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_10화에 즈음하여

『탐식의 연대기 ― 외전: 불확실한 벽 너머』

작가노트


『탐식의 연대기 ― 외전: 불확실한 벽 너머』를 쓰며
― 오후 3시 17분, 섭씨 28.7도의 기록


새벽 4시 42분, 저는 맥북 프로 앞에 앉아 이 문장을 쓰고 있습니다. 서울우유 900ml 종이팩의 삼각형 주둥이를 벌리며 생각했습니다. 감정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다만 구조의 틈 사이, 말해지지 않은 문장들 사이, 말끝의 침묵에 미세하게 남을 뿐입니다.


마치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말입니다.



220화를 함께 달릴, 당신에게


오전 9시 15분. 스타벅스 벤티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계산해 보았습니다. 이제 막 10화. 전체 220화의 4.5%를 지나고 있을 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4.54545...%입니다.


이 소설은 긴 여정이고, 느린 구조물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감정 구조물 위를 함께 달리는 속도보다는 방향을 중시하는 러너이자 동지인 당신께 가장 진심 어린 설계도를 펼쳐 보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라기보단 구축이며, 설계라기보단 복원이고, 때로는 말해지지 않은 감정의 발굴 보고서인 것 같습니다.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감정의 입면도 ― 구조는 말하지 않고, 분위기가 응답한다


습도 73퍼센트, 온도 29.8도의 작업실에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불확실한 벽 너머』는 감정과 건축, 기억과 구조, 그리고 사유의 축조성(軸造性)을 테마로 한 서사 실험입니다.


이사, 단지녀, 과장, 그녀— 인물들은 '호칭'으로만 불립니다. 그러나 그 호칭은 언제든 기능적으로 교체되며, 한 사람은 여러 감정 구조를 동시에 살아갑니다. 마치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유동하는 공간처럼 말입니다.


회의실은 감정을 차단하는 입면 구조(立面構造)이며, 비상계단은 감정이 반사되고 새어 나오는 틈입니다. 계단참에선 단지녀가 사라지고, 감정의 균열이 시작됩니다.


"23시 34분 / 섭씨 26.4도"


저는 이 숫자들이 사건의 좌표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이것은 감정의 온도와 밀도를 계측하는 단위입니다. 마치 로스코의 붉은색이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명상의 깊이를 측정하는 도구인 것처럼 말입니다.


철학은 인물의 말이 아닙니다. 메를로퐁티의 몸의 현상학이든, 벤야민의 아우라든, 그것들은 감정 구조를 은유하는 비가시적 도면 선일뿐입니다.



이름이 지워진 세계 ― 누군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오후 2시 18분. 몽블랑 만년필로 메모하며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은 의도적으로 인물의 이름을 지우며, 감정을 호명 불가능한 것으로 남겨둡니다.


"그녀"는 단지녀일 수도 있고, 편의점아이, 과장, 탐전문가, 심지어 전처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아무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마치 보르헤스의 《미로》에서 길을 잃는 것처럼, 정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녀"라는 지시는, 익명성과 위상성(位相性), 즉 감정 구조 내에서 인물이 차지한 '자리'를 가리키는 장치입니다. 성별보다 구조, 관계보다 공기, 이름보다 분위기를 따라 움직입니다.


실수나 누락이 아닙니다. 의도된 역명명 구조(逆命名構造)**입니다. "누구인가?"를 묻기보다 "그 순간, 어떤 공기였는가?"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벽 3시 47분, 마일드 세븐 라이트 한 개비의 연기를 내뿜으며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감정의 균열 ― 통제된 구조와 침투하는 감정


10화까지의 외전은 감정을 억제하려는 자들과 감정을 설계하려는 자들, 그리고 결국 그것에 실패하는 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에서 구역(Zone)이 인간의 욕망을 비틀어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단지녀는 약으로 균형을 유지하며 감정의 조형성을 신뢰하지만, 균열은 이미 침투했습니다. 습도 78퍼센트, 미세한 진동이 감지되는 순간부터 말입니다.


이사는 '기록자'로 자각하기 전, 한때는 '설계자'였고, 이제는 균열을 감지하는 감정의 수신 장치로 변화 중입니다. 마치 필립스 LED 조명 아래에서 도면의 오류를 발견하는 순간처럼 말입니다.


실종된 도면, 파기된 감정 구조 협정, 되돌릴 수 없는 감정의 반사각들. 이 이야기의 전면에 떠오르는 것들입니다.



세계관의 접속 방식 ― 틈으로 본편과 연결됩니다


오후 5시 33분. CU편의점에서 하리보 젤리(1,800원)를 사며 깨달았습니다. 이 외전은 『탐식의 연대기』 본편과 세계관을 공유하되, 느슨하게, 기억의 균열을 통해 접속됩니다.


교수, 편의점아이, 탐 구조—그들의 잔광이 반사되며 외전은 전체 구조물의 누락된 입면, 혹은 접히고 지워진 설계도의 뒷면에 해당합니다.


본편의 감정 루프는 외전에서는 감정 구조의 '파편'으로 응축되고, 기억은 다시 건축적 재현물로 작동합니다. 마치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전체 구조가 되살아납니다.



기록자, 혹은 욕망하는 설계자


새벽 1시 29분. 세이코 쿼츠 시계를 확인하며 저는 고백합니다. 이 작가노트는, 어쩌면 제가 건축가가 아니라 감정을 설계하고 싶었던 인간이라는 늦은 고백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감정을 설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감정을 좌표화하고, 입면화하고, 구조화하면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차음벽(遮音壁) 너머로 새어 나오는 소음처럼,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 압니다. 모든 구조는 틈을 품고, 모든 틈은 결국 감정에 의해 침식된다는 것을. 마치 안도 다다오의 콘크리트 벽면에 스며드는 빗물처럼 말입니다.

섭씨 26.4도의 밤,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를 마시며 저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독자에게


이 서사는 감정을 연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감정을 밀어두는 공간들을 보여줍니다.


회의실, 복도, 계단참, 엘리베이터, 복사실… 그 사이사이의 여백에서 당신 자신의 구조가 조용히 반사되기를 바랍니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Nighthawks》에서 늦은 밤 카페의 유리창에 비치는 당신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이야기의 후반, 220화의 구조 끝에 도달했을 때— 그 누락된 입면의 뒤켠에서 당신이 스스로를 기억하는 순간이 오기를.

오전 6시 15분. 감정은 흐르지 않습니다. 다만 건축의 틈에서 잔류합니다.




― 감정을 설계하는 자, 망치든건축가


P.S. 라이히의 《Music for 18 Musicians》 15분 42초 지점에서 이 노트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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