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긴편집장 Sep 11. 2020

4. 못난 글은 못났다

#못난 글 #퇴고 #어려운 문장 #뻔한 문장 #꼬인 문장 #퇴고

못난 글은 왜 못났을까.


못난 글은 그냥 못났다


   아마 지나가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은 매우 인상적인 표현이고, 또 잘 생각해보면 현실에 딱 들어맞는 듯하다. 행복한 가정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거의 비슷하다. 화목하고 서로 다투지 않고 배려하고 대화도 많이 하는 그런 화기애애한 ‘가화만사성’한 가정.

   그런데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정말 다양하다. 고부 갈등, 가치관 차이, 집안일 분배 문제, 돈 문제, 우울증 문제, 알코올 중독 문제, 도박 중독 문제, 불륜 문제, 자녀와 부모가 소통하지 않거나 등등 수만 가지의 이유와 사연이 있다.

   여기서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의 글쓰기 버전이 땋!(유시민의 글쓰기 특강,168쪽 참고)


   “못난 글은 다 비슷하지만, 훌륭한 글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가정’을 ‘글’로 바꿨을 뿐이다. 근데 딱 들어맞는다. 훌륭한 글, 잘쓴 글은 여러 이유로 훌륭해 보이고 잘 썼다고 생각된다. 문체가 훌륭하거나 팩트를 아주 예리하게 집어냈거나 논리가 좋거나 새로운 발견이 있거나 등등. 또한 글은 독자에게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으니, 훌륭한 글은 저마다 이유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못난 글은 그냥 못났다!

왜 못났는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딱 보면 안다. 앞서 언급했던 ‘문법적 직관력’만으로도 못난 글을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못난 글은 100명이 보면 대체로 100명에 가까운 사람이 못났다고 말할 것이다. 못난 글의 공통 속성이 있다는 말이다. 


   못난 글은, 그냥, 못났다. 못난 글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못났다.


모~옷~난~노~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못난 글은 못났다.


못난 글의 속성


   그렇다면 못난 글이란 무엇일까.

   못난 글들에는 공통 속성이 있다. 간단하다. 바로 ‘읽기 싫은 글’이다. 못난 글은 다 읽지 않는다. 읽다가 바로 넘긴다. 시간이 아까울 정도인 것이다. 내 금쪽 같은 시간을 못난 글 따위에 뺏기기 싫다! 그냥 스킵. 만약 못난 글을 어떤 특정한 이유로 무조건 다 읽어야 한다면, 그것만큼 지옥이 또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못난 글을 아주 명확하고 간단하게 정의하겠다.

   못난 글은 그냥 읽기 싫은 글이다!

   왜 그 글이 읽기 싫은지 생각해보자. 컨디션 난조, 난독증 등 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어떤 글이 읽기 싫은지 생각해보자. 아마도 다음의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일 것이다.


   ‘뜻을 알 수 없다’ or ‘재미가 1도 없다’


   간단한 문제다. 뜻을 알 수 없으면 읽기 싫고, 노잼이면 읽기 싫다. 둘 중 하나면 그나마 다행. 두 가지 모두 속하는 글이라면 과감히 내려놓을 것!

   여기서, 뜻을 알 수 없는 글은 ‘어려운 문장’이 많거나 ‘꼬인 문장’이 많다는 뜻이고, 재미가 없는 글은 ‘뻔한 문장’이나 ‘꼬인 문장’이 많다는 뜻이겠다.

   중요한 것은 꼬인 문장은 뜻을 알 수 없게도 만들지만, 재미 없게도 만든다는 것이다. 문장을 억지로 꼬면 안 된다는 말이다. 대체로 문학적 글, 특히 시가 그렇다. 꼬여 있으니, 뜻을 알 수도 없고 재미도 없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이상하게~ 꼬였네~ 스크류바는 맛있기라도 하지.


   하는 일과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읽기 싫은 글만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읽기 좋은 글만 쓰는 사람이 있다. 후자를 우리는 ‘글빨’이 좀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읽기 싫은 글만 쓰는 사람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타인을 배려한다면 읽기 좋게 써야지! 따라서 글쓰기는 타인을 배려하는 윤리 문제와도 관계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려운 문장, 뻔한 문장, 꼬인 문장은 무엇일까?


