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 후기
자동차의 리어 뷰 미러(rear view mirror) 흔히 백미러(back mirror)라고 부르는 것은 운전자가 앞을 향한 자세로 뒤쪽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앞을 주시하면서도 뒤를 돌아보는 것은 운전을 할 때뿐 아니라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 이후 피터)를 태우고 광주를 향해 달리던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 분)의 백미러를 통해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우리 역사를 돌아본다.
1980년 서울, 아내를 잃고 혼자 열한 살짜리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만섭의 직업은 택시운전사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운전을 하고 악착같이 밥값, 기름값을 아껴보지만 아내의 병원비로 진 빚 때문에 사글세 10만 원도 내기가 힘들다. 그래도 예쁘게 잘 자라 주는 딸아이 덕에 희망을 가지고 삶을 주행하는 씩씩한 가장이다.
민주화를 향한 청년들의 데모로 택시 손님은 떨어지고, 사글세도 벌써 여러 달 밀린 만섭은 기사식당에서 우연히 왕복 '10만 원'을 주고 광주-서울을 오가고 싶다는 외국인 손님 이야기를 듣게 된다. 10만 원을 벌 생각에 앞 뒤 가리지 않고 외국인 손님을 낚아채 광주로 향한다.
먼저 백미러로 손님을 살펴보는 만섭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외화를 벌러 가서 짧은 영어를 습득하고 온 만섭은 손님 피터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지만 '긴 대화'는 실패하고 만만치 않은 손님이라는 정도만 파악한다. 사실 피터는 목숨을 걸고 광주의 민주화 운동을 취재하러 일본에서 날아온 기자였다. 이를 알 리 없는 만섭은 태평하게 광주를 향하게 된다. 광주의 문턱에서 군인들의 제재를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5만 원 선금'을 받으며 어서 서울로 돌아가 남은 '5만 원'을 더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만섭과 피터는 중요한 서류를 놓고 온 '비즈니스 맨'과 그를 태운 '서울 택시'로 위장하여 광주에 진입한다. 철저한 언론 통제로 광주의 상황을 알 리 없던 만섭은 군인과 시민들의 무력충돌로 폐허가 되어 가는 광주의 거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민주화고 뭐고 일단 나쁘지 않은 금액 5만 원을 받았으니 어서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목표를 세운 만섭은 취재를 위해 잠시 멈춘 피터를 두고 줄행랑을 친다. 하지만 백미러에 비춘 거리의 할머니를 외면하지 못해 할머니를 태우고 광주의 한 병원에 가게 된다.
할머니를 내려준 병원에서 다시 피터와 마주한 만섭. 이제는 영어 조금 한다는 대학생 재식(류준열 분)까지 동행하게 된다. 피터가 차량 뒷 자석에 소중한 필름 가방을 두고 내리는 바람에 만섭은 광주의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소중한 가방을 가지고 도망친 파렴치한으로 몰린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엉겁결에 다시 피터와 재식을 태운 만섭은 재식의 안내에 따라 데모 현장에 가게 된다. 여태껏 데모는 폭동에 불과할 뿐이며, 데모하는 것들은 다 사우디에 가서 고생을 해봐야 정신을 차린다던 입장을 고수하던 만섭은 아무런 이유 없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고 폭행을 하는 군인들의 행동에 충격을 받는다. 피터는 계속 카메라를 통해 광주의 참혹한 풍경을 담아내고 피터의 렌즈는 점점 광주의 잔혹한 현장에 더욱 가까워진다. '말'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극한 상황에 겁을 먹은 만식은 백미러에 계속 비추는 광주의 거리를 1초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 나서야 '광주'의 심각성을 깨달은 만섭은 불안에 휩싸인다.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폭동'은 사실 대학생과 깡패가 벌이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를 막는 정부와 군부의 만행이며, 광주의 시민들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희생하는 중이고, 피터는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 정부의 만행을 멈추기 위해 광주에 왔다는 사실을 모두 이해하게 되었지만 집에 혼자 남은 딸이 걱정되어 눈물을 흘린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광주의 시민들은 따듯했다. 멈춰 선 만섭의 차를 카센터로 옮겨주고 부품이 없자 '중요한 차'가 움직이지 못하면 안 된다고 자신의 차 부품을 선뜻 내어주기도 한다. 거리에서 힘내라고 주먹밥을 나눠주기도 하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대의를 생각해 희생하기도 하는 광주 시민의 모습에 만 섭은 울컥하게 된다. 하지만 취재를 나선 피터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딸아이를 생각해 혼자라도 서울에 돌아가기로 다짐하며 다음 날 새벽, 서울로 향하기 위해 낯선 이방인 둘에게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식사를 내어준 광주의 택시운전사 태술(유해진 분)의 집을 몰래 빠져나온다.
