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교환학생기 ) 추운 겨울을 내쫓는 굿바이 윈터 축제
꾸준히 쓰자 다짐했건만 역시나 쉽지가 않다.
처음 카우나스에 도착했을때,
내가 알던 유럽의 도시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어 덥석 겁이 났다.
번화한 도시처럼 높은 건물이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무슨 양식의 오래된 건축물이 그 자리를 고스란히 지키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겉보기에 다 스러져가고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나고 녹이 슬어버린듯한
낮게는 3층, 높게는 5층 정도의 사각 반듯한 건물들만 드문드문 줄을 서 있었고
앙상하게 마른 나무들도 드문드문 서 있어 황량함만 더했다
겨울은 또 어찌나 춥던지 소복이 쌓인 눈들보단
단단히 얼어버린 얼음장판이 여기저기 퍼져있었다.
‘바르샤바 대학교를 더 높은 지망으로 쓸 걸 그랬나, 폴란드도 좋다던데’
라는 생각이 빠르게 스쳤지만,
한국에서 연이 닿아 만났던
리투아니아 친구의 마중 덕택에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학교가 배정되고 난 후
리투아니아가 어디냐고 되묻는 친구들의 의아한 표정을 즐기기만 했지,
한국에 리투아니아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종종 사람이 고픈 인생줄이라 갖은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주최한 고등학교 동창회.
그간 서로 뭘 하며 살았는지 나누는 이야기 중에,
이 낯선 나라의 이름에 질문이 아니라 반가움으로 대답하는 친구가 있었다.
나보다 먼저 그 곳에 다녀온 친구는
마침 친하게 지내던 리투아니아 친구들이 한국에 놀러 왔으니 같이 만나보자 권했고,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리투아니아 사람은 대체 얼마나 예쁜지 궁금하기도 했고.
제주도에 돌, 바람, 여자가 있다면
리투아니아에는 감자, 맥주, 금발의 미녀가 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의 미녀가 훨씬 잘 알려져 있지만,
지도를 펼쳐보면 위치도 거기가 거긴지라 사람들의 생김새도 유사하다.
그저 나라가 잘 알려지지 않은 탓.
지식인에서 우크라이나에 가는 게 눈치가 보인다면
리투아니아를 가보라는,
경험에 의존한 꽤 고급진 답변도 스치듯이 봤다.
그렇게 생에 처음 만난 리투아니아 친구와 사실 그렇게 친해지진 못했는데,
막상 낯선 땅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니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일 것 같더라.
동생과 함께 사는 집이라며 안내하던 집은 황량한 여러 건물 중 하나였다.
그 속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갖은 걱정을 한 것도 잠시,
집 안은 너무나 깨끗하고 아늑했다.
내부는 이렇게나 좋은데, 건물 외관은 저렇게 방치해놓는게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나중에 물어 알게 된 것인데,
역사적으로 침략을 너무나 자주 받았던터라
공들여 만든 건물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무너졌고,
그러다 보니 예쁘게 잘 만들기보다
당장 건물을 쌓아 올려 살 곳을 만들기에 급급했다고 한다.
언제 다시 무너뜨릴지 모르는데
관리가 제대로 되었을 리도 만무할 테고.
최근 들어 우리나라가 재개발하듯 추가 시공을 한다고는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지지부진.
역사적인 이유는 논외로 두고,
보이는 것에 쓸데없을 만큼 민감하게 살아온 건 아닌지 괜히 반성을 하게 되더라.
사람이 실속이 있어야 한다며,
그래서 착하고 똑똑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얼굴 뜯어먹고 살 거 아니라고 하면서도
또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으니까.
그렇게 많이 친하진 않다고, 그래서 낯을 가리던 내게
친구는 빵과 커피를 내왔고
몸도 맘도 편하게 있다 가라며 먼저 다가와 주었다.
영어에 자신감이 없어 어버버 대던 말들을 하나하나 귀기울여 들어주었고,
자신의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꺼내가며 서서히 거리감을 좁혀왔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이 표류하는 헛헛함을 어쩜 그리 잘 아는지,
한국에서 이 친구를 만난 건 참 다행이고 행운이라 생각했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연락을 한다거나 가끔 만나는 사이도 아닌 동창이었다.
서먹한 사이까진 아니지만서도,
몇 년만에 만난 친구 덕으로 걱정과 불안으로 휩싸일뻔한 시간에
사치스럽게도 아늑함을 누리고 있으니
인연이라는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고마울 따름이더라.
욕심이나 귀찮음을 덜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먼저 신경 썼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을지도,
덕분에 나도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를텐데.
이야기는 끝났는데, 사진이 남은 탓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