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식의 연대기 ― 외전: 불확실한 벽 너머_6화

6화: 사랑의 구조는 누구를 위해 설계되는가

6화. 사랑의 구조는 누구를 위해 설계되는가


그날 과장은 유난히 말이 없었다.


오전 8시 47분. 회의실 앞에서 대기하던 그녀는 내가 도착하자 짧게 인사했지만, 언제나처럼 "오늘은 어깨에 뭔가 걸렸네요" 같은 사소한 관찰(觀察)을 하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일상적 대화가 없는 아침은 어딘가 불완전했다. 마치 건물의 기본 골조(骨組)에서 중요한 연결부 하나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일상의 리듬이라는 것이 있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의례(儀禮)들이 하루의 구조를 만든다. 인사, 날씨 이야기, 스타벅스 벤티 아메리카노 한 잔에 대한 짧은 농담... 그런 것들이 사라지면 하루 전체가 흔들린다. 일상이 가진 의례적 기능이 사라지면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 흐름으로 전락한다.


그녀는 몽블랑 만년필을 손에 들고 있었지만, 평소처럼 체크리스트를 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볼펜을 두 번 연달아 클릭하는 소리만이 복도에 작게 울렸다. 긴장할 때만 나타나는 버릇이었다. 세이코 쿼츠 시계를 확인하는 횟수도 평소의 절반 정도였다. 오전 8시 52분을 가리키는 시계 바늘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대신, "그녀가 먼저 와 있어요"라는 말만 남기고 회의실 문을 밀었다. 목소리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피로(疲勞)가 섞여 있었다. 온도는 23.1도, 습도는 44퍼센트였다. 건조한 공기가 그녀의 목소리를 더 메마르게 만들었다.


*


그녀. 단지녀. 지금은 클라이언트. 이름이 아직 기억나지 않는 어떤 여자. 아니, 정확히는 기억하지 않기로 한 여자.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은 일종의 방어기제(防禦機制)다. 의식적으로 망각(忘却)을 선택하는 것. 건축가로서 나는 이것을 "의도적 공백"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도면에서 특정 영역을 비워두는 것처럼, 기능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가능성을 남겨두는 설계 기법.


나는 처음부터 그녀의 이름을 외우지 않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 관계는, 언젠가 종료(終了)될 것을 전제(前提)로 한 관계였다. 도면 없이 짓는 구조처럼, 허공에 선을 그려 만든 구조물처럼 어느 날 바람 불면 무너져야 마땅한 형태. 가설 건축물(假設建築物)의 개념이었다. 임시적이고, 해체 가능하며, 영구적 기반을 요구하지 않는.


그런데 그녀는 그 무너질 예정인 구조 속에서 계속 어떤 형태를 유지(維持)하려 들었다. 마치 임시 건물을 영구(永久) 건물로 만들려는 것처럼. 프리패브(prefab) 구조를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전환하려는 시도처럼.


건축에서 임시 구조물과 영구 구조물의 차이는 근본적이다. 사용되는 재료, 기초의 깊이, 내구성(耐久性) 설계... 모든 것이 다르다. H빔과 합판으로 만든 가설 구조물을 철골조 건물로 바꾸려면 완전히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 감정도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임시 감정과 영구 감정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구조적 간격이 있다.


그건 위험한 일이었다. 어떤 구조든 형태를 유지하려는 순간 균열(龜裂)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균열은 예상보다 빨리, 예상보다 깊게 번져나간다. 건축물의 피로 파괴(疲勞破壞)처럼, 감정도 반복적인 하중(荷重)을 견디다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무너진다.


*


회의는 평범하게 흘렀다.


오전 10시 30분부터 11시 20분까지, 정확히 50분간의 회의. 나는 설명했고, 그녀는 끄덕였다. 과장은 프레젠터 리모컨을 넘기며 정리된 목차에 따라 말했다. 삼성 75인치 모니터에는 CAD로 제작된 도면들이 선명하게 표시되었다.


시간의 정확성(正確性)이라는 것은 현대 사회의 특징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 계절의 변화... 자연의 리듬이 시간의 기준이었던 시대와는 다르다. 지금 우리는 분 단위로, 때로는 초 단위로 시간을 관리한다. 건축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정표는 일 단위로 나뉘고, 각 단계는 정확한 시간 계획에 따라 진행된다.


"2안의 경우, 채광(採光) 확보를 위한 코어 재배치가 필요합니다. 기존 구조에서는 복도 측 음영(陰影) 구간이 너무 길어져서..." 과장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높았다. 긴장했을 때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습관을 알고 있었다. 3년 동안 함께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지식이었다.


