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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Oct 18. 2020

"당신은 일부종사 못할 팔자야."

이혼 후 이야기 #. 28





결혼 언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년에 결혼했으면 이별수야.

<일부종사> 못할 팔자야.


일찍 결혼하면 가장이 돼버려.


팔자 자체가 외로워.

남편이 있어도 외롭고

자식이 있어도 외로워


남자복이 없어.

왜 그런 줄 알아? 당신이 남자 보는 눈이 없어.

다른 건 다 있는데 그것만 없어



일부종사: 한 남편만을 섬김



시시때때로 몰려드는 불안함이

일상을 자신 없게 만드는 때가 있다.


내가 어떻게 될 건지

아이들을 다 키워낼 수는 있을지


지금은 그렇다 쳐도

나중엔 좀 마음이 편안 해질 건지


들어도 안 들어도 뻔한 말들에 의지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지니고 있는 모습이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내 직업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도대체 바르게 가고는 있는 것인지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 것인지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라도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이혼하고 가장이 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외로움도

무서움도 아니었다.


가끔 내 걸음을 멈추게 하는 막막함이었다.


이 결정이 옳은지

이렇게 아이들에게 말하는 게 맞는지

이런 나의 행동이 나중에도 한결같을 것일지


끝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되짚어보고

그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

그 막막함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막막함이 커지면 무서움이 되고,

괜찮다 괜찮다 억지로 잠재우려고 하다 보니

왕따를 당하는 아이처럼 외로움이 슬금슬금 찾아왔다.



뻔한 이야기만 하는 거야.
그냥 돈만 버리는 거지. 불조심해라, 차조심해라, 어두운 데로 가지 마라.
당연한 말 아냐?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걸 그냥 불안한 사람 심리 이용해서 돈 받고 읊어대는 거라고.



주변 사람들은 타박한다.

돈 아까운 걸 왜 했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주의사항들, 지키면 좋을 것들을 마치 엄청난 비법 인양

돈을 내고 굳이 듣고 오는 것이었다.



일부종사를 못할 팔자라고 했다.



조선 시대도 아니고 그런 단어를 듣다니, 내 귀를 의심하며 전화를 끊고 검색을 했다.


- 한 남편만을 섬기다 -


열녀문을 받겠다는 일념으로 일부종사를 할 필요도 없는 세상이니 내게는 별 의미 없는 말이었지만, 정확히 현재의 나를 꿰뚫고 있는 말이기도 했다.


전남편 같은 사람에게 굳이 일부종사를 선물할 필요가 있는가.

나를 쥐어짜고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인내하며 달성하는 일부종사가 내 인생에 얼마나 의미있는 훈장이 될 것인가.


한 남편만을 섬기다가 생을 마치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인 건가?

일부종사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는 안 하고 싶어서 선택한 건데요.

쓴웃음이 났다.


물론 내가 받아들인 그런 의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혼자 살아가야 하는 팔자(?) 임을 안쓰러워했을 수도 있고 내 사주에 걸쳐있다는 운명을 그대로 전달해준 것뿐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주는 사주일 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말들을 들었을 수도 있다.


결론적으론 상담전화를 끊고 나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처한 상황이 다시금 냉정하게 보였다.


무속인의 입을 빌어서라도 듣고 싶었던 '나에 대한' 이야기.

내가 생각하고 있는 대부분의 생각들이 그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맞고 틀림을 떠나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과 정반대의 이야기들이 나왔더라면 나는 혼란스러워했을 것이다.

다행히 굿을 해야 한다, 부적을 써야 한다, 개명을 해야 한다 등의 돈이 들어가는 일은 언급되지 않았으니 ㅎㅎ 얼마나 다행인가.


일 년에 몇번씩 정기적으로 점을 보고

시키는 대로 굿도 하고 팥도 뿌리고 개명까지 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예전에 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람도 맞고,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한 나도 또한 맞다.


우리는 모두 '지금보다 나아지고자'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자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고 느끼는 정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책에서 해결책을 찾는 사람도 있고, 주변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사람도 있고, 술이나 유흥을 통해 잊고자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마음이 헛헛하여 스트레스를 술로 달랜 시절이 있었다.

술을 마시면 힘든 일상에서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저녁 식탁에서 엄마가 술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한 달에 한번 월급날.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이고 숙제를 봐주고 집안일을 끝내고 아이들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밤 10시 30분에 집을 나왔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아... 1명이요."

집 근처 늦게까지 하는 술집 구석에 앉아서 술을 주문했다.

초등학생 내 아이들의 유치한 말싸움이 아닌

왁자지껄한 옆 테이블 어른들의 수다를 귀동냥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같이 웃고 같이 심각해지며 90분을 보냈다.


그리곤 12시가 되기 전에 집에 들어왔다.

다음날 출근하려면 오래 머물 수도 없었다.


아이들이 차낸 이불을 다시 끌어올려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가 잠깐 나갔다 왔어. 엄마도 가끔 어른들 틈에서 숨좀 쉬고 싶단다.'


그때는 답답했다.

한 달에 한 번일지라도 그렇게 잊고 싶은 날이 있었고

처리해야 할 집안일이 곳곳에 보이는 식탁이 아닌 조용한 곳에서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잡념들을 솎아내는 시간이라고 위로했다.


친구 없죠? 왜 맨날 혼자 와요?

나이 지긋하신 술집 사장님이 웃으며 물었다.


직장을 나가니 아파트 아랫집 윗집 엄마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다.

동네 친구들을 만들 시간과 여건이 되지 않았다.

굳이 만들자면 내 사생활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처음부터 친구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만을 위해 쓰는 술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만 눈감아 주자고 혼잣말을 했다.




이제는 혼자 나가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새벽 운동을 시작하면서 잠을 일찍 자게 되었고 술잔 대신 책을 손에 드는 게 좋기 때문이다.


가끔 맥주 한 캔이 생각날 때도 있지만

그마저도 저녁 식사 후 책 읽는 시간에 방해가 되어 거의 마시지 않는다.


매일 저녁 반주로 소주 2병을 마신다는 아빠를 걱정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똑같이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은연중의 다짐도 있다.


"술을 마셔도 갈증은 풀리지 않더라.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 왕년에  많이 마시고 돌아다녀보니 그래."


예전에 SNS에 올린 술잔을 보고 선배님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런 깨달음도 '술로 마음을 달래는' 나름의 경험을 거친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한 몸부림과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하기 위한 여정에서 선택했던 것들에 대해 나는 후회나 질타보다 칭찬과 격려를 해주고 싶다.



그때는 너가 힘들었던 것이 맞다고.


이것을 알고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방법을 찾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때의 나에게 중심을 오래 놓치지 않고

힘들지만 지금 이 자리를 잘 찾아왔노라고


고생하고 애썼다고 말해주고 싶다.



3년 전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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