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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May 07. 2020

 이별

written by 다온



귀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모든 소음은 고스란히 반대쪽 귀로 빠져나갔다. 조용한 듯 시끄러운 장례식장에서 나는 너에게 그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관 속에서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사람들이 꽤 오고 가는 터라 너의 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 몇은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데에 신경을 쏟고 있었다. 우리 또래의 너와 내 친구들은 몇 없었다. 대부분 네 가족의 지인들이리라.

너 뭐라도 좀 먹어. 그 몇 없는 친구 중 하나가 내게 음식을 권했다. 아니야, 생각 없어. 나는 고개를 설설 내저으며 거절했다. 정말로 허기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괜찮았다. 저 관 속에 누워있는 게 너라는 것도 실감이 나지 않는데,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공간이 네 장례식장이란 사실도 믿기 어려웠다. 그래서 더욱 아득해지는 느낌으로 가만히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몸이 땅에 닿아 있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붕 뜨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하고. 그러다 결국 내 몸이 땅에 닿아 있으므로,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인식하고. 나는 그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다시 소음 속으로 흐릿해지며 너를 떠올린다.


내가 끼니를 거를 때마다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짓고서 식사를 제때 하지 않으면 몸의 어디가 어떻게 나쁜지 혼을 내던 네 목소리가 들린다. 나를 걱정하며 단호하게 하는 말이었지만 그런 네가 한없이 사랑스러워서 나는 너를 그저 껴안아 버리곤 했다. 나를 챙기는 그 마음이 어찌나 고운지, 너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너의 자상함일 것이다.

내일이면 너는 중력에 이끌리지 않는 몸이 되어 어디론가 사라질 테지. 심장이 아릿하게 미어지는데도 눈물 한 줄기 흘리지 못하고 버릇처럼 꾹 눌러 참는 내가 안쓰러워질 참이다. 몇 시간 전 너의 어머니는 울다 지쳐 쓰러지셔서 장례식장과 연결된 병원 응급실로 업혀 가셨다. 그래서 내가 더욱 울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 가기 전 깊은 밤이 찾아오고 장례식장을 채우던 사람들이 하나둘 귀가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네 가족의 지인들로 보이는 몇몇 분과 친척들이 밤을 새우며 너의 곁을 지켜주었다. 아직은 장례식장에 올 일조차 거의 없을 나이라 그런지, 이 정도로 사람이 오가는 게 많은 편인지 적은 편인지도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두가 너를 정말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는 처음 만났던 유년 시절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네 주변 사람들이라면 모두 네가 이르게 가버릴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이를 줄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으리라. 안타까운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너의 어릴 적 일화를 풀어놓기도 했다. 웃으면서도 우는 것 같은 얼굴들이 다 함께 너를 떠올리고, 기억하고, 추억했다. 나는 그 모든 소리를 멀찍이서, 그저 이 공간에 함께 있다는 이유로 흘리듯이 듣고 내 기억 속의 너와 비교해본다. 대부분 틀린 것 없이 너는 햇살처럼 밝고, 파란 하늘처럼 말갛고, 타인을 끌어안을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이곳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당연하게 너에 대한 것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아는 너는 물론, 연인인 나만 알았을 너의 모습들까지 전부. 속상한 일이 있을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아무런 일이 없을 때에도, 언제든 내 이름을 불러주던 그 따스한 목소리. 하루의 일을 차근차근 알려주던 즐거운 얼굴도, 속상한 일에 입꼬리가 다 처진 채 말없이 안겨오던 체온도.

우리는 함께 한 시간이 오랜 만큼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너는 항상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거실 창문을 열어 아침 공기를 집에 들이고 개운하게 씻으며 잠을 떼어내었다. 네 발이 집 바닥에 닿았다 떨어지는 작은 발소리가 들려오면 그제야 나는 서서히 꿈에서 깨기 시작한다. 덜 깬 정신으로 더 자고픈 마음과 실랑이를 하며 뒤척일 즈음이면 시원하게 들리는 물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오고, 그에 조금 더 뒤척이다가 물소리가 끊기면 비로소 무거운 눈을 뜬다. 아침잠에 유독 취약한 나를 아는 너는 씻고 나온 직후에 나를 찾아온다. 부스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앉으면 머리카락 끝에 물기를 단 네가 다가와 나를 쓰다듬는다.


“잘 잤어?”


