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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트 Jun 29. 2015

리뚜이야기_4 / 카우나스 (Kaunas)

리투아니아 교환학생기) 1월 31일. 카우나스

 

소보라스 성당에서 바라본 카우나스의 시내. 길이 단순해서 참 좋다.

의도적으로라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도시.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본 풍경은 군복무를 하던 평택의 누렇게 뜬 농경지 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논이나 밭이 있을 자리에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앙상하기도, 두툼하기도 한 나무들이 빼곡히 줄 서있었다는 것. 



리투아니아의 독립기념일 행사. 들은 바로는 독립기념일이 총 3번 있다.

뒷걸음질 치는 풍경 뒤로 나무들은 스러져갔고, 

다 낡아 버린 탓에 건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심되는 것들이 얼룩진 창문들을 채워나갔다. 

기차는 도시의 호흡이 더욱 빠르다는 것을 아는지, 그에 맞추듯 조금씩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행사 내내 미동도 않으시던 참군인

2010년 7월 26일. 당황스럽게도 벌써 5년 전이다. 

공군 병장 만기제대라는 타이틀을 얻고자 집을 나섰던 때로부터.

강산도 변하다 말아 버릴 겨우 5년 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름 내 인생의 오분지 일이나 차지하는 시간이기에 아주 먼 시절의 이야기 같이 느껴진다.



리투아니아에는 여군도 상당히 많다

고생다운 고생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삼시 세 끼 배 땃땃이 자라 왔기에

오롯이 혼자로서 새로운 곳에 내동댕이쳐지는 일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남들이 하는 평균적인 군생활보다 심신 편안한 시간을 보냈기에 군에 대해 특별히 할 말은 없다. 


제대를 하고 나면 다른 선배들처럼 술잔과 함께 내가 한 고생이 최악이었음을 고래고래 질러댈 줄 알았건만, 

할 말이 없는 것은 이전과 매한가지라, 군대 이야기는 여전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차를 타고 창 밖을 보고 있자니 지겨웠던 그 시절이 떠오르더라.



수줍은 탓에 뒷모습 밖에 찍지 못했다

아무 것도 없이 뻣뻣한 몸뚱이 하나로 들어가, 

못난 얼굴을 그나마 가려주던 머리털까지 양털깎이로 박박 밀리고 나니, 

그곳에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 곳에 가기 전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 또한, 사실은 그게 아니더라. 

내 옷, 내 신발, 내 집, 그리고 내 가족. 

어느 하나 스스로 애써 얻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발가벗겨진 채 굴욕적인 신체검사 따위 등을 받으면서 수치심보다는 무력감을 더 느꼈다. 

어느새 이십 년이 묵어버린 이 혈혈단신으로 할 수 있는 건 대체 뭘까 하면서.



우리나라로치면 ROTC 같은 느낌이었던 군인들

시키는 것만 순종적으로 해 왔던 인생이라, 뭐든 간에 시키면 잘 할 자신은 있었다. 

허나 아이러니한 건, 철저한 계급사회의 제일 밑바닥으로 들어가 

정말로 시키는 것 말고는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오자,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생각이 무성히 싹텄다.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그 고민은 끝이 없었고, ‘사람’이라는 지극히도 추상적인 결론 말고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지만, 알게 모르게 그 생각들이 지금까지의 원동력이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독립기념일 축포

다른 이야기지만, 생각해보면 군대만큼 혁신적인 조직도 없다. 

5년이든 5개월이든, 심지어 5일이든 나보다 먼저 들어간 놈들은 하나 같이 떠들어댄다. 


나 때는 안 그랬다고. 


어조에서 풍기는 불쾌감만 감수하고 다시 한 번 귀 기울여 들어본다면, 

이놈의 조직은 매일 매시간 발전하고 있다는 말이다. 

혹여 그 혁신을 내가 체감하지 못할 것이 우려가 된 건지, 

‘너는 지금 굉장히 좋은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라는 경험론으로 점철된 말들이 좀 지나친 게 흠이지만.

 



그렇게 책임과 의무로만 가득 찼던 2010년부터 12년까지의 혼자인 시간들을 되새김질하며, 

넘치는 자유까지 덤으로 주어진 2015년의 카우나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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