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이야기 #. 49
이번 물건에 입찰하신 분은 두 분입니다. 해당 물건 입찰하신 분들 앞으로 나오세요
건물주가 되고 싶으세요?
어느 지역 어디에 있는 몇 층의 어떤 건물, 얼마 짜리를 갖고 싶으신데요?
집에 있는 쓰레기로 일반 쓰레기 한 봉지를 만들었다.
누가 봐도 그 아파트에 사는, 쓰레기 버리러 나온 주민처럼 보이면 좋을 것 같았다.
일부러 슬리퍼를 신고 종량제 봉투를 든 채 경매로 나온 아파트 단지에 갔다.
층수를 손으로 세어 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했다.
가스계량기에 표시된 사용량을 우리 집 사용량과 비교하며 적어도 일가족 4명 이상이 살고 있는 집이구나 짐작을 했다.
꽤 오래된 주공아파트임에도 엘리베이터가 깔끔하고 외관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주위가 이 근방에서는 그나마 대단지이고, 대중교통편도 좋았다.
학교도 근처에 있었다.
보통 경매로 나온 집은 우편함에 연체됐다는 독촉장들이 수북하거나 현관문에 이것저것 덕지덕지 붙어있는데 이 집은 우편함에 우편물이 없었다. 집주인이 사는 모양이었다.
이 집의 가장도 자신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고통이 짐작은 되었지만, 나는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하고 부에 대한 생각을 놓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아파트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복도 청소상태를 확인하고 주차장과 아파트 앞뒤를 한참 서성거렸다.
집에 돌아와서 입찰가를 얼마나 쓸 것인지, 관리비는 얼마나 밀려있는지 조사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예상가를 써놓았다.
코로나로 휴가를 신청할 수 없게 되어 회사에는 병원 진료를 다녀오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월요일 오전, 법원.
내가 좋다고 판단한 만큼 사람들이 이 아파트에 몰렸다.
입찰 경쟁자는 17명이나 더 있었고 나는 시세조사와 수익률을 서투르게나마 계산하여 쓴 금액으로도 다시 한번 패찰 하였다.
18명 중에 나는 3번째로 높은 가격을 썼다.
낙찰받은 1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에 섞여 입찰보증금을 되돌려 받았다.
오후 4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점심을 못 먹은 배가 꼬르륵거렸다.
5시간을 서서 기다린 덕분에 허리에 감각이 없었다.
법원을 나오면서 아이에게 문자를 했다.
"딸! 엄마 이번에도..." ^^
"맨날 떨어지면서 왜 자꾸만 가?"
뭐 어때. 엄마는 이번에도 성공 예행연습한 거야^^
아이가 얼레꼴레 놀리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공용주차장에서 차를 찾아 나오는데 뻐근한 허리만큼이나 명치도 같이 뻐근해져 왔다.
... 점퍼 위로 자갈 같은 마른 눈물이 툭하고 떨어졌다.
며칠을 그 아파트에 가서 서성이던 게 생각났다.
아파트 시세를 뒤지고 매매, 전세 물건이 어떻게 나왔는지 부동산밖에 걸린 매물들을 훔쳐보던 것도 생각났다.
"낙찰되면 그냥 김밥 말고 꼭 참치김밥 한 줄 사서 먹으면서 가야지!"
법원에 들어서면서 다짐했던 기대가 쑥 들어갔다.
하하! 참치김밥을 먹을 게 아니라 어디 가서 김칫국물이라도 들이켜야 할 판이었다.
허탈했지만 경매물건을 조사하고 입찰가를 고민할수록 점점 1등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을 느꼈다.
왜 이 가격이 되어야 하는지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경매 공부한다고?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보증금 다 떼일 수도 있고 경매가 사람이 할 짓이 못돼, 차라리 다른 거 해, 그게 돈이 되기나 하겠어?"
우연히 지인에게 말했더니 반응이 부정적이었다.
잠깐 마음이 상했지만 이내 한 귀로 흘렸다.
그 사람이 경매 공부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시작하기 전의 호기심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막연한 두려움으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해보기도 전에 남들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기로 했다.
공부를 처음 시작하면서, 부자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늘 다짐하고 있다.
부자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말은 어느 정도 걸러서 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아직 나는 시작도 안 했으니까!^^
집에 돌아와 식탁에 앉았는데 아이가 밥을 꾹 눌러펐다.
엄마 굶은 걸 아는 걸까.
우리 셋은 묵묵히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침묵을 참지 못하고 이내 조잘조잘 경쟁하듯 밥상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직장에서
아이들은 엄마 없이 자기들끼리만 있었던 집안에서
각자 오늘 하루 어땠는지 밥풀보다 많은 단어를 쓰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엄마가 오늘도 얼마나 상심했을지.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내 아이들의 설명할 수 없는 미세한 감정이 어떤 색감인지.
배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실행에 더디지 않을 것이다.
매일 하는 것이 나를 만든다.
나는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