인간관계에서 습관을 안다는 것은 친밀감(親密感)의 지표다. 상대방의 무의식적(無意識的) 패턴을 파악할 정도로 오래, 깊게 관찰했다는 의미. 건축가가 건물의 노후화 패턴을 관찰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느 부분이 먼저 균열이 가고, 어느 재료가 먼저 변색되는지. 그런 지식은 권력이 되기도 하고 짐이 되기도 한다.


그녀는 조용히 들었다. 몰레스킨 노트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고, 헤이즐 브라운 눈동자만 천천히 움직였다. 가끔 고개를 끄덕이거나, 파일럿 볼펜으로 턱을 가볍게 짚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런 모든 움직임이 계산된 것처럼 정확했다.


몸짓 언어라는 것이 있다. 말로 하지 않는 소통. 때로는 언어보다 더 정확하고 솔직한 정보를 전달한다. 우리는 언어 이전에 몸으로 세계와 소통한다. 그녀의 몸짓은 세련되었지만 어딘가 연출된 느낌이었다. 마치 완벽하게 계획된 공간처럼.


나는 가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러나 공적 감정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멈췄다. 사적인 관계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그녀는 철저(徹底)했다. 마치 회의실 전체에 이중 유리의 감정 차음막이라도 설치한 듯, 어떤 온기도 유출(流出)되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기술(技術)이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건축에서 말하는 "열교 차단(熱橋遮斷)"과 같은 개념이었다. 내부의 온도가 외부로 전달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 그녀는 감정의 열교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감정의 구획화(區劃化)라는 개념이 있다. 상황에 따라 감정을 분리해서 관리하는 능력. 건강한 적응 기제일 수도 있고, 때로는 과도한 억압일 수도 있다. 그 경계선은 모호하다.


*


회의가 끝나고 나서, 나는 그녀보다 늦게 일어섰다.


오전 11시 23분.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나간 후였다. 클라이언트 본사 팀장 두 명은 엘리베이터에서 무언가를 속삭이며 내려갔고, 협력업체 기술진들은 서류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회의실에는 우리 둘만 남았다.


과장이 말했다. "이상한 여자예요."


"뭐가?" 나는 아직 따뜻한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예의 바르고 단정했는데... 어떤 때는 그냥... 누군가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감지(感知)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그게 무슨 뜻이야."


과장은 책상 위 펜을 정리하다가 말했다. 몽블랑 펜이었다. 마이스터스튁 클래식 모델. 그녀는 항상 좋은 필기구(筆記具)를 사용했다. 심지어 리필도 정품만 사용했다. 가격이 비싸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물건에 대한 취향도 개성(個性)의 일부다. 왜 하필 몽블랑인지, 언제부터 그 브랜드를 선호하게 되었는지... 그런 선택들이 쌓여 한 사람의 정체성(正體性)을 만든다. 루이스 칸이 벽돌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듯, 우리도 소유물을 통해 자신을 규정한다.


"그녀는 사람을 대상화(對象化) 하지 않아요. 상대가 사람이든 공간이든, 그냥 구조물로 보는 거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그리고 그 정확함이 불편해서.


과장은 CU편의점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덧붙였다. 플라스틱 뚜껑을 살짝 밀어 올린 채, 김이 나는 커피를 조심스럽게 마시는 모습이 그녀다웠다.


"어떤 면에서는 이사님과 비슷해요. 감정보다 구조를 먼저 보는 타입."


그 말을 듣고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과장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과장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타인의 시선이라는 것은 거울과 같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자신을 본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나의 자아인식(自我認識)을 형성한다. 하지만 그 거울들이 서로 다른 상을 비춘다면? 어느 것이 진짜 나인가?


*


나는 그날 밤, 비상계단 아래에 앉아 있었다.


밤 10시 52분. 이 도시의 구조적 결함이 응축(凝縮)된 공간. 계단과 계단 사이의 정적(靜寂), 무너질 듯 유지되는 형체. 그런 종류의 아이러니가 그곳에는 있었다. 온도는 플러스 4.7도였고, 습도는 67퍼센트였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가 콘크리트 벽을 통해 전달되어 왔다.


건축계획에서 비상계단은 "필요악(必要惡)"으로 분류된다. 평상시에는 사용되지 않지만, 위급할 때 생명을 구하는 공간.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전화를 하거나, 잠시 쉬는 곳으로 사용된다. 설계 의도와 실제 용도 사이의 간극. 건축가가 예상하지 못한 사용법들.


