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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May 17. 2020

▶ : play MUSICAL

written by 강 세화 

▶ : play MUSICAL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흥부자다. 흥이 넘쳐나서 대부분의 시간에 신이 나 있다.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부르는 것도 듣는 것도 즐겨한다. 장르를 불문하고 노래를 듣거나, 어떤 노래가 생각나 속으로 흥얼거릴 때 몸을 까딱거리면서 리듬을 타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흥 많은 내가 애호하는 또 다른 것은 상황극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밈’이나 드라마 대사,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같은 것들을 쓸데없이 잘 따라하는 능력이 있어, 틈만 나면 상황극을 하곤 한다. 그 덕에 이따금 누군가에게 ‘도라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가는 이런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뮤지컬이다. 오늘은 이 뮤지컬과 나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내가 처음으로 접한 뮤지컬은 영화 <하이스쿨 뮤지컬> 시리즈다. 서로 다른 성격, 취미를 가진 주인공들이 노래라는 연결고리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이야기인데, 어린 세화의 눈에는 뜬금없이 노래 부르며 춤추는 캐릭터들이 굉장히 멋져 보였다. 마찬가지로 그 영화를 좋아하던 언니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몇 번이고 다시 봤는지 모른다. 언니와 나 둘 중 하나가 운을 떼면 영화처럼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놀기도 했는데, 그 기억 덕분인지, 나는 뮤지컬에 큰 관심을 두게 되었다.


 뮤지컬에 눈을 뜬 나는 초등학교 때 무대에 서게 된다. 6학년이 되던 겨울, 언니가 다니던 음악학원에서 매년 강습 식으로 돈을 내고 뮤지컬 극을 올리던 재단의 프로그램을 소개해 줬다. 내가 엄마를 조르고 졸라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극을 올리게 된 작품은 <사운드 오브 뮤직>. 세계 2차대전을 배경으로 폰 트랩 대령, 그리고 그의 일곱 자녀와 가정교사로 오게 된 마리아의 이야기이다. 나는 남매 중 셋째인 ‘루이자’ 역할을 했는데, 정말 극의 내용처럼 대령 역, 마리아 역 배우님은 의자에 앉고 우리는 바닥에 두 분 곁에 둘러 앉아 노래를 배웠다. 웃음을 잃은 가정이 노래로 평안을 되찾는다는 이 동화 같은 이야기속의 한 부분이 된 듯 했다. 작품과 나와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한, 이런 멋진 경험을 어디서 또 할 수 있을까. 극은 꽤 본격적이어서 스튜디오에 가서 옷을 갖춰 입고 프로필 사진도 찍었다. 진짜 배우가 된 것처럼 핀 마이크도 차고, 멋지게 지어진 무대 세트에서 내 형제역할의 친구들, 배우들과 노래를 하고 춤을 춘 그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귀중한 순간으로 남았다.


 중학교 2학년이 된 나는 한동안 뮤지컬을 잊고 살았다. 의학, 보건 분야에 꽂혀 의료선교사가 될 거라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뮤지컬 <레베카>를 보러 가게 됐다. 정확한 경위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 문화의 전당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던 언니의 영향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가 아닌 실제 공연을 현장에서 보는 건 거의 처음이었기에 잔뜩 기대하며 자리에 앉았는데, 웬걸. 말그대로 대박, 레전드, 쩔었다. 노트북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듣던 사운드에 비해 피부로 느껴지는 진동과 귀에 꽂히는 배우들의 성량이 어마무시해서, 스크린으로 보던 것과는 몰입감에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몇 번이고 다시 돌려봐도 똑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화와는 달리 그날의 날씨, 음향, 조명 배우들의 컨디션, 모든 조건들이 맞물려 단 한번밖에 느낄 수 없는 직관의 매력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다. 


당시 ‘댄버스 부인’ 역할을 한 옥주현 배우님에게 특히 빠져들었는데, 주인공 ‘나’ 이전에 모시던 주인 ‘레베카’를 잊지 못하고 ‘나’에게 절규와 같은 노래를 하며 몰아붙이던 장면이 큰 인상을 남겼다. 곧 상대 배우분을 집어삼킬 것 같던 눈빛과 연기, 4회차 공연의 마지막이었음에도 떨어지지 않던 음정과 그걸 뒷받쳐주는 성량이 정말이지 살이 떨리도록 좋았다. 나의 마음에 뮤지컬이라는 한 영역이 생기게 해준 데에 단연 그의 영향이 큰 몫을 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이후 뮤지컬 배우로 다시 꿈이 바뀐 나는 용돈을 모아 혼자 뮤지컬을 보러 가기도 하고, OST 패키지를 사 온종일 틀어 놓고 부르기도 하며 뮤지컬의 매력에 깊게 빠지게 되었다. 넘버라고 불리는 뮤지컬 노래들을 죄다 섭렵해버리고, 내 목소리를 녹음해 뮤지컬 카페에서 평가를 받아 보기도 했다. 같은 배역이지만 배우마다 그 색과 표현이 달라 마치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같은 배우가 다른 극, 다른 배역, 또 다른 연출을 만나서 회차마다 새로운 작품들이 탄생하는 듯한 뮤지컬은, 내 진심을 바치지 않기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비록 고등학교 2학년으로 진학할 무렵 지금의 전공으로 다시 전향했지만, 여전히 난 내가 사랑하는 넘버를 흥얼거릴 때마다 작품 속으로 빨려 들어가 수많은 주인공이 되곤 한다. 당신도 노래를 사랑하고, 소설 같은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면, 노래를 부르며 내 감정을 토해내고 싶은 갈망이 있다면 뮤지컬에 빠져보라 자신 있게 추천하고 싶다.



____ 강세화 glorysehw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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