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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Nov 17. 2020

둘째로 태어난 게 죄는 아니잖아!

연극배우 B 씨의 둘째 딸입니다만





나는 생일이 막 지난 중학교 2학년이다.


엄마가 북한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대한민국 중학교 2학년들이 무서워서라는 한국사 책에도 없는 아재 개그를 하면서 지나갔다.


 흥.

그만큼 무서운 사춘기라는 건데 나는 암만 생각해도 한 집에 같이 사는 언니보다는 덜한 것 같다.


나는 둘째가 아니라

언니처럼 첫째가 되고 싶다.


나도 언니가 되어 봤으면 좋겠다.


둘째의 설움은 아주 어릴때도 있었나보다!



언니는 나보다 고작  두 살 더 먹은 것뿐인데 자기가 마치 하늘 같은 어마어마한 인생선배인 척한다.

진짜 꼴 보기 싫다!


언니는 매일 나한테 못생겼다고 하고 냄새난다고 한다.

이건 비밀인데

솔직히 엄마가 지난번에 나만 살짝 불러서

"너가 참아. 사실은 니가 더 이뻐."라고 말해줬.


언니는 나한테 진거나 마찬가지다!

엄마가 나를 더 이쁘다고 했으니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 해봐두 살 많은 주제에 나를 얼마나 부려먹는지 모른다.



언니는 엄마한테 "나 불만 있어!"라며 

 때문에 자기가  얼마나 차별을 받는지에 대해 지가 하고 싶은 말은 다한다.


그럼 엄마는 눈을 똥그랗게 뜬 뒤 그런 적이 없고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언니는 지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해놓고 엄마 말은 안 듣는 것 같다.


어휴! 진짜 저 성격 가지고 어디 가서 사람 되나!



언니는 진짜 울트라 재수 없다

어른이 되면 절대 아는 척도 안 할 거다.

명절에 딱 한 번만 봤으면 좋겠다.



언니랑 나는 엄마 직장을 따라 이사를 많이 다녀서 거의 둘이서 놀 때가 많았는데, 솔직히 놀 사람이 없어서 놀아주는 거지 언니랑 나는 정말 안 맞다.


나는 둘째라서 피해본 것이 너무나 많다.

언니가 입은 옷은 내가 고대로 물려 입고 학용품도 그렇고 장난감도 그렇다.


"너도 금방 클 거니까 물려 입는 게 좋잖아.

 라고 엄마는 말하는데 어렸을 적 사진을 보면 언니 어릴 때 입은 옷을 내가 또 입고 찍으니까 은근 자존심 상한다.


쌍둥이도 아니고 나한테 왜 이러시나요.

그리고 언니가 콧물 닦은 것 같은 옷소매를 볼 땐 진짜 별로다.


사람들은 우리가 닮았다고 하는데 엄마는 정확히 다르게 생겼다고 구분이 다고 했다.


하지만 내 휴대폰 얼굴인식 패턴이 언니 얼굴로도 풀어져서 진짜! 기분이 나쁘다.

마가 그걸 듣더니 크게 웃었는데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왜 똑같이 생기게 낳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둘째라 겪는 불이익은 옷이나 장난감뿐만이 아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엄마랑 언니가 서로 눈치 싸움하다가 열 받으면 괜히 나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엄마 말이 틀렸니? 엄마가 잘못한 거야? 인간적으로 생각해봐, 엄마가 틀렸냐고."


에휴...


인간적이고 비인간적이고를 떠나

내가 싸움의 당사자도 아닌데 어떻게 안담?


엄마가 없으면 언니는 또 나를 불러서 아까 일로 엄마 흉을 본다.

"진짜 성격 이상해. 계모인가 봐, 어른이면 다야? 엄마면 다야? 안 그래?"


나는 엄마 편도 언니 편도 들 수가 없다.

그냥 무표정으로 듣고 있지만 내볼 땐  다 똑같다.

똑같이 한심하다.


엄마는 그 나이 먹어서도 언니랑 신경전이나 벌이고

언니는 이기지도 못할 거 매일 엄마 말에 대답 안 하고 있다가 혼이나 나고, 눈물이 나 질질 짜고.


진짜 둘 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언니는 어른이 되어서 회사 생활이나 잘하려는지 걱정이 된다.

저 성격이면 누구도 싫어할 것이다.


엄마도 솔직히, 엄마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 것 같다. 쉴틈 없이 사람들을 부려먹을 것 같다.


엄마 말로는 엄마가 인기가 많고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한다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엄마 회사 사람들이 슬기롭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가 부장님 흉을 잔뜩 하다가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콜센터 직원 같은 상냥한 말투로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집엔 엄마, 언니, 나 이렇게 세명이 산다.


언니가 엄마 앞에선 아빠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고 엄마가 또 싫어할까 봐 어렸을 때는 아빠 이야기를 되도록이면 하지 않았다.


다섯 살 유치원 재롱잔치 때 엄마가 왔다.

아빠도 왔다.


아빠랑 엄마랑 따로 앉았지만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주고 웃어주었다.


