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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Feb 11. 2017

영화 <재심>에 대한 변론

영화에서 '진실'을 다루는 새로운 방법

영화 <재심>의 엔딩 크레딧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진실을 이야기하기에
적합한 매체일까?

영화가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거나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며 하나의 장르처럼 소비되고 있다. 그럼에도 각 영화들이 연출이나 연기 뿐 아니라 사회적, 윤리적 잣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만드는 이도 보는 이도 모두 '실화'를 가볍게 여기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김태윤 감독은 백혈병으로 숨진 삼성 반도체 직원 고(故) 황유미 사건을 영화 <또 하나의 약속>으로 만들어 주목받은 바 있다. 다큐멘터리나 르포 형태가 아닌 '극'으로 실화를 각색하는 일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란 실제 사건을 소재로 다시 영화 <재심>을 관객 앞에 선보였다.

출처 : 다음 영화 검색 daum.net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냉담했다. '너무 허구적이며 극화되었다.', '영화 <변호사>에서 기대한 법정 스릴러의 쫄깃함은커녕 거대 권력에 맞서 이긴 '정의'에 대한 통쾌함조차 없다.', '영화를 보다만 느낌이다.', '응? 결국 대세는 브로맨스인가?'라는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나 또한 실화 치고 명쾌한 느낌이 들지 않아 허전한 느낌을 받았고,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지만 정우는 응사의 쓰레기를, 강하늘은 동주의 동주를 그대로 연기한 느낌도 들었다. 영화 <재심>은 왜 법정 스릴러가 아닌 '휴먼'에 집중한 감동극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나 또한 허전함을 느낀 관객이지만 감독의 입장에서 <재심>에 대한 세 가지 변명을 해보고자 한다.


변명 1. 영화 <재심>은 언제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나.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소개되며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2000년 8월, 10대의 다방 배달원 최씨는 전북 익산의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 유모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돼 10년간 수감되었다. 사건 발생 16년 후인 2016년 11월 17일 이루어진 재심에서 진범이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던 김모씨로 밝혀지면서 최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11월, 최씨의 무죄가 최종적으로 선고되면서 사람들은 이제라도 바로 잡아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된 이후 영화 <재심>이 개봉했기 때문에 더 자세하고 날카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의 마음은 너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재심>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송에 내보내기 전, 사건이 권력에 묻힐 것을 염려한 박준영 변호사의 부탁을 받고 먼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에 접근해야 하는 김태윤 감독으로서는 아무리 최씨의 무죄에 확신이 있다 하더라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 관련기사 : ‘재심’ 김태윤 감독 “‘그알’ 보고 만든 것 아냐”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택한 이유(인터뷰)


변명 2. 영화 <재심>은 왜 '휴먼'에 집중했을까

영화 <재심>의 제작시기를 고려할 때 김태윤 감독은 해당 사건이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하고 조용히 마무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 것이다.

뚜렷한 증거보다 '최씨'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그의 '억울함'을 끝까지 밝힐만한 동기부여를 관객들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변호사 역할을 맡은 정우도 최모씨 역의 현우를 맡은 강하늘도 재판 그 자체에 대해서는 100퍼센트의 확신이 없다.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는 그들의 '선택'이 있을 뿐.


언제나 '선택'은 쉽지 않다. 특히 두 사람 모두의 인생이 걸린 '선택'은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 앞 결심의 '이유',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다른 누군가의 진심은 가장 큰 진실일지도 모른다.


변명 3. 영화 <재심>은 지나치게 극화된 것일까

그렇다. 영화가 좀 많이 극화되었음은 사실이다. 허름한 술집에서 만나 여차저차 이야기를 하다가 사건의 열쇠를 발견하고, 변호인과 변호를 받아야 하는 정우-강하늘과의 첫 만남이 결코 순탄하지 않으며 강하늘을 변호하는 정우조차 강하늘을 믿지 못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법정 스릴러의 극적 클리셰는 모두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범인으로 몰린 강하늘의 기막힌 그림솜씨와 정우의 변호사적 능력이 만나 벽면 한가득 사건의 전말을 완성해나가는 장면은 클리셰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미 내려진 판결을 뒤집는 '재심'이 영화 제목인만큼 관객들은 '법정' 장면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극이 될만한 몇몇 사건들만 극화되고 법정 장면은 엔딩에서 딱 한 번 그려진다. 영화의 초반 극으로 다루어진 것들이 법정이라는 '객관적' 장소에서 다시 정리되었다면 관객들은 다른 평가를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을 돌려 생각해보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진실을 다루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다. 법정 장면을 삽입하기엔 확정되지 않은 '진실'이라는 큰 장애요소를 배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는 과연 '진실'을 다루기에 적절한 매체일까?라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필자가 영화를 보고 느낀 허전함에도 불구하고 영화 <재심>에 대한 세 가지 변명을 대신 늘어놓은 것은 영화라는 매체가 '밝혀지지 않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오히려 '극'이라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며 고민한 흔적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기대와는 달랐지만 전반적으로는 사건에 대한 적절한 연출과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 그리고 훈훈한 브로맨스 덕분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영화였다. 하지만 쫄깃한 법정스릴러를 기대한다면 알맹이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함을 지우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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