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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Oct 13. 2020

엄마가 보고 싶은 날에는 고등어를 먹는다.

이혼 후 이야기 #. 25

어릴 때 

가끔 고등어가 밥상에 올라오는 날이 있었다.

내가 최고로 행복한 날이었다. 


하지만 식구가 많아 배부르게 먹지 못했다. 


짠지는 안 먹고 고등어만 먹는다고 언니한테 타박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고등어는 너무 좋았다. 


불룩한 고등어 살점을 먹으면 그것만 많이 먹는다고 혼이 나니까 아쉬운 대로 고등어 눈을 파먹었다. 

그것마저도 너무너무 맛있었다. 


비계가 덕지덕지 붙은 돼지고기조차 귀하던 우리 집에서 어쩌다 한 번씩 올라오는 생선을 환장하듯 먹는 나를 보고 

"얘는 뱃놈한테 시집을 보내야겠다. 그래야 저 좋아하는 생선 실컷 먹지."

라고 했다.


내 소원은 커서 돈을 벌어 고등어와 달걀을 원 없이 먹는 것이었다. 







신혼 때 

시장을 보러 가서 시어머니가 좋아하신다는 갈치를 사고, 옆에 놓인 싱싱한 고등어를 집어 들었다. 

어른이 되었고 돈을 벌었고 고등어를 마음껏 살 돈이 있었던 나였다. 


내 집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고등어를 언제나 양껏 구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참말로 신이 났다. 


기름을 듬뿍 두르고 튀겨내듯이 넉넉하게 고등어를 구웠다. 

따끈따끈한 고등어를 접시에 옮겨 담기도 전에 그 냄새에 벌써 침이 고였다.



"아이고, 이게 무슨 냄새냐?"


"고등어요, 어머니! 이거 좀 드셔 보세요. 고등어 정말 맛있는 거 샀어요."


"아니 아니 나는 안 먹는다. 비린내가 너무나. 너나 많이 먹어라."


신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생선인데 더군다나 어머니는 안 드신다니, 이걸 나 혼자 다 먹을 수 있지 않은가. 

횡재였다. 


생선을 절인 소금기에 입술이 흐물흐물해지는 것도 모르고 맛있게 고등어를 흡입하듯 먹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생선 비린내를 아주 싫어했다. 
육류보다는 생선을 좋아하셨지만, 유일하게 드시는 생선은 갈치와 조기였다. 



제일 싫어하는 생선은 

고등어였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몰랐다. 

고등어 살을 발라 한입 가득 넣을수록 

결혼한다고 일찍 떠나온 엄마품이 생각이 나서 좋았고,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살아나는 것 같아 행복했다. 


입안 가득 고등어 비린내가 퍼질수록 만족감이 온몸 가득 느껴졌다. 

고등어구이는 내게 그런 음식이었다.


그 다음주도 고등어를 사다가 구웠다. 

시어머니는 갈치와 조기를 좋아하시니까 그 생선도 따로 구웠다. 


각자 좋아하는 것을 먹으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비린내였다. 


고등어나 갈치나 모든 생선은 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유독 고등어만 비린내가 심하게 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한 밥상에 고등어와 갈치가 함께 올라가 있으면 시어머니는 비린내가 난다고 표정이 좋지 않았다. 

고등어가 안 올라가면 갈치든 조기든 알뜰살뜰 살을 발라 무척 맛있게 드셨다. 


어느 순간부터 고등어를 식탁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주말마다 마트에 가서 일주일치 부식과 과일을 샀다.  
어머니 입맛을 생각해 해물과 생선은 늘 카트에 담았다. 


생선코너에서 골라 든 갈치를 토막 내고 있을 때

옆에 있는 싱싱한 고등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얼음 위에 있는 그냥 고등어일 뿐인데 잠시나마 굽는 냄새가, 담백한 맛이 눈앞에 보이고 입안에 느껴지는 듯했다. 


애들 아빠가 좋아하는 닭고기 코너에 가서 닭을 고를 때면

진공 포장되어 있는 큼직한 간고등어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침이 꾸욱 넘어갔다.

