맞는지 틀렸는지. 조여오거나 열리거나. 중간이 없다. 애매한 것은 없다. 애매하다고 느껴지면 그것은 조여오는 것이다. 열림은 명확하다. 열림에는 의심이 없다.
그런데 가슴도 틀릴 때가 있다.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피곤하면 조여오는 것이 많아진다. 모든 문장이 틀려 보인다. 그때는 쓰지 않는다. 판정을 신뢰할 수 없으니까. 감각도 신체 상태에 종속된다. 몸이 무너지면 감각도 무너진다.
반대로 흥분하면 열리는 것이 많아진다. 모든 문장이 맞아 보인다. 이것도 위험하다. 다음 날 다시 읽으면 절반은 틀렸다. 감각이 흥분에 취해 오판한 것이다.
그래서 판정을 두 번 한다.
쓸 때 한 번. 다시 읽을 때 한 번. 두 번 다 열리면 통과한다. 한 번이라도 조여오면 고친다. 고치고 나서 다시 판정한다. 열릴 때까지. 이중 판정이 오류를 줄인다. 첫 번째 감각이 틀렸다면 두 번째 감각이 잡아낸다.
이것이 비효율적인가.
모르겠다. 다른 방법을 모른다. 논리로 판단하는 방법도 있다. 이 문장의 구조가 맞는가. 이 리듬이 적절한가. 이 배치가 균형 잡혔는가.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논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논리적으로 완벽해도 죽은 문장이 있다.
구조도 맞고 리듬도 맞고 배치도 맞는데 밀도가 없다. 그때 가슴이 조여온다. 논리는 통과인데 감각은 오류다. 나는 감각을 따른다. 논리가 승인해도 감각이 거부하면 그 문장은 틀렸다.
왜냐하면 독자도 가슴으로 읽기 때문이다.
독자는 논리로 문장을 분석하지 않는다. 읽으면서 느낀다. 조여오거나 열리거나. 그 느낌이 전부다. 논리적으로 완벽한 문장이 독자의 가슴을 조이면 그 문장은 실패다. 독자의 감각이 최종 판정자다.
그래서 나는 가슴으로 판정한다.
조여오면 오류다. 열리면 압력이다. 이 두 문장이 전부다. 방법론이 없다. 매뉴얼도 없다. 체크리스트도 없다. 감각만 있다.
그 감각을 어떻게 키우는가.
많이 쓴다. 많이 읽는다. 많이 고친다. 조여왔던 문장을 고쳐서 열릴 때까지 반복한다. 그 반복 속에서 감각이 예민해진다. 조여오는 것과 열리는 것의 차이가 더 명확해진다. 감각은 훈련으로 정교해진다. 하지만 그 정교함도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틀릴 때가 있다.
그리고 신뢰한다.
가슴이 조여온다고 할 때 의심하지 않는다. 논리로 설득하지 않는다. 그냥 고친다. 가슴이 열릴 때까지. 그 신뢰가 감각을 더 정교하게 만든다.
조여오면 오류다. 열리면 압력이다.
이 두 문장을 믿는다. 다른 기준이 없다.
그런데 때로 이 기준도 흔들린다. 조여오는데 다음 날 열릴 때가 있다. 열렸는데 나중에 조여올 때가 있다. 감각도 완벽하지 않다. 감각도 오판한다.
그래도 이것을 버릴 수 없다. 논리는 더 자주 틀리니까. 감각이 틀려도 논리보다는 덜 틀린다. 완벽한 기준은 없다. 덜 틀리는 것을 선택할 뿐이다.
그리고 가슴이 판정할 때 나는 가장 나답다. 논리로 계산할 때보다. 감각으로 쓸 때가 내가 쓰고 싶은 것에 가깝다.
조여오면 오류다. 열리면 압력이다. 이 두 문장을 계속 믿는다. 틀릴 때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