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이야기 #. 27
멋도 모르고 일찍 결혼하는 것이 죄송해 엄마에겐 내 결혼 준비를 알아서 한다고 말씀드렸다. 전세 버스비를 입금해드리며 조심히 올라오시라고 전화를 했다.
결혼 생활중 두 번의 이사를 했다.
마지막 이사를 할 때 남편은 이사에 대한 의논을 내가 아닌 누나와 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여야 하건만, 이사하는 중요한 날에 누나와 조카를 불러 이사를 할 거라고 했다.
나와 사이가 엉망이고 말도 안 섞는다는 것을 대놓고 홍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사하는 것은 집안의 모든 짐을 옮기는 것이기에 이 집에서 사는 나와 의논할 일이었는데 남편은 끝까지 누나 누나 누나였다.
말이 안 통하니 남편의 누나에게 문자를 했다.
-형님, 이삿날 어차피 포장 이사하니까요 힘들게 오실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애들 아빠가 형님한테 와달라고 한 모양인데, 우리 집 이사니까 저랑 애들 아빠랑 할게요.
이사할 때 혹시나 위험할 수 있으니 어머니랑 애들 맡겨도 되면 하루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깔끔하게 다음날 시누이가 왔다.
그렇게 긴 문자로 남편과 함께 해보겠노라, 간곡히 부탁을 했는데도 남동생이 오라고 해서인지 집에 왔다.
말없이 이삿짐이 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삿짐센터 직원분에게 말했다.
"새로 이사 가는 집은요, 짐이 다르게 들어갈 거예요. 안방에 있었던 짐은 작은 방에 넣어주시고요 작은 방 짐은 안방으로 넣어주세요."
마지막 이사 때는 남편과 시어머니가 편을 먹고 나는 늘 겉돌던 시절이었다.
이판사판 누구 눈치를 볼 마음도 없었다.
똑같이 돈 벌어 오고 똑같이 힘든데 왜 나만 뒷방 같은 곳에서 주방에 나가지도 못한 채 숨어 지내는 꼴로 사는지 억울했다.
내가 없을 때 혹시 부부 짐을 작은방에 넣으라고 할까 봐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이삿짐 아저씨만 졸졸 따라다녔다.
한심했을 것이다.
이사하는 날 부부가 아무 대화도 없이 투명인간 대하듯 서로 멀뚱하게 있었으니.
부부 짐이 사다리차로 올라오자마자 손으로 안방을 가리켰다.
"저 방에 넣어주세요. 어머니 장롱은 작은방에 넣어주시고요."
시누이와 어머니는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남편이 날 의식한 듯 큰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작은 방 괜찮으시겠어요? 답답한 거 못 참으시는데. 큰방 쓰셔야지요."
"아니다. 나는 됐다."
이삿짐 아저씨가 나를 힐끗 쳐다봤다.
고약한 며느리라고 생각했겠지...
안방을 차지했지만 비참했다.
남편과 시누이, 시어머니 세명은 웃으며 전등을 달고, 액자를 걸 때 수평을 봐주고 곳곳에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내가 없는 듯이 세명은 즐겁게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모멸감이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안방 문을 닫고 혼자 걸레질을 했다.
쓸쓸했다.
결혼 생활하면서 안방을 쓰지 못했으니 장롱도 없었다.
부부 옷은 늘 작은방 행거에 걸려 있었다.
툭하면 옷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행거를 다시 세우는 게 일이었다.
그 행거를 넓은 안방에 세웠다.
먼지 앉지 말라고 흰 보자기도 덮어두었다.
결혼생활에 더 이상 애정이 없어서일까 새가구를 사는 것도 방을 꾸미는 것도 내게는 먼 이야기였다.
거실에서 생활했으니 꾸미고 할 것도 없었다.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안방에 장롱이 들어와 있었다.
장롱이 없어서 안 좋아 보였다며 남편 누나가 중고를 갖고 왔다고 했다.
나와 상의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 집안의 안주인이 아니었다.
조선시대가 아니니 안방마님, 안주인의 개념은 없을지라도 가정을 꾸렸으면 그 집 안의 주축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남편과 시어머니였다.
그리고 시누이들이었다.
난 그냥 '들어온' 여자였다.
그렇게 이사한 그 집에 시누이는 쫓아와서 식탁에 나를 앉혀놓고 내 결혼생활에 대해 훈계했다.
어머니에게 멱살을 잡히며 살던 집이기도 했고 남편과 이혼하기로 하고 나와 아이들 짐을 챙겨 나온 집이었다.
내 집인데 내 집이 아니었다.
안방을 차지한 것도 잠시, 곧 그 집에서 나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별거와 이혼을 하면서 내가 가장 낯설고도 기뻤던 것은 내가 안방을 쓴다는 사실이었다.
가슴이 벅찼다.
이게 뭐라고, 대체 그 안방이 뭐라고....
이미 가장이 되었지만 안방에 들어서면서 가슴이 벅찼다.
안방에 내 책상이, 내 책꽂이가, 내 장롱이, 내 물건이 들어왔다.
아이들에겐 그냥 엄마방이다.
"엄~마! 언니 봐라. 내 이불 다 뺏어간다!"
"고마 자라 인제. 다 큰 것들이 싸우고 있노!"
엄마는 몰려오는 졸음에 눈을 감은채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다.
고단한 하루를
자식들 수다를 들으며 닫는다.
오랜만에 엄마의 안방이
그 옛날 좁은 집에 다 같이 살 때처럼
밤새 시끌시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