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교환학생기) 1월 30일. 인천-모스크바-빌뉴스
열흘 남짓의 투어 일정표를 찬찬히 훑어보는 할아버지를 곁눈질로 본 후에야,
비행기 복도를 스튜어디스보다 빈번하게 서성대는 이십 여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마치 약수터에 온 듯 아무 거리낌 없이 좌우복도를 열렬히 누비는 그들의 손에는 주스 한 잔 씩이 들려있었다.
그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신경 쓰였지만, 혈액순환을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괜히 죄송스러워졌다.
사실, 출발 직전 밤을 새 가며 짐을 챙긴 탓에 기내식을 먹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뭘 하더라도
금세 잠에 빠져버렸기에, 돌아다니는 분들이야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한 켠으로 같은 돈 내고 눈치 보며 찌그러져 있는 나보단,
종횡무진 비행기 투어를 하는 그 모습이 부럽기도 했음이다.
기내식은 두 가지 메뉴 중 선택권이 있는 듯 했지만, 내 자리쯤 왔을 때는 남은 것이 내 선택이었다.
처음엔 생선 요리, 그다음은 장어덮밥이었고 간이 세긴 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모스크바까지의 10시간은 취침으로 가득 차 버려 빨리 흘러간 탓에,
도리어 다섯 시간의 환승 대기가 훨씬 길게 느껴졌다.
나보다 사나흘 먼저 출발한 분의 친절한 후기 덕분에 별다른 문제없이,
그리고 기대 또한 없이 성공적으로 리투아니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러시아 말로 가득한 곳에서 이리저리 헤매다 어눌한 영어로 길이라도 물어봤어야 기억이 더 남았을 텐데.
자판만 몇 번 두드리면 안 나오는 것 없는 시절이기에 남들이 하였던대로 하면 안전하고, 마음 편하다.
대신 그만큼 두려움도 긴장감도, 그리고 기대도 없다.
적어도 다른 이의 기억을 답습하기 위해 온 길이 아니라면,
초행길에 대한 막연한 걱정 또한 그 순간을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일 테다.
리투아니아행 비행기에서 나눠주는 샌드위치는 요 근래 먹어본 음식 중 단연 최악이었다.
식빵과 치즈, 야채에 무슨 짓을 했길래 한 군데 모아놨다는 이유로 그렇게 역한 맛이 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환승을 기다리며 모스크바 시간으로 맞춰놓은 핸드폰 시계를 보았다.
비행기는 제시간에 도착했고 그저 멍한 상태로 리투아니아에 첫 발을 디뎠다.
영하 20도의 나라이니 옷을 단단히 챙겨오라는 말에 잔뜩 졸아있던 터였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오산이라는 듯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은 뭉게구름마냥 허옇게 잔뜩 올라왔지만,
내 입김이 지나치게 따뜻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분명 한국이 더 추웠다.
리투아니아 공항은, 그리고 짐 찾는 곳은 공항이라기보다 작은 역사 같았다.
몇 개 없는 작은 레일을 둘러싸고 혹시나 분실되었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전 세계인이 모여들었다.
가장 먼저 나온 짐의 주인은 복권이라도 당첨된 양, 승리감 짙은 미소를 지으며 출구로 향했다.
Fragile을 캐리어에 붙이면 가장 위에 싣기 때문에 짐 찾을 때 빠르게 나온다던 조언은 나에겐 예외였나 싶다.
짐 나오는 순서야 대중없더라. 짐을 다 찾고 돌아봤을 때 이미 다 가고 빈 레일만 돌고 있었으니.
춥기만 하고 눈은 그렇게 자주 오지 않는다던 말과는 달리,
유난히 작년에 한국에서 보기는 힘들었던 눈이 빌뉴스 공항 앞에는 짙게 깔려 있었다.
멘토가 데리러 나온 듯한 다른 한국인 교환학생을 보며 잠시나마 부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우뚝 서있는 호텔을 발견하곤 괜한 헛기침을 두어번 하고선 힘차게 카트를 밀어댔다.
침대가 두 개나 놓여있는 널찍한 방.
이제부터 오롯이 혼자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스몄다.
긴장인지 설렘인지 모를 감정보단 18시간의 비행으로 떡진 머리를 씻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부모님과 짧은 통화 후 바로 잠을 청하려 노력했지만, 시차 적응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