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이를 위한 식탁

정신마저 혼미하게 만드는 고추 간짜장과 매운 짬뽕

by 노크노크
비오는 날, 군산에서 고추 간짜장 @copyright by 노크노크


퇴사를 한 뒤 마음을 느긋하게 먹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생체리듬은 출근할 때와 다르지 않아서 아침 7시면 눈이 번쩍, 한참 밍기적거렸다 싶어도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나면 고작 9시였다. 의미 없는 분주함에 스스로 지쳐갈 무렵, 비슷한 시기에 퇴사를 한 고등학교 선배와 군산 여행을 떠났다.


서해 금빛 열차를 타고 군산에 다다를 무렵, 비가 내렸다. 늦가을 아니 초겨울 코트를 입어도 손끝이 시린데 비까지 내리니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딱히 목적이 있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비가 내리니 무엇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런저런 일상의 이야기를 끝낼 무렵 군산에 도착했다.


낯선 곳, 택시를 타려다가 기차에서 정한 첫 번째 목적지가 적힌 버스 팻말을 보고 덜컥 올라탄 버스. 텅 빈 길가에 툭하고 남겨진 우리 둘은 일단 '배를 채우자'라고 입을 모았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이건 아닌 것 같아'라는 느낌적인 느낌만으로 회사를 뛰쳐나온 우리 둘. 그저 '여행을 가자, 군산으로'를 외치고 기차에 올라탄 우리 둘.


길을 잃은 자에게 '배고픔'이란 해결해야 할 새로운 미션처럼 느껴졌고 사명감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호기로움과 달리 정말 '길'을 잃고 만다.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 빙- 둘러온 것이 분명하다. 우여곡절 끝에 식당에 도착했지만 방송에 나온 집이라 그런지 헤맨 길만큼이나 줄이 길다. 고추 간짜장 약간 덜 맵게 와 매운 짬뽕을 미리 주문해두고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 순서가 오길 기다렸다. 동행과 마주 볼 수도 없는 자리에 나란히 배치받아 바로 나온 음식을 받아 들었다. 입으로 가져간 순간 미션 완료.

동행자와 옆에 나란히 앉아 먹어야 했던 고추 간짜장과 매운 짬뽕 @copyright by 노크노크

맵다! 약간 덜 맵게를 외치지 않았더라면 다 먹지 못했겠다. 맵고, 맵고, 맵고, 맵고 매웠다. 마치 이 온전한 매움을 위해 이 식탁이 있는 것만 같았다. 길을 잃어 머릿속이 하얘졌는데 이참에 정신마저 혼미하게 만드는 매운맛까지 경험하고 나니 입 안의 얼얼함 때문에 머리를 가득 채우던 온갖 걱정이 상대적으로 가벼워진다.


길 잃은 자에게 새로운 목표가 되었던 한 끼 식사는 입안 전체의 얼얼함과 계속 흐르는 콧물의 추억을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날의 식탁을 추억하면 함께 헤맬 수 있는 동행이 있어서, 한 끼 식사에 갖은 이야기를 담아낼 괜찮은 친구가 있어서 마음이 든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