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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Oct 04. 2020

엄마도 소리 내서 울어 이제(3)

이혼 후 이야기 #. 20

-엄마가 여관 청소하던 건물 말이다. 1층은 슈퍼였고 2층은 고깃집이었고 3층부터 여관이었잖아. 1,2층 화장실 청소를 1층 슈퍼 사장하던 아지매가 도맡아 했는데, 매일 그 청소하면서 오물 더럽다고 구시렁구시렁 하드라고. 


'아, 저거를 내가 맡아서 해주고 돈이라도 조금 받으면 니들 책값은 되겠다.'싶어서 언제 말해볼꼬, 오며 가며 눈치를 봐놨지. 


하루는 퇴근하는데 그 아지매가 카운터에 혼자 앉아있길래 자전거에 올라탔다가 다시 내려서 슈퍼로 안 들어갔겠나.


"아지매, 1층 2층 손님들이 쓰는 화장실 청소 매일 하기 더럽재요?"

"아이고, 말도 마소. 고깃집 술손님들이 얼마나 더럽게 쓰는지, 내 그거 치울라카면 매일 구역질이 난다니까요."


"... 그래서 말인데요, 내가 1층 2층 화장실을 매일매일 락스로 깨끗이 청소해 줄 테니 한 달에 15,000원만 내한테 주는 건 어때요. 


내가 하루에 몇 번이고 확인하면서 계속 청소해 놓을게요."


있잖아,

사람들은 더러운 거 하기 싫어한다. 

그런데 그걸 하면 돈을 받을 수 있지. 

그 아지매도 매일 얼굴 찌푸려가며 구역질해가며 청소하는데, 같은 건물에서 여관 청소하는 내가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청소해주면 서로 안 좋겠나? 


남들은 그 돈 받고 안 해주겠지, 근데 나는 가격을 싸게 하니까 맡겨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5,000원? 그게 작은 돈이가? 

그거 모아봐라. 

그 돈도 꽤 큰 금액이 된다.


아지매가 잠시 고민을 하드라고. 

나는 맡겨줄 줄 알았다. 

쪼매 더 깎아서 이야기할까 싶었는데 그때 그아지매가 카드라.


"그건 안될 것 같네요..."


그 돈도 아까웠겠지. 

그냥 지가 알아서 하면 그 돈은 굳는 거니까. 

알았다고 하고 내가 그 길로 인사하고 슈퍼에서 돌아 나오는데 눈물이 눈물이 하이고... 마구 쏟아지는 거라. 


자존심이 상한 거는 둘째다. 

저 화장실 청소만 맡을 수 있어도 한 달에 15,000은 더 벌 수 있는데, 그라면 니들 키우는데 책값이라도 용돈 천 원이라도 더 줄 수 있는데 얼마나 야속하고 또 거절당한 것도 창피스러운지 눈물이 말도 못 하게 나드라카이. 


아이고, 말도 마라. 다 늙은 여자가 슈퍼에서 질질 울면서 나오는데 그 꼴이 얼마나 우스웠겠노. 하하하-




-네가 교복 입고 학교 댕길때다. 

아침에 내가 부엌에서 밥하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리더라고. 학교 갈 준비하던 네가 받았지.


좀 있다 보니 니가 입이 한발 튀어나와서 나한테 말하더라.

'엄마! 저 밑에 마을에 000 아저씨가 대뜸 전화해서 돈 언제 갚을 거냐고 소리 지르고 끊었삐따!'


돈을 갚으라니 내가 빌린 적이 없는데, 내 새끼가 퉁퉁 부어 있으니 화가 나서 밥하다 말고 아랫동네로 뛰어갔다.


거기 아저씨가 마루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더라고. 

내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물었지. 

무슨 돈을 갚으라고 아침부터 남의 집에 전화해서 그러냐고. 


알고 보니 느그 아빠가 생전에 빌린 돈이 얼마 있더라고. 

남편이 암말 없이 죽었으니 내가 그걸 알 수가 없지. 


내가 화가 나서 단단히 말했다.

"아재요! 돈을 못 받은 게 있으면 내한테 찾아와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언제까지 갚아달라고 하면 되지, 왜 아침부터 우리 새끼들 학교 가느라 바쁜데 거기다가 전화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다짜고짜 소리 지르는교?


우리 새끼가 아재한테 돈 빌린 거 아니잖는교. 

우리 아가 얼마나 황당하고 화가 났겠는교! 예?"


하하. 

밥 먹던 아재가 내가 마당에 서서 다다다다하니까 움찔 놀래 가지고는

"생각해보니 그거는... 내가 잘못했니더..."

하드라. 


그래서 얼마나 빌려줬는가 물어보고 언제까지 갚는다고 했지. 

망할 놈의 영감탱이, 

어디서 내 새끼들한테 전화해서 지랄 지랄을 해대. 

나는 그거는 못 참는다 안 카나!


갚았지, 갚았지 그 돈.

약속한 날짜에 돈 갖다 주면서 말했지, 앞으로 이런 일 있어도 절대 우리 애들한테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그뿐인 줄 아나? 

아빠가 남기고 간 자잘한 빚이 얼마나 많았는데. 

아이고아이고 말도 마라. 그때 생각하면 내 고마 지긋지긋하다-




-하루는 식당일 끝나고 집에 오는데 저 멀리서 보니까 동네 아지매들이 우리 집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 

물론 내 흉은 아니었겠제. 