 

나 혼자 먹겠다고 '온 집안에 비린내를 풍기며' 고등어를 구울 수는 없었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 듯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를 구울 수도 있었지만 식탁에 고등어가 올라오면 인상을 쓰는 시어머니를 보는 것이 죄송하고 한편으론 불편했다. 


주말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조기를 사 와서 가위로 지느러미를 자르고 칼로 비늘을 긁고 먹기 좋게 손질을 해서 채반에 올려놓고 물기를 뺐다. 


어머니 입맛대로 맛소금을 조금씩 흩뿌려서 간간하게 만들었다. 

냉동실에 넣어두고 반찬이 시원찮을 때마다 구워냈다. 


시어머니는 참 맛있게 잘 드셨다. 

살을 발라 어린 손녀들 밥그릇에 한 점씩 올려주었다. 

아이들도 갈치나 조기는 잘 먹었지만, 고등어는 굽지를 않으니 먹일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친정에 갔을 때 엄마가 고등어를 구워내 왔다. 

"우와! 고등어다."

허겁지겁 살을 발라 먹었다. 




밥보다 고등어를 더 많이 먹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고등어 살을 뚝떼서 입에 넣을 때마다 표현할 수 없는 짭조름한 행복이 밀려들어왔다.


"엄마, 나는 고등어가 제일 좋더라!"


"그래. 옛날에는 이것도 귀해서 못 사 먹었지."


"그래서 그런가? 나는 고등어가 너무 좋아 엄마."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노. 마트에 가면 널리고 널린 게 고등어인데. 맘껏 사다가 구워 먹지 그러냐."


"우리 집에서? 에이... 안돼. 비린내 나면 안 돼."


이미 반쯤 없어진 고등어 접시에 시선을 뺏긴 채 혼잣말을 했다. 

엄마는 그 말이 마음에 남았던 모양이었다.



집에 내려가면

엄마는 

다른 건 준비를 못해도 고등어는 꼭 사 오셨다. 


"고등어, 제일 비싸고 제일 좋은 놈으로 주소! 제일 큰 걸로요. 우리 딸이 내려왔거든요."


평소에는 갈 일도 없는 읍내 생선가게에 가서 제일 크고 비싼 고등어를 사 오셨다. 

다른 반찬도 많다고, 반마리만 구우시라고 몇 번을 말해도 엄마는 고등어를 다 구웠다. 


다 먹지도 못하는데 왜 꾸역꾸역 굽냐고 싫은 소리를 하면

"남으면 니들 가고 나서 엄마가 먹으면 되지, 그게 뭔 상관이야! 그냥 먹어. 이거 다 먹고 올라가."

오히려 화를 냈다.



엄마가 일 년에 두어 번 고등어를 사러 가면 생선가게 아주머니는 물었다.

"어서 오이소. 집에 딸 내려왔는갑지요?"






아이들은 고등어를 잘 먹지 않아서 그런지 할머니처럼 고등어 비린내를 아주 싫어한다. 이제는 아이들만 데리고 사는데도 나는 집에서 고등어를 굽지 않는다.


아무도 먹지 않고, 나만 좋아하는 생선이기 때문이다.


이제 맘껏 구워도 되겠지만

아이들의 숟가락이 가지 않는 반찬을 일부러 사 오는 엄마는 아마 잘 없을 것이다.




언젠가 몸도 마음도 참 고달픈 날이었다.


엄마가 참 보고 싶은데 

전화하면 눈물이 날까 봐

엄마가 눈치를 챌까 봐 

전화기만 만지작만지작하던 날이었다.


한 끼 밥값 치고는 비싸서 좀처럼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던 식당에 들어갔다.


"... 고등어 정식 하나 주세요."



12,000원이었다.

그날은 먹고 싶었다.


덩그러니 혼자 앉아

고등어구이를 시켜놓고

그걸 보며 꼭꼭 밥을 씹었다.


고등어로 젓가락을 가져가는데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이거 다 먹고 올라가!   다 먹고 올라가."



투박한 맨손으로 

고등어 가시를 발라내며

무심하게 툭 내뱉던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구이를 먹는데

눈물이 흘렀다.



눈물이 나는데도

고등어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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