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의 20세기> (2016) 리뷰
딱 1년만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겠다고, 1년 뒤에는 선택한 그 길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벌써 9월. 스스로 약속한 시간이 이제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지만 또렷해지기보다는 점차 희미해지는 느낌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돌다리를 몇 번이고 두드리고 길을 건넜는데 내 무게가 무거운 건지 두드림이 부족했던 건지 그 튼튼해 보이던 다리는 매 번 무너졌고, 새로움을 포장 삼아 화려하게 보이던 상자들은 여는 족족 알맹이가 없었다. 다리를 다시 세우고 빈 상자를 채워보았지만 여전히 난 서툴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들에 지치기 시작했다.
<우리의 20세기>를 보고 왔다. 이 영화의 원제는 <20세기의 여인들>(20th Century Women)로 2016년에 이미 개봉한 영화이다. 원제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이 영화는 20세기를 살아간 세 여인의 삶을 조명한다. 제목을 바꿔 개봉을 하는 것이 이 영화뿐은 아니며 제목을 바꾼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어떤 선택이 현명한 선택이었을까란 질문이 스멀 올라온다. 영화에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남성이 결코 주변부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없지만 20세기란 시대를 반영해 볼 때 세 여인의 삶이 도드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영화는 죽은 도로시아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데 현재와 미래가 묘하게 뒤엉켜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도로시아 필즈(24년생)는 불혹의 나이에 어렵게 얻은 늦둥이 아들 제이미를 키우며 셰어하우스를 운영한다. 아버지의 부재가 혹 사춘기 제이미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까 늘 불안하다. 누군가 '엄마'의 존재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어떤 부분을 제이미에게 채워주길 바란다. 전문성과 경제력을 갖춘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여성이지만 유독 제이미 앞에서는 늘 '서툰' 엄마가 된다.
애비 포터(55년생)는 자신의 소지품으로 작업하는 포토그래퍼이자 자궁경부암 환자다. 제이미를 록의 세계와 클럽 그리고 페미니즘에 입문시킨다. 머리색부터 옷차림까지 자유분방한 느낌이 물씬 들지만 자신의 생활을 사진으로 모두 남기며 성찰적 삶을 살아가는 소신 있는 인물이다. 한 집에 사는 윌리엄과 섹스를 하지만 마음까지는 섞지 않는다.
줄리 햄린(66년생)은 제이미의 오랜 친구다. 여러 남자와 섹스를 즐기며 스스로 '자기파괴적' 인물이라 말하지만 제이미의 침대에서는 그저 밤에 몰래 들어와 '잠'만 자고 아침이면 본인 집으로 돌아가는 알 수 없는 '우정'을 지속한다. 원하지 않는 임신, 선입견, 차별, 여성으로의 정체성 등 위태로운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어른들은 다소 당돌해 보이는 이 소녀를 어려워하거나, 소녀의 말을 못 들은 척한다.
세 여인은 각자의 소신대로 참 열심히 산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잣대가 아니라 그녀들 자체를 바라보면 세 여인 모두 당당하고 아름답고 매력 있다. 그녀들에게 이런저런 잣대가 드리워지는 건 바로 누군가와의 '관계'에 얽혀있을 때다. 그렇다. 역동적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여성'의 삶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으리라.
도로시아의 고민은 사춘기 아들 제이미와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도로시아는 제이미에게 좋은 친구이자 억압적이지 않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며 자신만으로는 제이미가 부족함을 느낄까 봐 제이미의 친구인 줄리와 셰어하우스에 사는 애비에게 '교육'을 부탁한다. 이렇다 할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던 제이미에게 엄마 도로시아의 행동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매일 아침 신문에서 도로시아의 주식을 읽어주는 것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그 둘의 관계는 이전과 같지 않다.
자신의 일상을 모두 사진으로 남기는 애비는 자신에게 죄책감과 불편함을 느끼는 엄마를 떠나 도로시아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다. 독립해 살면서 자신의 물건들을 하나씩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면서 애비는 비로소 애비다워진다. 줄리는 모두가 원하는 순응적인 삶이 지루하다. 못 이기는 척 엄마의 상담 교실에 나가고 쇼핑몰에서 앵무새 같이 판매 멘트를 날린다. 자기파괴적인 삶을 위해 많은 남자와 섹스를 하지만 무례한 상대를 만나 임신에 대한 공포 또한 경험한다. 오직 자신으로 설 수 있는 새로운 곳을 향해 늘 떠나고 싶어 한다. 제이미는 그 길을 함께 나설 수 있는 친구이지만 제이미에 대한 줄리의 마음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도로시아의 내레이션으로 우리는 그들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다섯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을 찾는다. 자궁경부암으로 임신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던 애비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윌리엄은 여전히 결혼에 안주하지 않고 연애를 한다. 구성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덕분에 중간중간 기억나는 부분이 많다. 매력적인 영화의 색감은 마치 복잡한 인생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예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만들어낼 수 있는 앙상블 말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서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도 분명 있다. 무언가 명쾌한 교훈이 있는 것도 아니고, 20세기의 미국 문화를 완벽히 공감할 수도 없었지만 분명한 건 그녀들의 삶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는 것, 그리고 서툰 내 발걸음에도 조금의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한 해가 익어가는 가을에 딱 어울릴 영화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