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식의 연대기 ― 외전: 불확실한 벽 너머_8화

8화. 잔상(殘像)의 구조(構造)

8화. 잔상(殘像)의 구조(構造)



그녀는 한 번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오후 6시 14분. 비상계단의 차음벽(遮音壁) 아래, 온도 플러스 3.7도, 습도 58퍼센트의 공간에서 그녀는 그보다 더 무심한 태도로, 사랑이란 단어 자체를 설계도에서 지워버리려는 사람처럼, 언제나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언어의 부재가 때로는 언어보다 더 강력한 의미를 전달한다. "말하지 않음"은 적극적인 언어 행위다. 그녀의 침묵은 부정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긍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필립스 LED 조명이 30초마다 한 번씩 깜빡이며 절전 모드로 전환되는 동안, 그녀의 시선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했다. 36.2도. 내 체온보다 약간 낮은 온도였다.


나는 그 시선을 구조라 불렀고, 그 구조 안에서 나는 때로 문지방이 되고, 때로는 설계되지 않은 창이 되었다.


건축에서 문지방(threshold)은 경계의 공간이다. 안과 밖을 나누면서도 연결하는 장소. 루이스 칸이 말한 "빛이 만드는 공간"처럼, 명확한 기능을 부여받지 않았지만 필수적인 영역. 그녀의 시선 구조 안에서 나는 그런 양의적(兩義的) 존재였다. 완전히 안에 들어가지도, 완전히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그날도 그랬다. 비상계단의 차음벽 너머, 그녀는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저녁 7시 32분.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마일드 세븐 라이트 담배를 손에 들고 있었지만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상태였다. 빨간 가죽 밴드 시계는 오늘은 오른쪽 손목에 차고 있었다. 어제와 다른 위치였다. 그녀만의 규칙 없는 규칙이었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묻지 않을 질문을. 그리고 그녀가 대답하지 않을 대답을.


대화의 구조학이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대화는 전형적인 비대칭 구조였다. 질문과 대답이 일대일로 대응되지 않고, 침묵이 말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건축학적으로 표현하면 불규칙한 리듬의 입면도 같은 것이었다. 창문과 벽면의 배치가 일정한 패턴을 따르지 않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미학을 이루는.


*


"오늘, 서류는 봤어요?" 그녀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22도로 설정된 실내에서 나와 영하의 공기에 노출된 성대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변화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에서 돌아와 책상 위에 놓인 그 문서를, 나는 세 번쯤 읽었다. A4 용지 27장 분량의 프로젝트 검토서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 문서 안의 감정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문서라는 것은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만을 전달하도록 설계된 텍스트다. 12포인트 맑은 고딕 폰트로 정확히 1.5줄 간격으로 정렬된 문장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감정선"이란 행간에 숨겨진 의도, 문장의 배치에서 드러나는 무의식, 선택된 단어들의 온도 같은 것들이었을 것이다. 건축가가 도면에서 치수와 비례를 읽어내듯, 그녀는 텍스트에서 감정의 구조를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던킨도너츠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실온과 같은 온도로 식어 있었지만, 카페인의 쓴맛은 여전했다. 오후 4시에 산 커피가 3시간 만에 완전히 변질된 것이다. 시간이 만들어내는 물질의 변화.


그녀는 내 표정을 읽고 말없이 웃었다. 그건 미소라기보다는, 균열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균열로서의 미소. 그것은 완전한 웃음도 아니고 완전한 무표정도 아닌, 그 사이의 어떤 상태였다. 고정된 정체성을 벗어나려는 몸짓. 건축물에서 말하는 "제어된 균열"과 비슷했다. 구조적 안전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건물이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허용하는 설계 기법.


"그게요, 내 이야기 아니에요." 그녀는 담배를 꺼내 들고 불을 붙였다.


스웨덴 제 안전성냥의 인 냄새가 찬 공기 중에 퍼졌다. 성냥개비를 두 번 털고 나서 담배에 불을 댔다. 연기를 내뿜기 전 3초간 숨을 참는 그녀만의 습관.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녀의 왼쪽 팔목에 있는 가느다란 흰 흉터를 보았다. 오늘은 소매를 걷어 올린 상태여서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녀의 이름도, 직업도, 출처도 불분명한 채, 그녀는 내 앞에 나타났고, 지금껏 그녀에 대해 들은 이야기는 모두 제삼자의 입을 통해서였다.


정체성의 파편화. 현대의 주체는 더 이상 일관된 서사를 가지지 않는다. 원본 없는 복사본으로만 존재하는 존재. 그녀는 그런 파편화된 주체의 전형이었다.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을 거부하고, 타인의 증언과 추측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


며칠 전, 편의점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밤 10시 15분, CU편의점. 하리보 젤리 1,800원을 계산하면서 아이는 말했다. "그 여자요. 전에도 자살 시도했었어요. 교수랑 사귀던 시절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울우유 900ml 종이팩의 삼각형 주둥이를 뜯으며 침묵을 유지했다. 우유의 온도는 4.2도였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상태였다.