어려운 문장


   어려운 문장은 말 그대로 어려운 단어와 수식이 많이 들어 있는 문장이다. 일반적으로 어려운 문장은 전문적인 공간에서 작성되겠지만, 문제는 그 문장을 누가 보느냐이다. 방금 전에도 언급했지만, 문장은 타인(독자)을 배려하는 윤리의 문제도 개입되어 있다! 예컨대, 메디컬 드라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의학 용어들이 난무한다고 해도, 의사들끼리 다 알아들으면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의학용어를 환자에게 말할 때다. 훌륭한 의사일수록 의학 용어 그대로 환자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육상에서의 사회 재난과 자연 재난을 관장하는 부서가 각각 본부조직과 외청으로 이원화되어 있고, 해상에서의 재난은 해수부와 해경으로 분산되어 있어 재난 안전을 통합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육상과 해상의 재난, 사회 재난과 자연 재난을 모두 통합하여 국가안전처로 일원화하여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철저히 책임 행정으로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안전처가 하루라도 빨리 출범해야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한 획기적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청와대 국무총리 담화문(2014/7/8)


   2014년 국무총리 담화문이다. 소리 내어 읽어보자. 당신은 무슨 말인지 이해했는가. 딱히 전문용어라고 말하긴 어렵고 그저 행정조직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인데,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다. 심지어 이 글은 텍스트의 형태가 아니라 말의 형태, 즉 담화문이니 기자와 일반 시민을 앞에 두고 담화문을 읽는 것인데, 이 문장들을 귀로 듣고 그 누가 한번에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구를 위한 문장인가. 모든 국민이 쉽게 이해할 줄 알고 쓴 문장일까. 아니, 이 문장을 쓴 사람은, 이 문장들이 무슨 뜻인지 알고 썼을까.

   여기서 팁 하나. 글 쓴 본인이 자신의 글을 읽고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반드시 문장을 다시 써야 한다. 자기 자신도 이해시키지 못했다면, 하물며 타인을 어떻게 이해시키겠는가.


(수정)
그동안 육지의 사회 재난과 자연 재난을 책임지는 부서가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으로 나뉘어 있고 바다의 재난 대처는 해수부와 해경으로 갈라져 있어서 정부가 재난 안전을 제대로 기획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책임과 권한을 모두 국가안전처 한곳에 모아 육지와 바다의 재난, 사회 재난과 자연 재난 모두에 더 잘 대처하고 철저하게 책임지는 행정을 하겠습니다. 국가안전처를 하루라도 빨리 출범시켜 획기적 변화를 시작함으로써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더 확실하게 보호하겠습니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에서의’는 일본말투니까 지우고, 육상과 해상은 쉽게 육지와 바다로, ‘이원화’, ‘분산’이라는 말은 ‘나뉘다’, ‘갈라지다’ 등으로 쉽게 정리했다. ‘통합적’이라는 말 또한 ‘제대로’라는 바꿨고, ‘일원화’, ‘효율적’, ‘책임 행정’이라는 말은 쉽게 더 잘 대처하고 철저히 책임지겠다는 식으로 써도 충분하다.

   다시 말해 나쁜 글은 쉬운 것을 어렵게 말하고, 어려운 것을 더 어렵게 말한다. 좋은 글이 되려면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해야 한다. 이것은 곧 내공의 문제다. 어려운 것을 어렵게 말한다는 것은, 어려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자기도 이해를 제대로 못했으니, 남에게도 어렵게 말할 수밖에. 반면, 어려운 것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은 쉽게 말할 수 있다. 어려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육화(肉化)시켰기 때문이다.


뻔한 문장


   둘째, 뻔한 문장. 말그대로 상투적이고 예상 가능한 문장들이며,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글이다.


