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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Jun 17. 2017

선택의 되감기, 하루

영화 <하루> 리뷰

삶은 흔히 '선택'의 집합이라고 정의된다. 태어남(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는 수많은 선택(Choice)이 놓여있다. 어느 곳에서 어떻게 태어나든 모든 인간은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 선택의 결과는 쉽게 뒤바꿀 수 없다. 설령 바꾼다고 하더라도 처음의 그 '선택'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하루>는 세 남자의 '선택'에 대한 영화다.


첫 번째 선택, 반드시 살려야 한다

준영에게는 전부를 주어도 아깝지 않은 딸 은정이 있다. 준영은 해외 의료봉사를 다니면서 전쟁의 성자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의사지만 딸 앞에서는 한 마디 변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딸 바보다. 외국에 있는 동안 그냥 지나친 딸아이의 생일 때문에 준영은 공항에서 집에 가는 내내 좌불안석이다. 토라진 딸아이를 풀어주기 위해 계속 연락을 하지만 사춘기 딸 은정은 일부러 아빠의 연락을 받지 않는다.

준영이 애지중지하는 딸, 은정

병원에서 구급차를 운전하는 민철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아이를 원하는 아내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낸다. 아내를 충분히 사랑하긴 하지만 없는 형편에 아이까지 생기는 건 가장으로서 영 부담스러운 일이다.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민철의 아내, 미경

어떤 하루, 준영과 민철은 같은 장소에서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딸과 아내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지옥 같은 하루에 먼저 갇히게 된 건 민철이다. 매일 12시,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된 아내를 목격하는 일은 죽기보다 고통스럽다. 어떻게든 아내의 죽음을 막아보고 싶지만 아내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하루만이 반복될 뿐이다. 그런 민철에게 준영의 등장은 이 끔찍한 하루를 바꿀 수 있도 있겠다는 한줄기 희망이 된다.

어떻게든 소중한 사람을 '살리자'고 다짐하는 두 남자

소중한 사람을 잃은 두 남자는 하루를 바꿔서라도 딸과 아내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갖은 방법을 써가며 사고의 상황을 조금씩 바꿔보지만 매번 딸의 사고 장면을 목격하게 되거나 이미 시체가 된 아내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두 남자는 소중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반복되는 하루가 그들을 살리도록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다.


두 번째 선택, 돌이킬 수 없는 과거 마주하기

어떤 짓을 해도 준영의 딸과 민철의 아내는 살릴 수가 없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준영의 딸은 택시에 치여서 사망하고 민철의 아내는 준영의 딸을 친 택시 안에서 사망한다. 준영과 민철은 소중한 사람을 앗아간 택시 운전사를 추적하게 되고 택시운전사 강식의 하루 또한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죽이려는 이와 그 죽음을 막으려는 이의 하루가 나란히 반복되고 있으니 쉽게 결과를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은정과 미경을 매일 반복해서 죽이는 택시 운전사, 강식

준영과 민철은 강식에 대해 알아보면서 애써 잊고 있었던 어두운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과거의 어느 하루, 자신이 했던 선택 때문에 소중한 이의 죽음이 반복되는 끔찍한 하루 안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강식은 이미 하늘나라에 간 아들 '하루'의 죽음으로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느 날 밤, 민철의 운전 부주의로 민철의 차를 피하려던 강식과 하루의 차가 뒤집히는 사고가 일어난다. 덜컥 겁이 났던 민철은 강식과 하루를 바로 구하지 못한다. 늦은 이송으로 하루는 뇌사상태로 병원 응급실에 가게 된다.


그날은 심장 이식 수술을 앞두고 있던 준영의 딸 은정이에게 심장 기증이 취소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린 날이기도 했다. 딸을 살리고 싶었던 준영은 같은 병원 응급실에 뇌사상태로 실려온 남자아이 '하루'를 보고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고 만다. 의식이 없는 강식의 손에 인주를 묻혀 심장을 기증받고 뇌사상태의 하루의 심장을 꺼내 딸 은정에게 이식한 것이다. 뒤늦게 깨어난 강식은 한순간에 소중한 아들을 잃고 만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선택으로 인해 지옥 같은 하루는 반복되고 강식의 분노는 점점 극으로 치닫는다. 이런 강식을 두고 준영과 민철은 각각 다른 선택을 한다.

강식을 죽여야 이 상황이 끝난다는 민철과 살려서 사과해야 한다는 준영의 갈등

어차피 강식의 하루도 돌고 있으므로 강식을 죽여야 아내 미경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민철은 강식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반면 어떻게든 강식을 살려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 그의 마음을 돌려보겠다고 생각한 준영은 극도로 흥분한 민철이 강식을 죽일 수 없게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죽어가는 강식을 붙들고 아버지여서 그랬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용서를 빈다. 어떤 것도 해보지 못하고 아들을 잃은 강식 또한 아버지기 때문에 당신들을 용서할 수 없다며 절규한다. 과거의 선택을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세 남자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세 번째 선택, 다시 하루를 살아가기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느 날의 선택으로 인해 끔찍한 하루에 갇힌 세 남자가 있다. 준영은 자신의 잘못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는 딸 은정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이 든다. 강식 또한 자신의 아들 하루의 심장이 뛰고 있는 은정을 제 손으로 죽이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찝찝하다. '하루'와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은정의 말에 강식은 마음이 복잡해진다.  

강식을 설득해 딸을 살린 준영

민철 또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고 했던 자신에 대해 후회를 한다. 또 자신의 완강한 반대로 임신 사실을 감춰야만 했던 미경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민철은 큰 자괴감에 빠진다. 이 끔찍한 하루를 '용서'로 끝낸 강식의 선택으로 인해 민철 또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수 있게 된다.

아내의 소중함을 배로 깨닫게 된 민철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게 된 세 남자는 다시 끝없는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명망 있는 의사인 준영은 3년 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죗값을 받기로 선택하고 민철 또한 자신의 비겁함을 인정하고 자신 앞에 놓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기로 선택한다. '내일'을 살아간다는 것,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한다는 것은 지난날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이며 새로운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이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는 것, 설령 후회할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하루를 소중히 살아가는 것이 몇 번이고 하루를 반복한 영화 <하루>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덧, 사실 볼거리가 많은 영화는 아니었다. 극의 개연성도 떨어지고 후반부로 갈수록 스토리도 늘어져 다소 진부한 한국 영화의 반복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극의 초반 배우들의 연기와 상황 세팅으로 깊게 몰입할 수 있었고 나름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에 90분의 러닝타임을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게 보낼 수 있었다. 이 리뷰를 보고 영화를 볼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역시 당신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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