그녀는 거기 없었다. 그러나 담배 냄새는 남아 있었다. 마일드 세븐 라이트의 냄새. 그리고 그것과 함께 섞인 그녀만의 냄새. 샴푸 향인지, 향수인지, 아니면 그녀의 피부에서 나는 고유한 냄새인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그녀의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피운 담배, 그 잔향(殘響)이 섞인 공기 속에서 나는 문득 그녀가 한 말을 떠올렸다.


"사랑이 구조라면, 누군가는 그걸 위해 설계되었겠죠. 하지만 난 모르겠어요. 내가 그 구조 안에 포함되었던 적이 있었는지."


그 말은 오래 머물렀다. 마치 평면도 위에 남은 지워지지 않는 도면의 잉크처럼. 아니, 그보다 더 깊이. 건물의 기초(基礎) 부분에 새겨진 날짜처럼. 1987.03.15, 착공이라고 새겨진 그런 각인처럼.


기초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가장 중요한 구조다. 기초가 흔들리면 건물 전체가 무너진다. 감정도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기초 위에 세워지는 구조물. 그리고 그 기초는 대부분 과거에 형성된다.


나는 말보로 라이트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녀와 다른 브랜드였다. 우리는 심지어 담배 취향도 달랐다. 하지만 그런 차이가 오히려 안심스러웠다. 너무 비슷한 것은 때로 위험했다. 같은 구조적 취약점을 가질 수 있으니까.


비슷한 것들은 서로를 끌어당기지만, 다른 것들이 만날 때 더 견고한 구조가 만들어진다. 건축에서 말하는 "이종 재료의 접합"처럼. 콘크리트와 목재, 철과 유리의 만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디테일이 나온다.


*


나는 다시 구조도를 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맥북 프로 화면에 오토캐드 프로그램을 띄우고, 회의실이 아닌, 그녀의 방을 그리기 위해. 그녀가 말한 구조, 그녀가 말하지 않은 구조, 그 모든 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들.


새벽 1시 34분. 커피는 이미 식어 있었다. 던킨도너츠 아메리카노, 원래 따뜻했던 것이 이제는 실온과 같은 온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시기에는 충분했다. 카페인의 효과는 온도와 상관없으니까.


선을 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사랑의 구조를 설계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설계여야 할까.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使用者)였다. 그 건물을 실제로 사용할 사람들의 편의와 안전. 하지만 사랑에서는 사용자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인가, 사랑받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둘 모두인가. 아니면 사랑 그 자체가 사용자인가.


나는 사랑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잊히지 않도록 설계된 구조. 그런 종류의 건축이 가능할까.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처럼, 특정한 종교를 위한 것이지만 종교를 초월한 감동을 주는 그런 공간.


사랑은 언제나 그렇게, 지워지지 않는 선을 먼저 그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 선들은 때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향한다. 직선은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직선으로 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장애물이 있고, 우회로가 있고,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한다. 사랑도 그런 것이다.


창밖에서는 늦은 밤까지 누군가의 텔레비전 소리가 들렸다. 드라마인지 뉴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KBS, MBC, SBS... 어느 채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이 되었다.


인간의 목소리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언어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목소리의 톤, 리듬, 강약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원시적인 소통 방식이지만 가장 직접적이기도 하다. 건축에서 말하는 "재료의 고유한 성질"과 비슷하다. 가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드러나는 본질적 특성.


나는 도면을 저장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사랑의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아니라 구조 자체의 지속성(持續性) 일지도 모른다고. 무너지지 않고, 잊히지 않고, 계속 존재할 수 있는 힘.


그런 종류의 구조를 짓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지속성이라는 것은 시간에 대항하는 힘이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흩어지려는 자연의 경향에 반대하여, 질서(秩序)를 유지하려는 의지. 로마의 판테온이 2000년을 버텨온 것처럼, 어떤 구조는 시간을 초월한다.


사랑도 그런 의지일지도 모른다. 시간과 망각에 맞서는 구조적 의지. 그리고 나는 지금, 그런 의지를 도면으로 옮기려 하고 있었다.


새벽 2시 17분. 도면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어떤 구조들은 완성하는 순간 의미를 잃는다. 미완성 상태에서만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사랑의 구조도 그런 것이었다. 완성된 설계도보다는, 계속 수정되고 보완되는 스케치가 더 진실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스케치를 그리는 행위 자체가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