문학은 언제나 ‘길찾기’의 여정이었다. 서사시가 고향을 잃고 방황하는 영웅들의 길찾기를 그려냈다면, 소설은 목적지를 잃고 헤매는 문제적 개인들의 떠남을 이야기해왔다. 그러므로 문학의 형식은 필연적으로 여행의 과정을 닮아있다. 여행은 언제나 지금 이곳으로부터의 떠남이고, 또한 지금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한 떠남이다. 하지만 돌아옴은 변화를 수반한다. 새로운 사건과 세계와 조우하면서 내적인 변화를 겪게 된 여행자가 제자리에 돌아온다면, 그것은 이전의 시간과 단절된 새로운 존재가 회귀하는 것이다. 따라서 변화한 존재가 머무는 이 현실 역시 다른 공간으로 바뀌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기에 여행은 개인을 삶으로부터 일탈시켜 현실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꽤 오래된 스터디 동학의 글을 허락받고 인용하였다. 이 글에서 ‘문학’을 ‘길찾기’나 ‘여행’으로 보는 것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고 뻔하다. 그것을 8문장이나 썼으니, 읽기가 싫다! 더욱이 이 글의 첫 문단이 바로 그 뻔한 문장들로 채워져 있으니, 그 글의 질(퀄리티)은 보나마나 뻔하다.

    남들 다 아는 말, 상투적인 말을 클리셰라 부른다. 글에 클리셰가 많을수록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말이자, 글쓴이가 게으르다는 것을 반증하게 된다. 바로바로 떠오르는 대로 대충 쓰고 얕게 생각하면서 퇴고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글 역시 skip.


꼬인 문장


   셋째, 꼬인 문장. 문장이 꼬였다는 것은 일반적인 주어, 서술어 문장 형식이 한없이 늘어나면서 복문 안에 복문이 겹쳐지는 경우에 해당한다. 프랑스어나 영어는 복문, 혹은 ‘안은 문장’(겹문장)이 허용되만, 한국어는 전혀 그렇지 않다. 또한 주술관계가 엉킨 경우에도 해당된다. 글쓸 때 대부분 저지르기 쉬운 실수(혹은 테러)다.


IT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나감에 따라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갖게 되고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는 일은 시간문제일 뿐이며 인간의 도구로서가 아닌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발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미래의 사회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는 인간이 살아남기 위하여 자의식을 가지지 못한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현대의 관계와 비슷한 모습의 지배 복종의 관계가 될 것이며, 인간은 인공지능의 발달이 일정한 단계 이상으로 성장하여 자의식을 가지지 못하게끔 인공지능들을 억제하고 통제할 것이다.


   대학교 강의에서 받은 과제 글을 각색하였다. 소리 내어 읽어보자. 숨가쁘지 않은가. 문장이 끝날 생각이 없다. 고쳐보자.


(수정)
IT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공지능은 자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는 일은 시간문제가 될 것이며, 인간의 도구가 아닌 자율적인 존재로 발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미래 사회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현대와 비슷한 모습으로 지배 복종의 관계가 될 것이다. 인간은 인공지능이 일정한 단계 이상 성장하여 자의식을 가질 수 없도록 인공지능을 억제하고 통제할 것이다.


   긴 문장들을 최대한 짧게 잘랐다. 의미상 동일해 보이지만, 고친 글이 아무래도 읽기 편하다. 꼬인 것을 풀었으니까. 주어만 다시 찾아주었을 뿐이다.

   여기저기 글쓰기 관련된 교재나 강의에서 늘 말한다. 문장은 최대한 짧게 쓰라고. 다 이유가 있다! 짧게 써야 문장이 꼬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문장을 길게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할말은 많은데 정리가 되지 않은 것이다. 짧게 쓰려면 생각이 정돈되어야 하고, 논지가 명확해야 한다. 길게 문장을 쓰고 짧게 다시 다듬어야 한다. 문제는, 다듬는 과정이 초고를 쓴 과정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그러니, 아이러니하게도 짧은 문장을 쓰려면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꼬인 문장을 쓰게 되는 것이다. 오랫동안 글과 씨름할 시간이(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제발 문장은 짧게 쓰자.  문장이 길어지면 꼬이기 쉽다. 짧게 끊다보면 주어를 찾게 된다. 주어가 보이면 읽기가 쉬워진다. 쓰기도 쉬워진다. 우리 모두 쉬운 글을 쓰자.


   정리해보자.