그런데 엄마는 웃으면서 울고 있었다.

입은 분명히 웃고 있었는데

다른 엄마들도 다 웃고 있었는데

우리 엄마만 휴지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불안했다.

천사 옷을 입고 춤을 추고 있었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긴장이 되었다.


집에 갈 때 엄마 아빠 각자 차를 타고 갈 텐데 나는 누구 차를 타야 하나 고민이었다.



엄마 아빠는 집에서 서로 말을 안 했다.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악수하고 안아주고

"내가 미안해~"라고 하면 화해하는 건데

엄마 아빠는

유치원 졸업한 지 너무 오래돼서 그걸 잊어버린 건가?


재롱잔치 때 혼자 울었던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했다.

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땐 둘이 너무 달라서 그런 것 같다.



이젠 엄마 앞에서도 언니랑 같이 아빠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가 아빠 흉을 보면 엄마는 아빠를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한다.


세명 모두 아빠 욕을 하면 아빠가 좀 불쌍해 보이는데 한 사람이라도 말려주니까 내가 안심이 좀 되는 것 같다.


엄마도 아빠가 많이 미울까.

엄마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지만 속에 있는 진짜 진심은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어쨌거나 아빠 이야기를 하면 나는 한숨부터 나온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빠는 아이 키우며 제발 좀 잘 살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식탁에 멍하게 앉아 있을 때가 다.

엄마는 가끔 불쌍하다.

운동하는데 건강해지는 것 같지 않고 사서 고생하는 것 같다.


엄마는 지금까지 직장을 한 번도 쉬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릴 먹여 살리려면 어쩔 수 없다.

엄마는 혼자서 우리를 키우기 때문이다.


돈 없는 티를 내진 않지만 얼마 전에 1억 도 없냐고 언니랑 같이 놀렸는데 꿈 쩍 안 하신다.

엄마는 별 효과도 없을 것 같은 책만 주구장창 읽는다.

맨날 피곤하다면서 꼭두새벽에 잠도 안 자고 일어나 있다.



엄마가 그 어렵다는 승진을 했다.

만년 과장이냐고 어릴 때부터 놀린 게 미안했었는데 승진을 하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없어져서 다행이었다. 


엄마는 승진을 해도 여전히 일을 한다.

엄마는 힘이 세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도 쓰러지지 않고 우리를 키우니까.


아이스크림 사달라 하면 맨날 돈 없다 하면서

그래도 우리에게 고기는 잘 사주셨다.

그래서 엄마가 부자인 줄 알았다.




요즘은 반찬 만드는 것도 힘들어하고 주말이면 잠깐만 눈을 붙인다고 해놓고 몇 시간 동안 자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자고 있다.


나는 엄마가 눈을 감고 있는 게 싫다.

자고 있는 모습이 싫다.

엄마가 자고 있으면 내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


옛날에

엄마가 쓰러지는 장난을 친척이 있는데 나는 팡팡 울었다. 너무 무서웠다.

우리 집에 어른은 엄마밖에 없기 때문이다.


엄마가 죽으면 모기는 누가

화장실 변기는 누가 뚫어주나.

그리고 엄마가 없으면 개수대 음식쓰레기 망을 손으로 만질 사람도 없어진다.


엄마는 언니와 여전히 별것 아닌 걸로 싸우는 같다.

다행히 소리 지르고 싸우진 않는다.

문을 쾅쾅 닫지도 않는다.


마는 우리를 때리지 않는다.

우리 집은 회초리가 없는데 엄마는 '회초리로 통제'될 아이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럴 땐 엄마가 좀 똑똑한 것 같긴 하다.


다만 엄마가 한번 삐지면 집안이 싸늘해지고 나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언니 때문 기분이 안 좋아도 내가 말 시키면 대답은 해주는데 무뚝뚝하게 해 준다.


어릴 때 언니가 혼나는 걸 보면

나는 갑자기 책상 정리를 하고 싶어 졌다. 

언니가 엄마한테 혼나는 날은 내가 책상 정리를 하는 날이다.


평소에는 너무 하기 싫은 책상 정리인데 엄마가 화를 내고 있을 땐 자동으로 싹싹 잘 된다.

신기하다.


그리고 언니를 혼내고 있을 때는 엄마가 좀 좋아진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실이다.



엄마는 외할머니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엄마도 외할머니가 무서울까?

나는 엄마가 좋지만 가끔 무섭다.


어릴 때 침대에서 하지 말라는 레슬링을 하다가 엄마한테 딱 걸려서 엄청 혼난 적이 있다.


다치니까 하지 말라고 한 건데 푹신한 침대에서 왜 다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가 제일 무서웠던 것 같다.


어쨌든 엄마는 둘째가 안돼 봐서

둘째의 고충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중간에서 눈치 보고 하는 것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니가 사춘기가 지나갈 때까지 엄마도 좀 참고 살았으면 좋겠다.

언니는 저 성격에 절대 안 참을 거다. 또 그래 봤자 서로서로 혈압만 오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엄마가 무서울 때 말고는 비교적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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