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식의 연대기 ― 외전: 불확실한 벽 너머_작가의 말

작가의 말 _ 글은 축조된 사유다

작가의 말 _ 글은 축조된 사유다



이즈음에 부쳐, 몇 마디 적겠습니다.


이 글에는, 구조상 유독 한자어와 외래어, 그리고 분해된 개념들이 혼입 되어 있습니다. 아마 읽는 이가 체감하듯 그러할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의미가 단단하고, 때로는 문장 안에 여백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글이 '쓰인 것'이 아니라 '지어진' 글이기 때문입니다.


건축이 단순히 구조물을 올리는 일이 아닌 것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단어들을 나열하는 일이 아닙니다. 글을 '짓는다'는 것은, 사유를 재료 삼아 공간을 설계하는 일입니다.


*


벽돌이 석재나 유리블록과 구별되듯—같은 '쌓는' 행위를 가지지만 전혀 다른 질감과 공명을 가지듯—각 단어와 개념은 고유한 질감과 자리를 지닙니다. 모든 문장은 그것이 놓여야 할 정확한 위치를 기다리고 있었고, 저는 그들에게 묻는 일로 이 글을 시작했습니다.


"벽돌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벽돌은 말했다. 나는 아치가 되고 싶어."
— 루이스 칸


이 글 역시 그런 방식으로 축조되었습니다. 저는 단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이 문장의 기초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이 의미의 종점에서 빛을 받는 창(窓)이 되고 싶은가?"


단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침묵**은 하나의 구조를 이뤘고, 그 구조는 점차 공간이 되어갔습니다.


*


언어에는 번역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독일어의 'Fernweh'(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를 한국어로 완전히 옮길 수 없듯, 일본어의 'わびさび'를 서구의 미학 용어로 환원할 수 없듯, 어떤 개념들은 그 고유한 언어적 토양에서만 온전히 피어날 수 있습니다.


메를로퐁티가 말한 "살(chair)"의 개념처럼, 언어와 세계, 주체와 대상이 분리되기 이전의 원초적 얽힘이 있습니다. 이 글은 그런 얽힘의 상태에서 쓰였습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교회처럼, 필요한 곳에는 단단한 콘크리트 벽이 있고, 명상이 필요한 곳에는 빛이 스며드는 틈새가 있습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의 의미가 생기고, 침묵이 있어야 소리의 가치가 드러납니다.


*


매일 오전, 커피를 마시며—정확히는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설탕 없이—저는 어제 쌓아둔 단어들을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단어는 제자리에 있었고, 어떤 단어는 밤사이 조금 이동해 있었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에 있고 싶니?" 단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리'를 찾았습니다.


"재료는 말을 하지 않지만,
우리가 귀를 기울인다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카를로 스카르파



*


이 글은 독자 여러분을 위한 공간입니다. 누군가는 이 회랑 같은 문장을 걸으시다가, 낡은 감정의 벽에 기대어 쉬실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이 구절의 틈새로 새어드는 빛을 따라 자신의 내면으로 이어지는 문을 찾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 글은 '읽히기'보다, 걸어야 하고, 체험되어야 하며, 공명되어야 합니다. 라캉이 말한 것처럼, 진정한 만남은 예상된 곳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틈새에서, 우연히, 불현듯 일어납니다.


이것은 여러분께서 지으실 '건축'이자, 여러분께서 살게 되실 '생각의 방'입니다.





사유의 건축



이 글은 쓰이지 않았습니다. 지어졌습니다. 단어는 쌓였고, 문장은 벽이 되었으며, 의미는 창처럼 열렸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에 있고 싶니?" 단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리'를 찾았습니다.


"재료는 말을 하지 않지만,
우리가 귀를 기울인다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카를로 스카르파



이 글은 도면이자 회랑, 축조된 생각의 구조물입니다. 삶의 먼지들이 천천히 앉는 곳입니다. 사유의 발자국이 반향을 남기는 복도입니다.


읽는다는 것은 이 회랑을 걷는 일입니다. 멈추어 서는 일이며, 빛이 드는 틈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어쩌면 길을 잃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길 잃음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문장은 여러분의 거처가 될 수 있습니다. 혹은, 한때 여러분께서 지나쳤던 구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출입구이며, 저의 내면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함께 걸을 수 있는 산책로이기도 합니다.


"벽은 울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울 때, 벽은 그 눈물을 기억한다."
—알바 알토


그런 종류의 기억을 가진 벽들로 이 글은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벽들 사이로, 여러분께서 걸어 들어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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