   1. 쓸데없이 어려운 말 쓰지 말고, 쉽게 풀어 써라. 쉽게 쓴다고 해서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다.

   2. 남들 다 아는 말 쓰지 말고 깊게 고민하라. 남들 다 아는 것을 시간 내서 읽지 않는다.

   3. 문장이 길어지면 무조건 짧게 끊어라. 길게 쓰다 보면 주어와 뜻이 사라진다.


   이렇게 우리는 못난 글을 알아보고 수정할 수 있다. 당신이 꼭 글 쓸때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이는 글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삶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결국 글은 남을 배려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물론, 못난 글을 수정하려면 쉽지 않고, 또 시간이 무척 많이 걸릴 것이다. 몇 배의 수고가 요구된다.

   여기서 ‘찐’ 기술 하나 들어가겠다!


   ‘소리내어 읽으면서 퇴고하라!’


   늘 내가 강조하는 말이다. 대학교 강의, 일반인 강의, 청소년  강의, 스터디, 시 합평회, 술자리, 수다 등등 언제 어디서나 늘 하는 말이다! 가장 좋은 퇴고법은 소리내어 읽으면서 고쳐가는 것이다. 어려운 문장, 뻔한 문장, 꼬인 문장이 다 보인다. 읽으면서 목에 ‘턱턱’ 걸리기 때문이다. 발음하기 어렵거나 숨이 가쁘다면 바로 수정할 것! 진짜 퇴고할 게 눈에 보인다. 정말 ‘강추’한다.


못난 글을 알아봐야 하는 이유


   자, 못난 글을 알아보고 퇴고했다고 치자.

   여태 못난 글이 무엇인지 설명했지만, 못난 글을 알아봐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바로 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글쓴이인데, 글쓴이가 독자보다 먼저 글을 읽게 되므로, 고칠 부분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내가 못난 글을 먼저 알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남의 글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기 전에, 나의 글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무조건 내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며 보는 눈이 없다면, 노답!


하하하. 내가 쓴 글인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하하하.

 

  글쓴이가 자기 글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 자기 글이 못난 글임을 알아보고, 그것을 고칠 수 있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겸손의 문제가 아니다. 예리하고 객관적인 눈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 여기서 기술 하나 더 들어가겠다. 퇴고할 때 좋은 팁이다. 내가 늘 하는 방법이다. 영업비밀이기도 하다.


   ‘쓰다 막히면 글 처음으로 돌아가 소리 내어 읽으면서 막히는 부분까지 내려오라!’


   굳이 퇴고 시간을 따로 낼 필요가 없다. 쓰면서 퇴고도 같이 하는 것이다. 이 팁에는 정말 궁극의 장점이 있다! 막힐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읽고 고쳐나가니까 문장이 가지런해질 뿐 아니라, 계속 읽으면서 내려오니 막힌 곳이 ‘뻥’ 뚫리기 시작한다! 읽으면서 계속 고민하니까.



쓰다 막히면, 머리를 쥐어 짜지 말고,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라. 펌프질하듯. 한번에 뚫리는 변기는 없다!


   글이 막히면,  큰일났다 하고 ‘멘붕’에 빠질 것이 아니라, 다시 글의 처음부터 읽으면서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라. 그러다 보면 길이 열린다. 퇴고는 덤. 그래도 막히면 계속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무한반복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뚫린다. 그리고 그렇게 무한반복으로 첫문장으로 되돌아가다 보면, 문장이 정말 흠 잡을 곳 없이, 군더더기 하나 없이 완벽해진다.

   이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보이지만, 오히려 따로 퇴고할 필요 없고, 막혀서 끙끙거리는 시간을 더 줄일 수 있다.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빠른 길이 될 때가 있다. 특히 글쓰기에서는 그렇다.



ps : <글쓰기 파내려가기>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본 글은 그 책의 내용 중 일부입니다.
https://search.daum.net/search?w=bookpage&bookId=5460451&tab=introduction&DA=LB2&q=%EA%B8%80%EC%93%B0%EA%B8%B0%20%ED%8C%8C%EB%82%B4%EB%A0%A4%EA%B0%80%EA%B8%B0
매거진의 이전글 3. 맞춤법에 대한 오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