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극배우 B씨 Jan 23. 2021

이혼했지만 가난하게 살고 싶진 않다(3)

이혼 후 이야기 #. 49


이번 물건에 입찰하신 분은 두 분입니다. 해당 물건 입찰하신 분들 앞으로 나오세요

경매로 나온 깔끔한 빌라에 입찰한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단 두 사람이었다.


'어머! 이러다 정말 낙찰인 건가.'


떨리는 마음으로 가방을 품에 안고 어정쩡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방에 있는 아주 새것 같은 빌라였다.


낙찰을 받으면 세를 주고 매달 월세를 받을까, 아님 전세로 돌릴까 시상식에서 시상소감을 준비하듯 찰나지만 행복한 상상을 마구 했다.



하지만 정확히 3분 뒤 나는 경매 보증금을 들고 허탈한 표정으로 경매법원을 나오고 있었다.

나보다 600만 원 정도 더 높게 입찰가를 쓴 남자가 낙찰을 받았다.


'휴가까지 쓰고 왔는데 너무하네.'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며 나왔다.






조금씩 모아둔 돈으로 부동산 경매 기초반 수업을 신청했다.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가서 수업을 들었는데 연초부터 심상찮았던 코로나가 어느새 바짝  일상에 스며들고 있었다.


거리두기 격상에 따라 수업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집에서 화면으로만 듣는 수업은 내 이해력의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수업이 흐지부지 되는 듯했지만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가난해지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계속되던 여름, 온라인 경매 기초과정을 다시 수강하기 시작했다.

출퇴근 때 울적함을 벗 삼아 듣던 발라드 음악 대신 재테크와 관련된 것들을 들었다.


재테크와 관련된 책을 사서 읽고 온라인 카페에 가입했다.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자본주의의 속성을 하나도 모르고 있던 그저 그런 나를 마주했다.

9시간을 꼬박 반납해야 한 달에 한 번씩 월급을 받아가는 나를 인식하게 되었다.


누구나 당연한 거라고

사업가나 투자자는 자본이 있고 머리가 좋은, 타고난 극소수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처럼 월급쟁이인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내어 부동산이나 주식을 공부하고 투잡을 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훈련시키고 공부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퇴근 후 집에서 술 한잔 하며 신세한탄이나 하던 나는 깨달았다.


'어제처럼 오늘을 똑같이 살면 내일도 오늘이랑 같겠구나.'


똑같이 반복하는 날들이 일주일이 쌓이고 한 달이 되고 일 년, 10년을 가면 나는 그때도 이렇게 내 시간과 돈을 서로 교환하며 몸으로만 돈을 버는 생활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내가 처한 재정상황을 냉정하게 적어보았다.


열심히 산다고, 낭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낭비를 하지 않았다 뿐이지 그렇다고 돈이 척척 쌓이고 있지도 않았다.


부자가 되고 싶다 되고 싶다하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건물주가 되고 싶으세요?
어느 지역 어디에 있는 몇 층의 어떤 건물, 얼마 짜리를 갖고 싶으신데요?



시간과 돈을 모아 상담을 갔던 곳에서 질문을 받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막연하게 나의 장래희망은 건물주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앵무새처럼 말하는 것 말고는 내가 실행에 옮긴 것이 그동안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종잣돈 3천만 원으로 서울 아파트를 운 좋게 샀다 뿐이지 결국 팔아서 내 손에 쥐어야 재산이 되는 것이었고, 운이 좋아 적절한 시기에 매입한 것일 뿐 나는 여전히 부동산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였다.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내 건강이 허락을 할지, 상황이 나를 계속 월급을 받게 할 수 있도록 흘러갈지 무엇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부해나가기 시작한 것이 부동산 경매였다.


패찰을 하고 나면 휴가가 끝났고 다시 물건을 검색하고 조사하고 법원에 가서 입찰을 했지만 또다시 빈손으로 법원을 나왔다.


매주 휴가를 내가면서 법원을 다닐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둘 것도 아니었다.

밤마다 경매사이트에서 물건을 검색하고, 경매 카페를 수시로 들어갔다.


경험담을 읽고 출력해서 또 보고 노트에 메모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사는 동네 이웃 단지에 경매로 나온 아파트가 보였다.

지방이나 다른 동네는 내가 바로바로 가볼 수가 없으니 실제로 괜찮은 물건인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는데 우리 동네 아파트라니, 그것도 매일 지나다니는 익숙한 단지라니!


눈이 번쩍 뜨였다.


경매로 나온 아파트의 내부를 볼 수는 없겠지만 아파트 도면도 있고 무엇보다 내가 이 동네에 살고 있으니 아파트의 시세 정도는 가늠할 수가 있었다.


경매가 진행되다 보면 가격이 떨어지는데 그렇게 싸게 사게 되면 내가 되팔아도 이익이 남을 거라 생각했다.


한번 유찰되어 최저 입찰 가격이 70%로 떨어져 있기도 하고 단지 내 아파트이니 나처럼 좋게 보는 경쟁자들이 많을 것 같았다.


