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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Nov 15. 2020

엄마는 고기 굽는 게 재미있어?





"학원 밑에 고깃집이 있는데 수업할 때마다 고기 냄새가 솔솔 올라와서 너무너무 먹고 싶었어 엄마."


아이 둘이 초등학생 때였다.

학원 끝나고 그 앞을 지나가면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고기를 하염없이 쳐다봤을 아이들.


"오늘은 학원차 타고 집에 오지 말고 거기서 기다려. 엄마가 퇴근하면서 갈게."


월급날이었다.

아이들과 당당하게 고기 냄새가 솔솔 나는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3명이요~"



쉴 새 없이 고기 굽던 날



집게를 쥔 손아귀가 아프도록 고기를 굽고 또 구워

아이들 접시에 고기를 올려주었다.


"엄마. 매일 학원에서 문제집만 풀었는데 여기서 고기 먹으니까 너무 좋다!"


금방이라도 고기가 입안에 들어갈 듯 후후~ 하며 열기를 식히는 아이들.

참지 못하고 급하게 입에 넣었다가 도로 뱉어내며 웃는 내 보석들.


"엄마는 고기 굽는 게 재미있어? 왜 계속 굽기만 해?"

"응! 이거 되게 재밌어."


아무리 직장에서 깨지는 날이었더라도 그런 건 잊혔다.

낮에 힘들었던 건 자기 전에 잠시 떠올리면 되니까.


아이들 입에 고기가 들어가는 걸 보면 피곤해도 힘이 났다.




아이들은 된장찌개에 밥을 한 공기씩 비우고

후식이라며 냉면까지 나눠먹은 뒤

부른 배를 팡팡 두들기며 시원한 물 한잔으로 마무리를 했다.


카운터에서 밥값을 계산할 동안

바구니에 놓인 과일맛 사탕을 종류별로 고르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가 마치 개선장군 같았다.





직장에서 유난히 몸과 마음이 고달팠던 날은

퇴근하면서 정육점에 들렀다.

아이들 먹이기에 부족하지 않게 고기를 샀다.


내가 힘들어도 씩씩하게 일할 수 있는 이유는

아이들이 먹는 모습과

집안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모습이 나를 보상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위로했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시작된 고기 굽는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질 때쯤

아이들이 젓가락을 들고 식탁에서 엄마 뒷모습만 쳐다보고 있으면

없던 의욕도 생겼다.



가장 빠른 손놀림으로 고기를 구워내고 접시로 가져다주며

"꼭 꼭 씹어서 삼켜 알았지?"

연신 확인을 한다.


입안 한가득 고기를 넣고 우물우물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고단함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똑같이 사랑하고 배 아파 낳은 아이들인데도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서로 독차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가끔 상황이 되면 큰아이 한번, 작은아이 한번

이렇게 한 명씩만 데리고 나와서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은 그것을 '외동 놀이'라고 부르며 아주 좋아한다.


동생이 집에 없던 날이었다.

잘 시간이 다 되었는데 큰아이는 드라이브를 가고 싶다고 했다.



"옷 입어. 가자."


집 근처를 돌다가 평소에 봐 두었던 찻집에 갔다.


아이는 동생과 있을 때는 체면을 생각하느라 못했던 말들을 주섬주섬 꺼내 놓는다.


"엄마. 진로는 빨리 정하는 게 좋다는데 내가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

근데 애들은 전부 다 나보다 월등해.

수학이 제일 싫은데 수학을 못하면 대학이고 뭐고 다 망하는 거래.... 가슴이 막 답답해."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은

내가 교복 입던 시대에나 먹히는(?) 말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훨씬 현실적이고 포기도 빠르고 그래서 더욱 좌절하고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요즘에 태어났더라면 숨 막혀서 제대로 학교 교문을 들어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엄마로서 상상도 하지 못할 치열한 학교에서 성적에 따라 보이지 않는 줄을 길게 서고 있을 아이를 보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알면서도 어떤 위로도 섣불리 하지 못하는 요즘이었다.


"딸~ 너 태어나서 기저귀 차고 3년, 어린이집 3년, 초등 6년 빼면 진로를 생각하기 시작한 게 이제 고작 1, 2년 된 거야.

2년 만에 어떻게 앞으로의 진로를 벌써 결정하니. 넌 그래 봐야 겨우 15년 살았잖아.

엄마가 40년을 넘게 살았는데도 난 내 앞길을 모르겠어.

지금 너는 모르는 게 정상이야. 알면 노인이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어. 지금은 모르겠다는 네가 정상인 거야."


아이와 찻상을 가운데 두고 앉아 어설픈 내 생각을 볼품없이 꺼내놓았다.


아이는 별말이 없다.




'엄만 내가 뭔 말만 하면 다 괜찮을 거래. 다 정상이래.'

삐죽 나온 입에서 금방이라도 볼멘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다.




딸... 힘들지?


엄마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자면

나는 딱 맞는 단어나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그 과학적이고 경이로운 언어인 한글로도

설명이 어렵다.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

아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다가

홀짝홀짝 오미자차를 다 비웠다.



아쉽지만 아이를 재촉해 집으로 오는 길,


동생 빼고 엄마랑 둘이만 밤 드라이브 나와서

참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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