나는 웅얼거리며 제대로 된 대답을 내어놓지 못하고, 너는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다정한 손길에 이어서 입맞춤이 이마에 꾹, 그제야 나는 너를 안아 토닥이면서 아침 인사를 한다. 내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 네가 준비해주는 아침은 간단하게 시리얼, 시간이 많은 날은 구운 식빵과 달걀. 마주 보고 앉아서 짧은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나란히 양치질. 너는 세면대 앞에 함께 서 있는 그 시간을 좋아했다. 오늘은 무얼 입고 나가면 좋을지 골라주기도 하고, 그렇게 나의 출근 준비가 끝난다. 잘 다녀오라는 다정한 인사는 필수. 편한 옷차림으로 나를 배웅하는 너를 두고 나가야 하는 것이 나에겐 아침잠을 이기는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약간의 어리광을 부리느라 현관에서 버티면 사랑스러운 인사를 더 해주곤 했다. 나는 그 덕분에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가 생기는 듯했다. 사실은 네가 있기에 나의 세상이 움직일 수 있던 건데.

내가 일을 하는 동안 너는 집에서 편하게 커피도 내려 마시고, 아침 설거지도 해놓는다. 장을 보는 일은 퇴근하는 나와 함께 하자고 내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에 낮의 너는 한가로웠고 여유가 가득했다. 하지만 너는 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침대 위에서 편안하게 쉬거나 책을 읽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낮잠을 자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틈을 내서 전화한 내 목소리를 듣기도 하고.

퇴근해서 집에 오면 집 청소는 내가 맡아서 한다. 요리에 워낙 젬병이라 나 대신 네가 우리의 식사를 챙겨주면 집의 청소는 내가 모두 하기로 했다. 너는 주로 청소를 하느라 분주한 나를 소파에 앉아 바라보곤 했다. 내가 도울 건 없어? 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어오기도 하지만 나는 고개를 내젓고 거기 얌전히 앉아 있으라는 말로 장난스럽게 으름장을 놓는다. 나의 그 이상한 목소리에 너는 곧잘 소리내어 웃는다. 그리고 그 웃음 섞인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하며, 앉은 곳에서 내 청소가 끝날 때까지 조잘조잘 말을 걸어주었다.

네가 매일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이럴 때 말고는 내가 널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네가 아무리 아파도 너의 곁을 지키는 것밖에는 해줄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지켜만 보는 일은 연인으로서 가장 힘든 일이 아닐까.

어떤 날은 오후 무렵 퇴근한 나와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집에서 영화를 두 편, 세 편씩 연달아 보면서 맛있는 것을 먹는 날도 있었고 기분 따라 외식을 하는 날도 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말끔히 씻고 또 함께 양치질. 나는 태블릿을 가지고 놀 때 너는 책을 읽기도 했고, 우리 둘 다 가만히 누워서 서로를 마주 보다가 잠에 들기도 했다.

네가 먼저 꿈 속으로 빠져들고 나면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내 품 안의 너를 내려다보았다. 언제 봐도 사랑스러운 얼굴이다. 나를 온전히 믿으며 편안하게 잠든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온 세상이 환하게 느껴진다. 따뜻한 햇살을 품에 안으면 이런 기분일까.

대체로 평온했던 우리의 하루하루에는 서로가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네가 있기에 밝아지는 나의 세상도 이렇게, 너와 함께 잠든다.


자고 일어나니 몸에 담요가 덮여 있었다. 딱딱하고 낯선 바닥, 불편하게 구겨진 정장, 누군가의 통곡 소리. 몸을 일으키니 벽에 있는 시계가 보였다. 새벽 5시. 여기는 너와 내가 함께 잠들던 침대가 아니었다. 영정 사진, 네가 들어있는 관, 수많은 꽃, 꽃보다 훨씬 많은 눈물.


연인인 나를 향해서도 위로의 손길이 오갔다. 너의 아버지와는 오래도록 손을 맞잡고 있었다. 건조하게 마른 손등을 어루만져 드리며,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너의 아버지도 나에게 한숨 말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너의 아버지와 나는 맞닿은 손의 체온만으로 서로의 슬픔을 감히 가늠하고 위로하고 있었다. 너의 어머니는 쓰러졌다 깨어나신 뒤에도 계속해서 숨죽여 울고 계셨다. 너의 마지막 가는 길은 꼭 배웅하고 싶으셨는지, 누가 봐도 위태로운 모습이었으나 끝까지 너를 지켜보셨다. 입장만 다를 뿐 우리가 모두 너를 사랑하는 사람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아침에 어떻게 제사를 지내고 어떻게 관을 차에 실어서 이 화장터까지 왔는지 또렷하게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가 차에 탄 게 아니라 차에 나를 같이 싣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네가 예쁘게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은 내가 직접 들고 있었다. 손에 쥔 액자를 놓지 않으려 꽉 쥐었다. 흰 장갑을 낀 손이지만 그래도 너에게 닿고 싶어 네 사진을 살살 쓸었던 것 같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나무로 된 관 속에는 네가 누워 있다. 이대로 저기에 들어가면, 너는 훌쩍 날아가는 걸까. 단단한 관은 점점 모습을 감추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 안이 얼마나 뜨거운 곳일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네가 끝없이 불에 타고, 그 연기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디까지 오를 생각인지 너는 자꾸만 위로, 더 위로 향했다. 흩어지지도 않고 곧게 올라가는 너를, 목이 뻐근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계속 바라보았다. 어딘가에서 너의 어머니인 듯한 울음이 들려왔다. 작은 훌쩍임도 곳곳에서 들려왔지만, 나는 아직도 울지 못했다.


