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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May 07. 2020

우울한 날에는

written by 범쥬



누군가 나에게, ‘지금 당신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몇 년 전의 나는 아마도 ‘나 자신이요.’ 라고 대답했을 것 같다. 

나는 종종 무엇이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한동안 지속되다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에 사로잡혔다. 때로는 고조된 기분일 때 벌려 놓은 일들을 수습하느라 고생을 하기도 하고, 롤러코스터보다 더한 감정의 변화를 스스로 따라가지 못해 패닉에 가까운 또다른 감정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이 장단인지 저 장단인지 맞추기 힘든 기분에 끝없이 끌려 다니며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 내가 해야 했던 첫 번째 일은 이것들을 어떻게든 다스리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이건 나조차도 모르는 나 때문에 곤경에 처할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지금도 완벽한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감정의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페달 위에 발은 올릴 수 있게 됐다. 종종 나의 통제를 벗어나 버리는 일이 생기긴 하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팀플 때문에 동화 ‘파랑새’를 다시 읽었다. 나는 동화 ‘파랑새’처럼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것은 어쩌면 정말로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물론 내 이야기를 듣고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 일기 쓰기

종이에 쓰든, 핸드폰에 쓰든, 꼬박꼬박 무엇인가를 쓰는 것은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종이 일기장은 조금 번거롭게 느껴져 일기장 어플을 사용하고 있는데, 언제 어디서든 일기장에 쉽게 접근해 기록할 수 있게 되니 자연스레 규칙적으로 일기를 작성하게 되었다. 일기를 쓰면서 일상 생활 속에서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기도 하고, 전에 없던 긍정적인 생각—이를 테면 ‘나 꽤나 괜찮은 사람이네’ 같은 생각들—을 하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이걸 조금 더 해 봐야겠다’ 혹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와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하고, 좀 웃기긴 하지만 스스로가 조금 기특해지기도 했다. 

나는 나의 일기장에 그날의 하루 일과를 전부 적기도 하고, 그때 당시의 감정만 적기도 한다. 형식은 자유지만, 나름대로 정한 한 가지의 규칙은 반드시 지킨다. 우울했으면 우울하다고, 행복했으면 행복하다고 솔직하게 기록하는 것이 바로 그 규칙이다. 이런 저런 기분이 뒤섞여서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모를 때, 직접 글을 남기고 그것을 읽어 보는 것은 나를 괴롭게 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더 냉정하고 빠르게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장된 감정이 아닌 진짜 내 기분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일기와 같은 기록들은 내가 스스로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겼는지, 잠은 잘 잤는지 등의 생활 패턴을 좀 더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며, 스스로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수도 있는 내 일상 속의 문제점을 발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누굴 만났는지, 밥은 뭘 먹었는지, 학교에서는 무엇을 했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등 순간순간을 기록하면서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기

좋아하는 것들로 주변을 가득 채워버리는 것도 내게는 좋은 방법이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해 보니 빠르게 감정이 제자리를 찾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을까’, ‘이 시간에 이렇게 놀아도 되나?’ 싶은 생각에 쉬지도, 뭔가를 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내고는 스트레스를 배로 받기 일쑤였는데, 이 시간이 그저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왔다갔다하는 감정에 지칠 때, 나는 주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거나 읽는다. 원래는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감정이 나를 흔들어 놓지 않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을 그만뒀다. 지금은 좋아하는 작가의 페이지를 구독한 뒤 신작을 읽어 보기도 하고, 내 페이지에 짧은 글을 써서 올리기도 하는데, 종종 친한 사람들과 함께 각자 쓴 글들을 공유하여 읽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활자를 읽으면 확실히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종이 책이든 온라인 상에 있는 글이든, 형태에 관계없이 자주 읽는 편이다. 이전에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책을 찾았다면 요즘엔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책을 찾는다.  


|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푹 자고 일어나기

때로는 좋아하는 것을 해 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숨 자고 일어나는 것을 택하는 편이다. 자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기분을 상당히 상쾌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나를 괴롭히던 감정과 맞설 수 있게 하는 힘, 좋아하는 것을 다시 좋아할 수 있게 되는 힘, 다시 시작해 볼 수 있게 하는 힘이 마법처럼 생겨난다.  


*


요즘 나는 이런 방법들로 감정을 다스리고 있다. 겉으로 보았을 때에는 뭔가 대단하고 어려울 것 같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절대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 

예전에는 감정을 나아지게 하려면 아주 많은 노력과 용기가,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감정에 이끌려 다니는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사소하지만 꽤나 확실한 나만의 방법을 찾고 나서는, 확실히 그런 날들이 줄어들었다.  

물론 때로는,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서 아주 큰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것은 우리 곁에 있을 수도 있다.  



____ 범쥬 its.me.bom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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