주변의 환경이야 내가 사는 동네이니 더 생각할 것도 없었지만 해당 아파트는 한 번이라도 가봐야 했다.

그런데 퇴근하는 길에 들르면 누가 봐도 입찰 물건 조사하러 나온 것 같은 냄새를 풍길까 봐 괜한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고 집에서 입는 수면바지를 입었다.

집에 있는 쓰레기로 일반 쓰레기 한 봉지를 만들었다.


누가 봐도 그 아파트에 사는, 쓰레기 버리러 나온 주민처럼 보이면 좋을 것 같았다.



일부러 슬리퍼를 신고 종량제 봉투를 든 채 경매로 나온 아파트 단지에 갔다.

층수를 손으로 세어 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했다. 


가스계량기에 표시된 사용량을 우리 집 사용량과 비교하며 적어도 일가족 4명 이상이 살고 있는 집이구나 짐작을 했다.


꽤 오래된 주공아파트임에도 엘리베이터가 깔끔하고 외관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주위가 이 근방에서는 그나마 대단지이고, 대중교통편도 좋았다.

학교도 근처에 있었다.


보통 경매로 나온 집은 우편함에 연체됐다는 독촉장들이 수북하거나 현관문에 이것저것 덕지덕지 붙어있는데 이 집은 우편함에 우편물이 없었다. 집주인이 사는 모양이었다. 



이 집의 가장도 자신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고통이 짐작은 되었지만, 나는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하고 부에 대한 생각을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아파트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복도 청소상태를 확인하고 주차장과 아파트 앞뒤를 한참 서성거렸다.


집에 돌아와서 입찰가를 얼마나 쓸 것인지, 관리비는 얼마나 밀려있는지 조사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예상가를 써놓았다.

코로나로 휴가를 신청할 수 없게 되어 회사에는 병원 진료를 다녀오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월요일 오전, 법원.

내가 좋다고 판단한 만큼 사람들이 이 아파트에 몰렸다.


입찰 경쟁자는 17명이나 더 있었고 나는 시세조사와 수익률을 서투르게나마 계산하여 쓴 금액으로도 다시 한번 패찰 하였다.

18명 중에 나는 3번째로 높은 가격을 썼다.


낙찰받은 1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에 섞여 입찰보증금을 되돌려 받았다.

오후 4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점심을 못 먹은 배가 꼬르륵거렸다.

5시간을 서서 기다린 덕분에 허리에 감각이 없었다.


법원을 나오면서 아이에게 문자를 했다.

"딸! 엄마 이번에도..." ^^

"맨날 떨어지면서 왜 자꾸만 가?"


뭐 어때. 엄마는 이번에도 성공 예행연습한 거야^^

아이가 얼레꼴레 놀리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공용주차장에서 차를 찾아 나오는데 뻐근한 허리만큼이나 명치도 같이 뻐근해져 왔다.


... 점퍼 위로 자갈 같은 마른 눈물이 툭하고 떨어졌다.


며칠을 그 아파트에 가서 서성이던 게 생각났다.

아파트 시세를 뒤지고 매매, 전세 물건이 어떻게 나왔는지 부동산밖에 걸린 매물들을 훔쳐보던 것도 생각났다.


"낙찰되면 그냥 김밥 말고 꼭 참치김밥 한 줄 사서 먹으면서 가야지!"

법원에 들어서면서 다짐했던 기대가 쑥 들어갔다.


하하! 참치김밥을 먹을 게 아니라 어디 가서 김칫국물이라도 들이켜야 할 판이었다.






허탈했지만 경매물건을 조사하고 입찰가를 고민할수록 점점 1등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을 느꼈다.


왜 이 가격이 되어야 하는지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경매 공부한다고?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보증금 다 떼일 수도 있고 경매가 사람이 할 짓이 못돼, 차라리 다른 거 해, 그게 돈이 되기나 하겠어?"


우연히 지인에게 말했더니 반응이 부정적이었다.

잠깐 마음이 상했지만 이내 한 귀로 흘렸다.


그 사람이 경매 공부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시작하기 전의 호기심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막연한 두려움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해보기도 전에 남들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기로 했다.


공부를 처음 시작하면서, 부자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늘 다짐하고 있다.

부자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말은 어느 정도 걸러서 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직 나는 시작도 안 했으니까!^^





집에 돌아와 식탁에 앉았는데 아이가 밥을 꾹 눌러펐다.


엄마 굶은 걸 아는 걸까.


우리 셋은 묵묵히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침묵을 참지 못하고 이내 조잘조잘 경쟁하듯 밥상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직장에서 

아이들은 엄마 없이 자기들끼리만 있었던 집안에서

각자 오늘 하루 어땠는지 밥풀보다 많은 단어를 쓰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엄마가 오늘도 얼마나 상심했을지.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내 아이들의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한 감정이 어떤 색감인지.



배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실행에 더디지 않을 것이다.

매일 하는 것이 나를 만든다.




나는 엄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