울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는 거지. 그걸 어떻게 다 막아내겠어. 아픈 것에 아파하고 슬픈 것에 슬퍼하는 것도 나름의 특권 아닐까? 그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거나 그대로 두는 것도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그리고 너도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어.


“마음껏 울어줘. 괜찮으니까.”


울 정도로 힘든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고 참아내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나 대신에 너는 곧잘 울었다. 여린 마음씨로 실컷 울고 나서 나에게 꼭 해주던 이야기였다. 나는 이제야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한 번 시작된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 흘러내렸다. 시야가 흐려질 즈음에 눈물이 쏟아져 내리면 다시 선명해지고, 또다시 차올라 흐려지길 반복했다. 흐릿하건 선명하건 간에 내 시선 끝에는 네가 있었다. 찬란하게 타오르는 네가, 더 높이 날아오르는 네가.

자그마한 일이어도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다정함. 나에게만 가득히 보여주는 귀여운 애교. 아픈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활기와 절대로 미워할 수 없는 장난기. 하지만 중요한 일에는 깊이 생각하고 확실하게 행동하는 진중함. 가끔 쓸쓸함을 머금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밤, 가만히 내 품에서 온기를 받던 작은 몸도, 너란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지에 대해 내가 가득 속삭여주고 나면 그제야 기쁜 빛으로 웃어보이던 해사한 얼굴도.

눈물 방울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뺨을 한가득 적시며 계속 울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억눌러 참았던 만큼 더 세게 밀려왔다. 일렁이는 슬픔의 바다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아직도 선명한 너였다. 네 목소리, 얼굴, 표정, 고운 선, 따스한 체온까지도. 너는 한참을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올랐다. 나는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울어도 된다던 네 말 하나에 하염없이 울고 있는데.

나는 네가 있어서 그 어떤 일도 괜찮았다. 네가 있기에 모든 것을 볼 수 있었고, 어두운 그 어떤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 너는 나에게 빛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네가 없는데, 나는,


*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떴다. 익숙한 곳이었다. 너와 함께 오던, 네가 다니던 병원의 냄새가 났다. 여기 응급실이야. 친구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 쓰러졌었어. 며칠 동안 아무것도 안 먹고, 울기라도 시원하게 울면 될 것을 참기만 하니까 그렇지. 피로한 몸이 견디지 못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무심하게 들었다.


네 말을 진작 잘 들었어야 했는데, 그치. 하지만 네 말을 듣고 처음부터 잘 울었어도, 나는 아마 이 모든 슬픔을 온전히 견뎌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너는 나의 빛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너는 나의 빛이다. 그것은 앞으로도 유효하다.

참 제멋대로다. 이미 너는 사라져 버렸는데 지금도 네가 나의 빛이라니. 하지만 네가 이런 제멋대로인 나를 용서해주길 바란다. 이 슬픔을 추스르고 나아가려면, 이 괴로움에 익숙해지고 네가 없는 매일을 살아가려면, 나에겐 빛이 필요할 것 같아. 그래서 네가 있어주면 좋겠어.


하얗게 타버린 네가 납골당에 잘 들어갔는지는 굳이 친구에게 묻지 않았다. 내가 시간을 내어 찾아가 인사를 하면 되는 일이기도 하고, 잘 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야 할 것 같아.”


담담하게 꺼낸 한 마디에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를 부르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래, 집에 가자. 네가 두고 간 물건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며 쌓인 먼지를 털어내다가 더이상 네가 없다는 사실에 또 한참을 울겠지만, 그럼에도 네가 가장 가득하고 선명할 우리의 집으로, 나는 돌아가야겠다.


지금도, 너는 나의 빛이야.   



____ 다온 writerda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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