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너털웃음을 지으며 모두에게 말해줘요.
결혼식에서 신부가 부모님을 안아주는 순간은 항상 벅차다 못해 마음이 아리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친구의 부모님이 우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덩달아 눈물이 터져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결혼식이 낯설 나이도 아닌데, 꼭 신부가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포옹할 땐 어김없이 울컥하고 눈물이 차오른다.
서로 포옹을 나누는 신부와 신부 측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 결혼식엔 우리 엄마, 아빠가 오실 수 있을까?
혼주석에 두 분이 함께 계실 수 있을까?
혼주석. 당장 결혼할 일도 없을뿐더러 결혼에 별로 뜻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결혼식 혼주석에 부모님 모실 걱정이라니, 누가 보기엔 이 걱정은 세상 별스런 걱정이긴하다.
지인의 결혼식을 갈 때마다 딱 그 장면에서 참을 수 없이 마음이 먹먹해지곤 하는 이유는 아마도, 어쩌면 먼 미래 나의 결혼식에서, 나는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너거 아부지는 몇 년이나 더 살겠노. 허허"
아빠가 이렇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할 때면, 나는 금세 속상해져서 아빠에게 버럭 성을 내버리게 된다. ' 형제들 중에는 팔순을 넘긴 사람들이 없다.'며. 아빠 자신도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겠느냐는 말을 허허 웃으며 말씀하시는 모습이 나는 너무 속상하고 속상하다. 그런 아빠에게 나는 고작 '따순 밥을 드시고 무슨 그런 소리를 하시냐, 천년만년 나랑 살라'라고 떼를 쓴다.
그런 거 아닐까.
내 인생이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는 명확한 분기점일 세리머니에 누구보다 궁금해하고 기뻐할 사람인 엄마 아빠가 있어주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
결혼만큼이나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은 일인데, 이런 글을 쓰고 있노라니 이젠 말도 안 되는 욕심조차 난다. 먼 훗날 내가 낳을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주셨으면. 그 아이의 재롱을 보고 즐거워했으면 하는 그런 별난 욕심. (써 놓고 다시 읽는데 정말 응?이다..)
그 아이는 아마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현관에 앉은 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1교시부터 종례시간까지 읊어야 신발을 벗고 들어오던 어린 시절의 나를 닮았을까. 그렇다면 내가 낳은 아이는 엄마 딸을 닮아 말도 빨리 뗄 테고, 말도 엄청 많을 텐데. 그걸 보면 또 얼마나 신기해하시고, 재미있어하실까.
아빠한테 축사를 부탁하는 상상을 해봤다.
아마 아빠는 뭐 그런 걸 하냐고 부끄러워하시다가, 결국엔 승낙하시고 엄청 긴장하실 테지. 하객들 앞에서 말씀을 하시면서 점점 기분이 좋아져서 목소리가 엄청 커지겠지. 엄마는 '아이고, 목소리 좀. 조용조용 말씀하세요!' 하실 테고. 아빠 웃음소리에 아마 식장이 쩌렁쩌렁 울릴지도 몰라. 엄마는 우실까. 엄마는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실까.
엄마, 아빠. 그때 내 곁에 있을 나의 반려자에게 뭐라고 할 거야? 그때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
내년 봄, 부모님과 축사를 미리 촬영해볼까 한다.
미래의 비혼식이 되었든, 결혼식이 되었든 오래오래 함께이면 좋겠어. 내년 봄이 오면, 셋이 오붓하게 사진도 찍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