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박자 들이마시고, 네 박자 내쉬고. 속에 가득찬 김을 먼저 빼냈다. 나는, 내가 상담받은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상담받아보기를 고민하는 사람, 상담을 하려는 사람, 상담하고 있는 사람. 그 모두를 생각하며 시작한다.
오래된 기억에 매몰되어 있던 나는 죽기 전에 상담을 받아보고 싶었다. 창틀만 눈에 들어오면, 그 색이 무엇이든, 매달리고 싶었고 다리 밑 차오르는 검은 물분자들의 손짓을 무시하기 어려웠었다. 그런데 이대로 끝나기에는 식도를 타지 못하고 햇볕에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나는 사람을 찾기로 했다. 지금 이 증상, 상태, 흘러가는 내 생각을 붙잡아 줄 사람을 말이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심리학적인 지식 따위 없고 그저 산소만 흡입하는 개체였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제자리에 뿌리내려 양분만 얻어도 그 존재가 받아들여지는 식물이었다. 나는 나의 힘듦을 인정하지 못한 채 더 아픈 사람들, 덜 아픈 사람들과의 비교만 전전했으니. 내 눈물에 젖는 휴지조차 아까운 시간들이었다.
"왜 주변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안 했어?" 이렇게 묻는다면 생각보다 내 대답은 간단하다. 다른 사람 걱정을 사서 사고 싶지 않은 현대인들의 마음과 같다 하겠다. 사람들 눈에는 나름 붙임성 있고 잘 받아치는 사회 초년생으로 비쳤을 나는, 사실 그들에 대한 애정이 없었으며 동시에 외로웠다. 털을 곧추세워 하악질을 하면서도 사람 옆을 떠나려 하지 않는 길고양이처럼. 길지 않은 살아온 날들에서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고통의 기억도 내 의지를 불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전문가를 찾기로 했다. 내가 하는 말에 대한 반응, 과연 그 사람은 내 편을 들어줄 것인지. 나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데, 이해받고 공감받을 수 있을지, 여러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찌 보면 진단명을 바란 지도 모른다. 진단을 받으려면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야 하지 않나? 그렇다. 나도 정신과를 먼저 알아봤다. 종종 조여드는 숨통과 병원에서는 별 이상 없다는 가슴 통증, 그 이유를 찾으려고.
그런데 나는 어떤 방법으로든 결국 세상에 남을 기록을 내 우울보다 걱정했고, 결국 대안으로 심리상담을 알아보게 된 것이다.
상담을 받기로 결정하고 두 달을 고민했다. 어정쩡한 회기,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는 상담자에게 상처 받은 사례들을 보며 나는 '좋은 사람'에게 가고 싶었다. 아니, 나를 탓하지 않을 사람을 찾았다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많지 않은 상담 후기들을 바탕으로, 나를 살려줄 사람을 찾아서 오래 헤맸다.
상담에 대한 적은 정보와 상담료에 대한 부담은 다시 상담을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당장 벼랑 끝에 대롱거리던 나는 다른 선택지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후의 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기로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