그런데 사람 마주치기가 너무 싫은 거라. 


둘만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어도 꼭 내 얘기하는 것 같고 마주치기도 싫었어 그때는.


집으로 가던 자전거를 휙 돌려서 저어기 사람 없는 강변에 갔지. 

한적한 데다가 자전거를 세워놓고 사람들이 우리 집 앞에서 사라질 때까지만 피해 있을라고 거기에 한참 앉아있었다.


마침 밥도 못 먹어서 배가 고픈기라. 

그날 식당에서 남은 카레를 얻어 오던 길이었거든. 

배가 고파 뭐든 일단 먹어야 하잖아. 


자전거 뒤춤에 실려있는 카레 봉지를 풀었지. 

그런데 내가 소풍 나온 것 도 아닌데 숟가락이 있어 뭐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봉지를 벌려놓고 일단 손가락으로 퍼먹었지. 하하하


그런데 그게 자전거 뒤에 오래 실려있어서 그런가, 햇빛에 좀 상했었던 모양이야. 

허겁지겁 건져먹고 얼마 안 있어 배가 살살 아픈기라. 

아이고 설사가 나올라나 싶어서 내가 부리나케 자전거를 타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웃기제? 하하하-





엄마 집에 가면 배부른 저녁상을 물리고 믹스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가끔 엄마에게 듣는 이야기들을 예전에는 그냥 같이 웃어가며 들었다. 


내게 엄마는 참 염치가 없기도 하고 뻔뻔하기도 하고 가끔은 싸움닭 같고 동네 아저씨들보다 더 힘이 센 그런 여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의 그 옛날 살아오셨던 일들의 앞 소절만 나와도 스위치를 누른 듯 자동으로 마른눈에 그렁그렁 눈물주머니가 달린다. 

웃어가며 이야기하는 '엄마의 옛날'이 다 끝나기도 전에 연신 소매로 닦아낸 눈덩이가 빨갛다.


매운 것을 참아가며 먹는 것처럼 울어가며 꾸역꾸역 이야기를 듣고 있는 딸의 눈을 보며 엄마도 결국 울면서 이야기를 끝낸다. 


들어도 들어도 새롭고,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들.


"어이구 어이구. 그 시절 말도 마라 참..... 하하하하."

당신의 주름진 눈에 눈물 한 방울 달고 한바탕 웃으면 그렇게 이야기가 끝난다.



지금까지 엄마가 맘껏 소리 내어 운 것 을 본 적이 없다.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실신했던 엄마가 깨어나 했던 말은

"닭백숙 먹고 싶니더."

였다.


동네에서 가장 비쌌던, 그래서 엄마가 평소에는 사 먹을 수 없었던 음식.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망을 지켜보면서 엄마는 잠시 넋을 잃은 뒤 깨어나 그동안 병원에서 간호하느라 지친 당신의 몸을 본능적으로 일으키려고 하셨다.


철 모르고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아직 정정한 시어머니를 감당해야 하는 젊은 새댁이었다.


엄마는 혼자 먹기엔 많았던 그 백숙 한사발을 다 비우셨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의 초상을 치뤘다.


엄마는 주저앉거나 아이들을 버리고 재가를 하는 게 아니라 더 힘을 내서 살아겠다는 카드를 바로 집어 들었다.


그 미련한 선택이

남자들과 싸워가며

편견과 수군거림을 감당하며 

자존심을 내려놓다 못해 장독대 안에 처박아 두고

딸의 이혼을 지켜봐야 하는 가슴아픈 삶일 것을 젊었던 엄마는 알았을까.



엄마가 다녔던 식당의 주인은 동네에서도 으뜸가는 부자였다.

그 당시엔 흔하지 않던 2층 집을 지었다. 

우리는 그 집을 '1억 5천 집'이라고 불렀다.

2층 집 앞을 지날 때면 늘 심통이 났다.

우리 엄마가 힘들게 일하는 식당 주인의 집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고 

자식들은 자랐다. 

어른이 되었고 독립을 했다.


다섯 딸과 사위들은 엄마에게 새집을 선물하기로 했다.

"이제 다 늙어서 몇 년 더 산다고 새집이냐."

단 며칠을 사신 다하더라도 외풍이 없는 따뜻하고 넓은 집에서 머무시길 바랬다.


어렸던 우리가 교복 입고 촐랑거리며 드나들었던 집

엄마가 늦은 밤 고단한 몸을 이끌고 들어오셨던 집


할머니와 내가 뒹굴며 싸우고

할머니가 덩굴장미 밑동을 싹둑 잘랐던 곳


며느리였던 엄마가 90세가 된 할머니를 마지막까지 모셨던 집

엄마가 그렇게 28년의 세월을 보냈던 집을 허물었다.


돈을 모으고 대출을 받고 

엄마에게 의견을 구해 설계를 하고

그리고

엄마가 가장 원했던 작은 정원과 화단을 만들었다.


덩굴장미 맘껏 키우시라고 낮은 담장을 만들었다.

엄마는 그 옛날, 동네에서 가장 비쌌던 1억 5천 집보다

더 비싼 집의 

주인이 되셨다.



엄마. 

낳아준 것도 고마운데 

우리 버리지 않고 키워주셔서 이렇게 번듯하게 잘 살게 해 주셔서 

정말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다음 생이 혹시 있다면 

직장상사나 저의 초등 담임선생님으로 오세요. 


서럽고 힘든 우리 엄마로 오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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