그런 만섭을 뒤따라 온 태술은 혼자 남겨진 딸이 걱정되어 돌아가는 것을 다 이해한다며 이미 수배 대상이 된 '서울' 택시의 표지판 대신 '전남' 택시의 표지판을 건네주고, 서울로 가는 지름길을 알려준다. 피터가 건넸다는 10만 원을 받아 든 만섭의 심경은 복잡하다. 백미러에 비추는 광주의 거리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광주를 빠져나왔을 뿐인데 세상은 평안하고, 광주에서 목격한 참혹한 광경은 알려지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허무한 '루머'로 전락된다는 사실에 만섭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딸을 위해 순천 장에서 운동화와 구두를 사고 인심 좋은 주인장의 국수를 먹지만 쉽게 서울을 향해 갈 수가 없다. 만섭은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조금 늦겠다는 말을 하고 다시 광주를 향해 운전대를 잡는다.
최루탄이 뿌려진 매캐한 광주 거리에는 더 많은 시민들이 더 참혹한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만섭은 즉각 피터를 찾아 병원으로 가 피터를 데리고 다시 취재를 나간다. 군인들은 점점 '외국인 기자'와 '서울 택시 운전사'를 향한 수사망을 좁혀오지만 광주 시민들과 광주 택시운전사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피해 간다.
피터의 취재는 계속되고, 이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만섭은 항쟁에 참여하게 된다. 택시를 몰아 부상자를 옮기고, 부상자들과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택시로 가드를 만든다. 결코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이 폭력을 끝내기 위해 만섭은 피터를 태우고 다시 서울로 돌아갈 채비를 한다. 군부 정권의 만행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외신을 통해 광주의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었다. 광주를 나가는 길목에서 피터와 만섭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수사망을 좁혀 피터와 만섭을 집중 마크하던 군인은 끝까지 숨통을 조인다. 엎치락뒤치락 추격전이 펼쳐지고 이제 꼼짝없이 잡혀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찰나 만섭의 백미러에는 함께 부상자를 나르던 광주의 택시들이 떼를 지어 달려온다. 만섭의 차를 포위한 군인들의 차를 막아내기 위해 그들은 부상도 마다하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더 두려운 것은 암흑과도 같은 도시에서 혼자 살아남는 것이다. 정당한 시위가 '폭동'으로 전락하여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훨씬 무서운 일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사실을 알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막아내는 것, 피터의 필름에 기록된 무자비한 현실을 세상에 알려 광주의 내일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실낱같은 희망이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무사히 서울로 도착한 피터와 만섭은 바로 김포 공항으로 향하고, 피터는 비행기 시간을 당일에 바꿔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가 광주 사태를 전 세계에 알린다. 죽음을 무릅쓰고 함께 해준 택시 운전사이자 이제는 친구가 된 만섭의 이름과 번호를 묻지만 만섭은 라이터 성냥갑에 적힌 '사복'이라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준다. 피터의 기사로 광주의 상황은 '폭동'이 아닌 군부 정권의 만행이었음이 전 세계에 알려지고 역사는 광주 시민들의 승리로 이 사건을 기록하게 되었다.
상처를 돌아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더욱 쓰라릴 수도 있고 남아 있는 흉터에 내내 마음이 아플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처를 돌아보고 제대로 기록하는 일은 새살이 돋아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광주로 향하는 만섭의 택시를 통해 광주 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돌아보고, 피터의 카메라를 통해 민주화 항쟁의 역사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실제 광주 민주항쟁을 취재했던 기자와 그를 도왔던 택시 운전사 '김사복'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으로 더욱 큰 감동을 준다. 만섭의 백미러와 피터의 카메라가 덕에 '진실'을 기록하고 이를 알리는 데 있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엄청난 능력'이 아니라 주변을 제대로 돌아보는 마음과 이를 외면하지 않을 용기 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