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크노크 Oct 12. 2015

우주의 평수

우주의 평수는 딱 소주잔만큼 작아졌다.


슬픈 날이다. 오늘 난 좀 우울하다. 결코 안경을 쓴 채 문에 얼굴을 박아 눈 주변에 상처가 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불과 몇 년 전의 난 꽤 극성맞은 아이였다. 


외국에 잘 못 알려진 우리나라의 역사나 문화 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한국을 소개하는 VANK라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직접 거리 캠페인을 주도할 만큼 '나'의 일 아닌 '나라' 일에, '우리' 일에 관심이 많았다. 


학교 일본어 시간에 일일 교사로 온 일본인 선생님이 일본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독도가 아닌 일본해라고 적힌 지도를 보여줬다는 이유로 쉬는 시간 선생님을 찾아가 동해로 표기된 세계지도를 주며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라 한국 땅이라고 열변을 토한 적도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땐 마치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내 이름을 틀리게 부른 누군가에게 내 이름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독도, 위안부, 동북공정 등 역사적인 사안에 대해서 참 관심이 많았고 정치적인 이슈에도 정말 관심이 많았다. 


국사, 근현대사, 정치를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해당 사안에 대해 지극히 열정적인 행동들을 실천하곤 했다. 수능이나 잘 볼 것이지, 어린 애가 별 이상한 곳에 관심이 많다고 나를 저지하는 어른들을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드물게 조용히 응원하며 물질적,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는 어른들이 있었는데 난 반드시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신문 기사를 읽어도, 뉴스를 봐도, 어떤 잘못을 폭로하는 다큐멘터리나 기획 기사들을 보더라도 별 감흥이 없다. 옳고 그름을 따져 바뀌는 것이 없었다(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회사에 들어가 월급을 받으면서 장님 3년,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코스프레를 빡세게 하다 보니 어느 덧 눈이 침침해지고 '나'의 언어를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사회'의 구성원이었던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오히려 사회를 망각했다. 점점 관심은 '나' 자신으로 좁혀졌다. 오로지 '나'. 이제는 정말 지겨운 '나'의 일상에 고개를 처박았다. 한 줄기 햇빛이 들어와 날 간지럽혀도 외면했고, 거친 비바람이 몰아칠 때면 더욱 깊게 고개를 처박았다. 


'사회'도 있고, '우리'도 있었던 나의 우주엔 '나' 혼자 남았다. 하나의 생명체를 품은 우주는 급속도로 작아졌고 무기력해졌다. 우주가 날 수축한 것인지, 난 점점 웅크리게 되었다.


한쪽으로 치우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던 시절, 난 넓은 시선을 통해 객관적인 논조를 같고 싶어 했다. 황희 정승처럼 지혜롭게 중간을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막상 좌도 우도 아니고 객관적인 눈으로 세상을 봤다고 느끼는 요즘, 난 어느 때보다 불행하다. 


'의견'이 없는 것을 객관적이라고 합리화하고, 외면을 통해 문제로부터 시선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우주의 평수는 이제 열 평도 되지 않는 내 자취방만 큼으로 줄어들었다. 내가 평수가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더라도, 나의 우주는 평수를 늘리지 못할 것 같다. 작아질 대로 작아진 우주에서 난 무기력하게 소멸되어 간다.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쏟아지던 열정의 샘은 고갈되어 버리고 나는 그 샘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내가 외면한 많은 일들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고 잊힐 것이다. 나는 그럭저럭 나의 우주 속에서 잘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외면한 부조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부조리함은 바로 내 우주를 덮칠 것이고, 나만 있는 우주는 무기력하게 잠식당할 것이다. '사회'도 '우리'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렇듯 타인도 그들의 우주에서 좁아진 평수를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속상하다.


하루 종일 내내 우울했다. 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내일이면 난 종종 거리면서 생계형 알바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좁아진 나의 우주에서 안락함을 느낄 것이다. 중력의 법칙에 몸을 맡기듯 무기력에 마음을 내어줄 것이다. 두렵지만 어느 정도 희망적이다. 


지나치게 슬픈 오늘을 내일이면 망각할 것이기 때문에... 숨 막히게 좁은 우주를 '안락하다'고 느끼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사회의 부조리는 오직 '나'와 관련된 것에만 관심을 보이게 될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겠지 싶어 맥주 한 잔에 찝찝한 마음을 모두 헹구어 낼 것이다. 답답함은 소주 한 잔에 녹여 한 입에 탁 털어 넣고 말 것이다.



우주의 평수는 결국 딱 소주잔만큼 줄어들어버렸다.




작아진 나와 당신의 우주를 위해 건배!  


매거진의 이전글 급한 연락은 다른 사람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