자살 시도라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적 실패이며, 동시에 극한의 소통 시도이기도 하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다. 특히 개인이 겪는 존재론적 혼란.


"그 교수, 요즘 뉴스에 나오는 그 양반이에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편의점 형광등이 그 순간 한 번 깜빡였다. 22와트 LED 조명이 수명을 다해가는 징조였다.


미디어 스캔들과 개인사가 교차하는 지점. 사적인 관계가 공적인 담론이 되는 순간. 그녀의 과거가 단순한 개인적 기억이 아니라 사회적 사건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새롭게 의미를 가졌다. 건축학적으로 보면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 일이 없던 것처럼 굴잖아요. 진짜로 잊은 걸까요, 아니면 그냥 지운 걸까요?"


그 질문은 내 머리 한켠에 오래 남았다.


망각과 억압의 차이. 진정한 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기억은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다가 적절한 계기에 회귀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잊음'은 의식적 억압일 가능성이 높았다. 건축으로 치면 철거가 아니라 리모델링에 가까운 작업. 기존 구조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용도에 맞게 재배치하는 것.


*


그녀는 지금, 사무실의 회의실 안에 앉아 있었다.


오전 10시 20분. 회의는 과장이 주도했다. 과장은 몽블랑 만년필을 손에 들고 체크리스트를 확인했다. 의자 간격은 정확히 60cm로 배치되어 있었고, 세이코 쿼츠 시계는 아버지 유품답게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과장의 왼쪽 어깨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슬라이드를 넘기며 말하는 그녀는 도면 위에 감정을 새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삼성 75인치 모니터에는 CAD로 제작된 구조도가 선명하게 표시되었다.


"기억을 구조로 보겠습니다." 과장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높았다. "공간의 밀도는 곧 관계의 밀도이며, 우리가 관측하는 감정은 벽을 통해 반사되는 파장일 수 있습니다."


과장의 이론적 접근은 인상적이었다. 기억을 물리적 공간으로, 감정을 음파나 전자기파 같은 에너지로 개념화하는 것. 이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분석 도구였을지도 모른다. 피터 줌토르가 『건축을 생각하다』에서 말한 "분위기의 건축학"과 통하는 접근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회의실 안의 빛—22.8도로 조절된 공기, 필립스 LED가 만들어내는 5400K 색온도의 조명, 하얀 벽지에 반사되는 빛의 각도, 빛나는 도면, 그리고 단정한 그녀.


그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인격의 분화. 그녀는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격을 착용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생존 전략인지 병적 증상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건축학적으로 보면 같은 건물이 시간대별로 다른 기능을 하는 "혼합 용도" 개념과 비슷했다. 낮에는 사무실, 밤에는 문화 공간으로 사용되는 유연한 구조.


사무실 밖에서의 그녀는 담배를 피우고, 모호한 질문만을 던지는 사람이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의 그녀는 균형 잡힌 감정의 설계자처럼 보였다. 같은 재료로 만든 서로 다른 건축물처럼.


"결국, 우리가 건축하려는 것은 '누구를 위한 구조인가'라는 질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내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느꼈다. 그 말은 내게 한 것이었다.


언어의 이중성. 공적인 발언의 형태를 띠지만 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처럼, 종교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개인적 명상의 장소인 것과 같은 중층적 의미. 그녀의 발언도 그런 건축학적 복합성을 가지고 있었다.


*


회의가 끝난 후, 과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오전 11시 47분.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나간 후였다. 클라이언트 본사 팀장 두 명은 엘리베이터에서 무언가를 속삭이며 내려갔고, 협력업체 기술진들은 서류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회의실에는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의 냄새와 에어컨의 저음 진동만이 남아 있었다.


"그 여자, 몇 년 전엔 꽤 유명했어요." 과장이 CU편의점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도시계획 석사 과정 중에 실종된 적도 있었고. 다들 우울증이라고 했지만, 아무도 정확히 몰랐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스타벅스 벤티 아메리카노는 이미 식어 있었지만 계속 마셔댔다. 카페인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실종과 우울증. 두 개의 키워드가 그녀의 과거를 조금 더 구체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퍼즐의 조각들일 뿐이었다. 정신적 일탈은 언제나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정의된다. 그녀의 실종도 단순한 개인적 사건이 아니라 더 큰 구조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때 병원에 실려 갔을 때, 몸에서 발견된 약물 수치가 심각했다는 말도 있었어요."


