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 B 씨라는 필명 말고는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모를 텐데 도움을 주고 싶다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글을 올리자마자 댓글로도 참 많은 응원을 주셨고요.
울면서 썼던 보잘것없는 저의 글에
마치 우리 엄마처럼
큰 고등어를 구워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분도 계셨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고 싶다는 분도 계셨고
어설프게 내 집을 마련하는 글을 쓰면서는 건축업에 종사하니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도와주시겠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번져오는 그 따스함...
저는 단지 글을 썼을 뿐인데 받은 위로는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브런치의 이 이야기들로 책을 내고 싶다는 출판업계 분들의 메일도 몇 군데 받았습니다.
내가 책이라니... 기껏 이런 글로 무슨 책...
놀리시는 건가 싶기도 했고
너무 부끄러워서 단박에 거절 아닌 거절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출판사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그분의 출간 제의도 한차례 거절한 이후였습니다.
하나밖에 남지 않았던 핫팩을 번갈아 옮겨 쥐며 서울 어느 동네를 임장 하러 갔던 날이었습니다.
그저 브런치의 구독자이신 것이 너무 신기하고 감사해서, 한 번은 뵈야지 했던 분이었습니다.
"저는요... 글을 전문으로 쓰시는 분들처럼 필력이 좋은 것도, 그리고 화려한 묘사법이나 언어, 단어 그런 거 하나도 모르고요... 그냥 속에 있었던 생각들, 하고 싶었던 말들 쏟아낸 것뿐이라 글쎄요, 이런 이야기들도 책이 될까요? 사람들이... 읽을까요?"
국민학교 4학년때인가 담임선생님께 서예를 배웠습니다.
다행히 우리 집엔 언니들이 먼저 썼던 붓이 있었어요.
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과 친구들이 쓰는 붓은 정말이지 너무나 부드럽고 풍성하게 숱도 많았습니다.
내 붓은 숱도 얼마 없고 거칠고 쓰다 보면 자꾸 털이 툭툭 떨어져서 붓글씨 옆에 몇 가닥씩 흔적을 남겼지만 그래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재밌었거든요.
선생님은 잘 쓴 붓글씨는 칠판에 붙여주셨습니다.
낡은 붓으로 써 내려간 저의 화선지가 칠판에 자주 붙었습니다.
부끄러웠지만 속으론 배시시 웃었습니다.
"넌 왜 그렇게 잘 써? 나랑 한 번만 바꿔서 써보자, 응?"
"야, 내가 먼저 찜했어! 나랑 먼저 바꾸자, 응?"
친구들이 털 빠진 초라한 제 붓에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서예시간이 되면 친구의 것과 잠시 바꾼, 반에서 가장 좋은 붓으로 화선지 위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붓이 좋다고 다 잘 써지는 건 아니야. 쟤는 아무 붓이나 줘도 잘 쓸 거야. 각자 자기 붓으로 더 연습해라
선생님이 웃으시며 잔소리를 하셨습니다.
반에서 가장 초라한 붓을 가진 사람은 저였습니다.
친구들이 가지고 다니는 '용이 멋있게 그려져 있는' 얼굴만 한 벼루도 제겐 없었고, 묵도 선생님께 얻어 썼습니다.
제가 가진 서예도구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붓글씨를 못쓰는 사람인 줄 알았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
선생님이 설명하실 때 최대한 집중해서 듣고, 글씨 전체를 쓰려고 하지 말고 처음에는 가로획 세로획부터 매일 연습하라는 말씀에 그것만 계속했습니다.
그 시간이 모여서 큰 획도, 작은 획도 어렵지 않게 썼던 것뿐인데 선생님은 칭찬해 주셨고 친구들은 제 붓을 마치 마술붓처럼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잘 쓴다고 칭찬을 받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또래들 가운데 잘 썼으면 또 얼마나 잘 썼을까요.
선생님은 저의 가정 형편을 이미 알고 계셨을 겁니다.
아버지에게 자주 맞는 아이라는 것도요.
제가 진짜 잘 썼다기보다는 그저 칭찬을 해주고 싶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칭찬의 말과 칠판 앞에 내 화선지가 걸리는 장면들이 저를 얼마나 위로하고 힘나게 했는지는, 3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생생합니다.
이혼에 비정규직
거기에 아이 둘을 키워내야 했던 상황
실패자 같아서 우울했고 돌파구가 없어서 가슴이 답답했고 아이들이 잠든 후 술이나 마시며 한탄할 수도 없어서 써 내려갔던 아니 쓸 수밖에 없었던 글인데 사람들이 모여들어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날 것의 느낌인 지금 글들이 오히려 좋습니다."
추웠던 겨울, 카페에 마주 앉은 출판사 대표님이 용기를 주셨습니다.
글쓰기를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책으로 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쓴 글들도 아니었으며 그 소재마저도 굉장한 상상력이 바탕이 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아닌, 제가 닥치는 대로 밟고 지나온 순간의 기록이었을 뿐인데 제 글의 구독자라는 대표님은 또다시 저의 화선지를 세상에 걸어주려고 하신 것 같네요.
구독자님들이 제 글에 응원을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얼마못가 비공개로 하거나 몇 편 쓰다 말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 내 글에 댓글이 달리네? 하트가 늘어나네?'
아이들을 재우고 집안일을 마무리한 후 피곤해도 다시 책상 앞에 앉게 해주는 힘이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고 읽어주고 조언도 해주고 칭찬도, 격려도 해준다는 사실이 저를 힘나게 했습니다.
그 글들이 모여 마침내 책이 되었네요
저의 아이들과 엄마에겐 이 책에 대해 비밀로 하기로 했습니다.
엄마는 날 것 그대로의 제 이야기를 아시면 너무 힘들어하실 것 같고 아이들 역시 아빠, 고모 등 친척들과 편안하게 왕래하고 있어서 지금은 시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훗날
아이들이 엄마의 징징거림까지 웃어넘길 수 있을 때가 되면 슬며시 이야기해주려고 합니다.
그땐 온갖 핀잔을 들어도 반박 없이 능글맞게 웃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저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올 수 있게 응원해 주신 구독자님들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