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식의 연대기 ― 외전: 불확실한 벽 너머_작가서문

작가서문_도면은 늘 한 장 모자란다

작가서문 ― 도면은 늘 한 장 모자란다



그 이야기는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으나, 이제야 종이에 도면처럼 펼쳐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사라진 입면도(立面圖)의 여백에 이 글을 적고 있다.


여러분께서 이 세계에 들어서게 될 문은 하나의 틈(隙間, すきま)입니다. 균열. 금. 벽에 난 실금. 혹은 오래된 기억의 뒤켠에서 켜켜이 쌓여 있던 먼지가 작은 숨결에 흩날리며 만들어내는 그 무의식의 틈입니다.


프루스트가 마들렌 한 조각에서 콤브레의 전체를 되살려낸 것처럼, 때로는 가장 작은 틈이 가장 큰 기억의 대성당으로 이어집니다. 이 소설은 그런 종류의 입구들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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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서사보다는 인물의 감정 구조(構造)**를 따라갑니다. 인물들은 각자의 결손을 품고 있으며, 그 결손은 감정의 구조물로, 건축의 입면처럼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이야기에서 어떤 사건의 인과관계보다, 오히려 그 사건들이 마음에 남긴 구조적 흔적을 보게 되실 것입니다.


피터 줌토르가 발스 온천장을 설계할 때 말했듯, "건축은 기억의 예술"입니다. 그의 건물처럼, 이 소설의 인물들도 각자의 내부에 온기와 차가움이 공존하는 공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만의 '발스'를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 속에서 '감정은 구조이고, 기억은 도면이며, 인물은 입면이다'**라는 전제를 붙듭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겪은 사랑을 평면처럼 다 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게 사랑은 언제나 단면이었고, 수직적인 것이었으며, 쉽게 펼쳐지지 않는 내력벽(耐力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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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이 소설의 핵심적 기호입니다. 건축에서 벽(壁, wall)**은 구조를 지지하면서도 분리를 만듭니다. 이야기에서의 벽은 감정을 지지하면서도 기억과 현실, 공적과 사적, 진심과 침묵 사이를 가릅니다.


벽은 저와 '그녀'를 갈라놓지만, 또 동시에 벽을 사이에 두고 같은 층에 살아가는 것을 허락합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거주한다는 것"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물리적 공간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구조 안에 거주합니다. 그리고 그 거주의 방식이 우리의 존재 자체를 규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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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전은 『탐식의 연대기』라는 큰 구조물 속에 새겨진 틈새의 기록(アーカイヴ)**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 구조의 이모션(Emotion, 情緒構造) 아카이브이며, 에테르(Ether, 감응 정보층)에서 호출되는 회귀적 기억의 조각들입니다.


여러분께서 이 소설에서 만나시는 인물들은 누구도 완전히 등장하지 않으며, 누구도 완전히 퇴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반복해서 나타나며, 각각의 장면에서 조금 다른 기류, 다른 감정구조, 다른 입면으로 형상화됩니다.


이는 들뢰즈가 말한 "반복과 차이"의 원리와 같습니다. 같은 것의 기계적 반복이 아니라, 매번 미세하게 다른 강도(intensité)로 현현하는 차이의 반복. 그 차이들이 쌓여 하나의 리좀적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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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서는 이 이야기에서 그녀들을 이해할 수 없으실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왜' 등장했는지를 기억하게 되실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이름 없는 아키텍트(Architecteur, 構築者)입니다. 사람들이 기억을 도면으로 그리는 동안, 나는 감정을 구조로 설계했습니다. 그녀는 도면이 아니라, 구조였습니다.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가 기계적 복제의 시대에 사라진다고 했지만, 어떤 관계들은 복제될 수 없는 유일무이함을 간직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아우라를 가진 순간들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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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작업은 문피아 공모전 제출작인 『탐식의 연대기: 아키텍춰기록자』의 외전 격에 해당합니다. 웹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어쩌면 일반적인 웹소설의 관례와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쏟아내기엔 조용하고, 너무 느긋하기엔 규칙이 많은 글. 목수가 연장 탓을 하는 격일지도 모르겠지만, 플랫폼과 작업 사이의 묘한 어긋남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새로운 둥지를 마련했습니다. 어쩌면 이 공간이야말로 이 글이 본래 거주하려 했던 구조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2025년 6월, 불확실한 벽 앞에서
망치든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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