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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Feb 15. 2017

한국영화에 대한 그저 그런 <공조>

영화 <공조> 후기

*본 글에는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조>는 스토리의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설득력이 떨어져 관객의 동요가 일어날 때쯤 유해진의 개그와 현빈의 멋있음을 적절하게 버무린 킬링타임용 영화다. 투자사도, 배급사도, 티켓을 사서 본 관객도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공조의 사전적 정의는 '함께 도와주거나 서로 돕는다'라고 한다. 영화 <공조>의 흥행은 아마 한국영화 수준에 대한 영화 관계자와 관객의 그저 그런 공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아! 물론 재미는 있었다.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한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1. 뻔한 스토리에 대한 공조 

북한 특수부대 정예요원 임철령(현빈)과 남한의 생계형(?) 형사 강진태(유해진)가 북한의 망명자인 차기성(김주혁)을 찾기 위해 공조를 시작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사실 차기성은 그냥 망명자가 아니라 북한 정부가 만든 위조지폐 동판을 들고 달아난 범죄자이며 임철령의 아내와 동료를 죽인 임철령의 철천지 원수다. 임철령과 북의 입장에선 북한 정부가 위조지폐 동판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되기 때문에 이 내용은 극비다. 하지만 차기성이 그냥 망명자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 남한 정부와 경찰은 그 극비를 알아내려고 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두 가지 임무가 임철령과 강진태에게 내려진 것이다.

비밀스럽게 일을 끝내려는 자와 그 비밀을 알아내려는 자의 사이의 간극은 '공조'라는 수사 형태와 다르게 불신과 갈등을 조장시킨다. 하지만 영화는 대세인 '브로맨스'를 따른다. 강진태는 자신의 집으로 임철령을 데려가 재운다.

독기로 가득 찬 임철령은 새삼 '가족애'를 느끼게 되고 남편밖에 없는 아내와 토끼같이 귀여운 딸 그리고 철없이 얹혀사는 처제까지 있는 이 집에서 사람 냄새 폴폴 나는 대접을 받자 임철령은 뻔-하고 당연하게 자신의 동료와 죽은 아내를 떠올리며 강진태에게 인간적인 마음을 가지게 된다. 강진태 또한 임철령의 속이야기를 들으며 브로맨스에 동참한다. '휴먼'이라는 스토리계의 MSG가 영화 전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관객들 또한 이 익숙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2. 엉성한 설정에 대한 공조
유일한 분단국가 남한과 북한에서 벌어지는 협동 수사는 전 세계적인 프레임으로 볼 때 신선하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군인들이 대치하는 것도 아니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서울에서 남과 북의 '형사'가 협동 수사를 한다는 설정은 남북 관계를 컨셉으로 한 기존 한국영화와도 차별화된 설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선함에 치중한 탓일까. 매우 엉성한 설정으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몇 가지 의문점들이 남는다.

밑도 끝도 없이 정상회담 장소에서 만나 수사를 시작하는 임철령(현빈)과 강진태(유해진)

이 중요한 일이 실수로 인해 정직조치를 받은 유해진에게 왜 맡겨졌으며 변변한 수사 가이드도 없고, 가이드가 있다고 하더라도 임철령의 무작위 수사(?)는 계속된다. 아무리 극비에 진행되는 수사지만 이렇게 보안도 경계도 없는 수사는 조금 오버해서 현실에 대입해보면 끔찍할 정도다.

위조지폐 동판을 가지고 튄 북한 군인 하나를 잡겠다고 아무 죄 없는 남한의 시민들이 얼마나 많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지! 그러나 수사에 책임을 지는 강진태는 임철령의 멋있음에 한없이 감탄할 뿐이다.

이미지 출처 : 뉴스팩트

물론 이 포인트가 웃음과 긴장감을 유발하고 멋있음과 인간애를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들은 모르는 척 넘어갈 수밖에 없다. 나 또한 현빈의 팬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액션신을 보며 마음이 설렜으니깐. 하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목숨을 걸던 위조지폐 동판은 '정'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 되어 바다로 던져지고, 국가의 입장으로 봤을 때 손해 나는 일을 한 임철령과 강진태는 모두 무사히 오히려 더 좋은 위치로 올라가게 된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나온 토막 영상에서는 1년 뒤 강진태가 북한을 방문해 임철령과 다시 공조를 하는 씬이 나오는데 이것이야 말로 한국 영화가 얼마나 '재미'에 치중하여 현실감을 배제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3. 한국 영화에 대한 그저 그런 공조

사실 <공조>를 볼 때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미'는 있었다. 임철령(현빈)은 멋있었고, 유해진(강진태)은 웃겼다. 하지만 너무 전형적인 캐릭터 설정이었고 이야기 또한 액션 스릴러가 휴먼으로 변해가는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따랐다. 긴장을 조성하는 차기성(김주혁)과 그 세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허무하게 무너졌고, 할리우드 히어로물에서도 보기 힘든 가성비 좋은 결과를 임철령과 강진태 단 둘이서 이끌어낸다.



영화는 대낮의 명동 한복판에서 총성이 들리고 차기성도 아니고 그 끄나풀을 잡겠다고 유치원생 열댓 명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를 포함해 한국영화의 공식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어물쩍 이 장면을 넘어가 준다. 마음만 먹으면 요목조목 클리셰도 짚어내고 옥에 티도 발견할 수 있는 똑똑한 관객들이지만 암묵적으로 한국 영화에 대한 이 정도의 기대감만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공조가 가능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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