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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극배우 B씨 Feb 27. 2021

분가했다면 우리가 이혼을 안 했을까(1)

이혼 후 이야기 #. 52





지금까지 불평 없이 살다가 갑자기 시댁 모임에 가지 않겠다는 며느리. 


으신 어머니의 도움 아래 자기 뜻대로 직장 다녔으면서 갑자기 어머니와 싸우는 아내.




결혼생활이라는 배가 한쪽으로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했던 그때 시어머니 시누이들, 그리고 남편이 결론지은 나였다.




남편과 나는 집안에서 한 번도 큰소리를 내며 다투지 않았다.


어른이 계시니 젊은 부부가 싸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은 '불만이 없는 아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새벽 6시 15분 버스를 타고 왕복 2시간 출퇴근을 하며 나는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우린 어느 순간부터 집에서 대화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남편에게 분노만 하고 있을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너 이혼할 거니?

아이들 놔두고 나올 자신 있어?

- 아니 없어.

그럼 계속 이렇게 냉랭하게 지낼 순 없잖아.

너와 남편은 그렇게 할 수 있다 쳐도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해.

아이들이 그 기운을 다 느낄 텐데...

아이들에게 어두운 집안 분위기를 물려줄 거니?....

-... 아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마침내 혼자만의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사이가 나빠져 대화조차 없던 남편에게 문자를 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우리 둘 중 누가 잘못했고 잘했고 가 문제가 아니야.

우린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았고 가정을 책임져야 해.


어머님이 맞벌이하는 우리를 대신해서 너무 잘 도와주시고 항상 든든하게 아이들 돌봐주시는 거 정말 감사하고 있어.


하지만 지난 수년간 우리의 결혼생활에 당신은 없고, 어머니와 내가 마치 결혼해서 아이들을 양육하고 집안일을 상의하고 해결 해내가는 것 같아.


나는 당신이랑 육아, 가사, 인생을 꾸려나가고 싶지 어머니와는 아니야.


어머니가 중간에서 자꾸만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을 다해주려고 하니까 당신도 어머니에게 기대고 나도 당신에게 다가갈 틈이 없어.







맞벌이 부부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는 걸 언니 부부를 보면서 알았다.


언니도 맞벌이 부부였는데 처음부터 신혼살림을 타지에서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꾸렸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직장일과 육아를 오로지 남편과 둘이서 해결해야 했다.


아이를 급하게 맡길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은 일상이었고, 야근도 회식도 남편과 순번을 정해서 해야 했다.


아이들이 아플 때도, 학교에 가봐야 할 때도, 쉬는 날 조차도 남편과 시간 조율을 해가며 치열하게 아이들을 키워냈고 가정을 꾸렸다.


그러면서 부부에게 생기는 끈끈한 전우애 같은 사랑은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봐도 참 좋아 보였다.


살갑지 않아도 형부는 언니는 배려했고 부족한 점을 채워주었고 언니 또한 형부를 존중했다.


내가 바라던 맞벌이 부부 아니 결혼생활의 바람직한 모습 그 자체였다.

형부는 본가보다 자신이 이룬 가정과 언니를 우선시했다.


언니와 상의되지 않는 일은 나서서 하지 않았고 늘 언니와 아이들이 우선이었다.


'뭐, 그런 가정도 있고 이런 가정도 있는 지...'

내 결혼생활을 애써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결혼만 했을 뿐 여전히 어머니의 보살핌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나랑 다투고 내가 말문을 닫아도 육아에 대해서는 어머니와 대화를 하면 그만이었다.


내 마음에 서운한 게 있을 때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늦잠 자는 아들을 대신해 어머니가 아이들 등원 준비에 다 큰 아들 이부자리를 정리하셨고 아침상을 차려 잠을 깨워주었다.


아내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남편의 일상생활에 아무런 불편함이나 지장이 없었다.


남편은 나를 '복에 겨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우리들이 누리는 이 안락함과 안정감이 어머니의 희생에서 나오는데 대체 무슨 배부른 소리를 하냐는 거였다.


나는 양말을 뒤집어 신고 나오고 눈썹 한쪽을 못 그리고 출근하더라도 남편과 함께 아이 둘을 열심히 열심히 키워내고 싶었다.


그것을 이 사람과 하면 참 좋겠다 싶어 한 것이 결혼이었다.


그래서 흰머리가 희끗할 때 즈음 아이들이 독립하는 날 짐을 날라주며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고 재밌게 이 녀석들을 키워냈었는지 풀어도 풀어도 줄지 않는 예전 경험담을 추억 삼아 두고두고 되새기고 싶었다.


지금은 다 키워서 몸은 편하지만 그래도 그때가 재밌고 좋았다고 회상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어머니에게 남편은 여전히 입혀주고 재워주어야 하는 어린 막둥이 아들이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말인데, 어머니 없이 몇 달만 우리끼리 애 키우고 살림하면서 정말 서로가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


어머니 모시기 싫어서가 절대 아니야.


당신도 어머니가 손녀들 키워주고 집안 살림하시면서 힘드실 거라고 늘 말했잖아.


이 가정을 우리 둘이서 감당할 수 있는지, 다시 우리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어서 그래.



예상했던 대로였다.

남편은 확고했다.


아내는 그동안 어머니의 희생을 모르고 '내치자'라고 주장한다는 것.


아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지, 그전에 어떤 마음이었을지 가늠해보려는 시도조차 없는 듯했다.


집안의 온기가 날이 갈수록 없어져 가는데 그것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는지 노력도 이해할 마음도 없어 보였다.




남편에게 기대를 접은 뒤

마지막으로 SOS를 쳤다.


내가 그나마 제일 믿었던 시누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했다.


참 순진했다.


시누라는 입장을 떠나 

나와 같은 여자니까

시누도 결혼초에 시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힘들었다고 하니까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이해를 못한다 해도 내가 부탁하는 것에 대해 단 몇 달이라도 한번 해보라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봐줄 것 같았다.


같은 여자니까

시누도 나도 아이를 키우고 있고 남편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싶은 여자니까

... 그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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