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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Nov 13. 2020

사춘기 딸에게 엄마는




"... 알았어."


나와 통화를 하던 딸은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

아이의 말에 쏘아붙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화나게 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나름대로 그냥 내 생각을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반박할 수 없는 논리 앞에 아이는 질렸을까.

아이 앞에서 이번에도 나는

'냉정하게 말하고 잔 정이라곤 없고 매사 각이 잡혀 있는 딱딱한 엄마'가 되어 버린 걸까.

 

그렇게 나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엄마'가 되어 아이에게 통화 종료를 당했다.


이러려고 전화를 받은 건 아니었는데...


속에서 뭔가 울컥한다.

어디 가서 말할 수 없는 억울함이 올라온다.





정말 슬픈 순간은

아이와 언쟁을 벌이는 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아이에 의해 종료당하는 순간이다.


아이가 대화로부터 마음을 닫는 순간이다.



순간을 맞닥뜨리기 싫어 핸드폰을 조용히 뒤집어 놓고 마치 할 일이 있었다는 듯 모니터를 바라본다.


손가락은 당장이라도 일할 것처럼 키보 드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는데 마음은 그대로 정지된 듯 휑하다.


머리에는 업무가 들어가질 않는다.

내가 늘 고민하는

내가 늘 목마른 또 어떤 부분인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내 성격은 불같기도 하고 때로는 얼음처럼 차갑고 고요하기도 하다.


학창 시절 매일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죽마고우와

한마디 말로 마음이 상했던 나는  

일 년이 넘게 친구에게 마음을 닫아 놓았었다. 


싸우고 다음날 화해하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마음의 생채기가 오래갔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가급적이면 상처 받기 직전에 나는 상황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섰다.

조짐이 보이면 아예 내 감정을 잊으려고 했다.


내 기분을 표현하려면

내가 얼마나 불쾌하고 이 상황 때문에 속상한지 액면 그대로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과 마주하는 것이 싫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내가 불편한 느낌이 있다고 말을 하면 될 일이었다.

내가 기분이 나쁘고 너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솔직히 말하면 될 것이었다.



표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특히 나의 감정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연습을 해보거나 누군가가 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잘 없었다.


주위에는 엄마를 비롯해 모두들 참으려고 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속 시원하게 내지르는 사람은 잘 볼 수가 없었다.




 "저러니까 아직까지 결혼을 못했지."

성인이 되어서도

대화 도중 친구가 다른 사람을 가리켜 한

나는 마음이 너무 상해버렸다.


이혼 사실을 꽤 오랫동안 숨겨왔고

한창 불안한 심리 속에 있었던 내게 그 말은

'저러니까 못 견디고 이혼을 했지.'라는

내 자격지심이 덕지덕지 묻은 문장으로 바뀌어 들렸다.



뭐?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

그것도 다 내 잘못인 거야?

그것을 유발한 상대방은 왜 그냥 넘어가고 애꿎은 나만 그런 소릴 들어야 해?


속이 좁다고 할까 봐, 참을성이 없다고 할까 봐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들이 폭죽 터지듯 펑펑 터졌다.


친구가 개그처럼 한 말에 나는 다큐로 반응하며

또 한 친구와 단절을 했다.



나에게 한 말이 아니었음에도

정확하게는 이혼을 빈정거린 말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내 식대로 내 마음대로 그 한 문장을 왜곡해

민감하게 반응해버렸다.


제3의 인물을 이야기하다

나와 우정을 나누던 친구와 그렇게 감정이 상한채 멀어졌다.



한동안 마음이 쓰렸다.

아니 꽤 오랫동안 속앓이를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나는 별 것 아닌 것에 내 감정을 끼워 넣고 마치 나를 빈정거리는 듯한 말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느꼈다.


그 옛날, 죽마고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절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을 튼튼하게 쌓아놓고 있었다.  


가끔 내 성격 때문에 눈물이 난다.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함에 눈물이 나고, 작은 것에도 파르르 떠는 내 나약함에 속이 상해서도 눈물이 난다.





언니는 사람을 참 할 말 없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


동생이 언젠가 꼬집어 말했다.


결혼생활을 힘들어하던 동생에게 나름의 조언으로 시작한 대화가 결국 동생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집 밖을 나서면 참 양반이셨지만 집안에서는 가족들을 공포로 몰아넣곤 했다.

나 또한 밖에선 큰 문제가 없고 시가 사람들에게도 큰 문제없는 고분고분한 새댁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험담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내 가족, 동생에게는

모진 말을 있는 그대로 다했다.


아빠의 모습 중 내가 싫어하는 부분을 닮아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내가 아빠 같았다.


동생이 세상을 사는 방식이 내 성에 차지 않으면 그것이 마음 아팠다.

그리고 한심했다.


이런 나도 사는데, 지금 그게 불행할 일인가?


내가 매를 맞아봤으니, 너도 조심하지 않으면 매를 맞을게 뻔한데 그 고통을 동생이 아직 모르고 있는 게 견딜 수없이 조바심이 났다.


조언이랍시고 날리는 말들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모르면서 '이 정도는 참을 줄 알아야지.'라며 냉정하게 내뱉었다.


정작 나는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상처가 오기 전에 상황을 회피했으면서 말이다.



남편에게 보호와 인정과 사랑을 받기보다

먼저 버림받지 않기 위해 냉정해져야 했고

남편에게 의지하는 여자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불안했다.


시댁 어르신들이 잘해준다는 말을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저러다 큰 코 다치지... 속으로 장담하고 있었다.

질투였던 걸까.


그렇다. 그냥 질투였던 것 같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 말이다.

내가 받지 못한 보호와 위로와 따뜻함을 굳이 상상해 보는 건 어려웠다.



잠시 단절했던 친구들과는 다시 연락을 하며 잘 지내고 있지만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제는 조언이나 진심

되도록이면 이야기하지 않는다.


친절도 관심도 과하면 그게 간섭이라는 것을 몇 번의 인간관계를 망친 후 알게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퇴근길 애써 밝은 목소리로 아이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딸~ 엄마 퇴근해."

"... 응."


짧게 대답하는 아이의 목소리에 여전히

불편함이 묻어있다.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친구와 단절했던 그때처럼 아이와 서먹서먹해질 것 같아

서투른 내 감정표현과 어른스럽지 못한 내 성격을

탓해본다.


나이를 먹으면 너그러워진다는데

많은 것들을 포용하게 된다는데

나는 아직 한참 멀었는지


아이와 이야기하는 순간

좀 더 좋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버럭해 버린 내가 원망스럽다.



"아, 몰라!!!"


내가 그 옛날 짜증 내며 엄마 옆을 쌩 지나갔을 때

엄마가 왜 별말 없이 돌아서서

하던 설거지를 마저 하셨는지


엄마를 이해하려면 멀었지만

돌아선 엄마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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