과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덧붙였다. 볼펜을 두 번 연달아 클릭하는 소리가 조용한 회의실에 울렸다. 긴장할 때 나타나는 그녀의 습관이었다. 은색 십자가 목걸이를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죠. 그 사람, 진짜로 잊은 건 아닐 거예요. 그냥, 그걸 구조처럼 접어둔 거죠. 접힌 종이는 다시 펴면 주름이 남잖아요."


나는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기억의 물질성. 과장의 비유는 정확했다. 억압된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보존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주름을 따라 다시 펼쳐진다. 건축에서 말하는 "구조적 기억"처럼, 건물은 과거의 변형과 수리의 흔적을 구조 안에 간직한다. 감정도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


밤, 편의점에 들렀다.


밤 10시 52분. CU편의점의 형광등은 오늘도 변함없이 밝았다. 22와트 LED 조명이 만들어내는 차가운 빛 아래에서 아이는 오늘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편의점 유니폼 위에 걸쳐 입은 개인 옷이었다.


나는 커피 하나를 사고, 그 자리에서 바로 마셨다. 1,200원짜리 플라스틱 컵 커피. 온도는 대략 65도 정도였다. 편의점의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마시는 커피의 맛은 독특했다. 인공적이고 즉석적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완전한 현재였다. 과거도 미래도 없는, 순수한 감각의 시간.


편의점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것은 현대 도시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다. 익명성과 친밀감이 공존하는 공간.


"그 여자, 오늘도 혼자였어요?" 아이가 묻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 기억을 숨기는 게 아니라 기억 자체를 다시 설계하려는 거 아닐까요?"


나는 커피를 다 마시고 플라스틱 컵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곤 자동문을 밀고 나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차가운 밤공기에 울렸다.


아이의 통찰력은 때로 어른을 능가했다. "기억을 다시 설계한다"는 표현은 건축학적으로 매우 정확한 은유였다. 기존 건물을 완전히 철거하지 않고 새로운 용도에 맞게 개조하는 리노베이션 작업. 그녀가 시도하고 있는 것도 그런 종류의 감정적 리노베이션일 것이다.


*


비상계단 아래, 성냥이 하나 태워지고 있었다.


밤 11시 26분. 외부 온도는 영하 5.3도였고, 비상계단 내부는 플러스 2.8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그 자리를 다녀갔다는 듯, 다섯 개의 담배꽁초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마일드 세븐 라이트의 필터들이 LED 조명 아래에서 하얗게 빛났다.


어제는 여섯 개였는데 오늘은 다섯 개. 숫자의 변화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감정의 상태를 수치로 표현하는 그녀만의 암호 체계일 수도 있었다. 점점 줄어드는 숫자는 어떤 소멸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제의 과정일까. 불필요한 것들을 걸러내어 본질만 남기는.


차음벽 특유의 무반향 효과 때문에 이곳의 정적은 다른 곳과 달랐다. 소리가 흡수되어 사라지는 공간. 건축음향학에서 말하는 "데드 룸"에 가까웠다. 그런 공간에서는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분당 72회. 정상 범위였다.


나는 말보로 라이트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녀와 다른 브랜드였다. 우리는 심지어 담배 취향도 달랐다. 하지만 그런 차이가 오히려 안심스러웠다. 너무 비슷한 것은 때로 위험했다. 같은 구조적 취약점을 가질 수 있으니까.


담배 연기가 천천히 상승하며 천장의 환기구로 빨려 들어갔다. 공기의 흐름이 눈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공간의 역학이 연기를 통해 가시화되는 것. 건축가에게는 그런 순간들이 소중했다. 추상적인 개념이 물리적 현상으로 드러나는 때.


그녀는 오늘도, 감정의 구조를 지었다. 잊힌 척하면서. 무너진 척하면서. 누군가를 구조하는 방법으로.


구조와 구조(救助)의 동음이의어. 그녀는 건축적 구조를 통해 감정적 구조를 시도하는 사람이었다. 파괴와 구원이 동시에 일어나는 변증법적 과정. 모순되는 두 힘이 만나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것.


잔상이라는 것은 이미 사라진 것의 흔적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흔적이 원본보다 더 강렬한 실재성을 가진다.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들, 성냥의 재, 공기 중에 남은 연기의 냄새... 이 모든 잔상들이 그녀의 부재를 오히려 더 선명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 12시 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경계선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잔상들이 내일의 구조를 만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보이지 않는 힘이 보이는 형태를 결정하는 것처럼, 그녀의 부재가 우리의 관계를 재구성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담배를 끄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 공간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 잔상의 구조가. 그리고 그 구조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마치 철거된 건물의 기초가 땅속에 남아 있듯, 우리의 감정도 그런 식으로 지속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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