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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Oct 07. 2017

1인 가구 선언

미안하지만 엄마, 이젠 '혼자'가 더 편해요

드디어 기다리던 연휴가 시작되었다.


혼자 서울살이를 하는 나에게 진정한 연휴는 부모님 집, 친가, 외가를 모두 방문하고 서울로 돌아온 오늘부터다. 명절 연휴가 참 길었고 늦장을 부린다고 부렸지만 10월 2일 일찌감치 가서 전을 부치며 주방일을 거들 운명이었고, 오랜만에 집에 온 딸에게 계획한 음식을 모두 먹이겠다는 엄마의 야심 찬 계획에 동참하느라 아침 7시 반이면 식사를 시작해야 했다. 어찌 보면 화목한 가족이고 어찌 보면 자유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가족이다. 


딸을 모든 가족행사에 참석시키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서른을 앞에 둔 과년한 딸은 할 말도 없는 친척들을 만나 이틀을 내리 부대낄 자신이 없었다. 이번엔 완강한 부모님을 설득해 추석 당일날 할머니 댁을 방문하는 것으로 협상을 보았다. 가족들이 먼저 친가로 출발한 그 하루가 나에겐 얼마나 여유롭고 행복했는지! 친구를 만나 저녁까지 맥주를 마시며 잔뜩 신이 났었다. 연휴 중에 고향에서 가족 아닌 누군가를 만난 것은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고 이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워 그날 간 펍의 분위기와 한껏 들떠 주문한 헤벌리 화이트와 빅웨이브의 맛은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1인 가구 선언을 했다. 남들이 볼 때, 혼자 나와 타지 생활을 한 지 8년 차인 나의 1인 가구 선언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집'은 부모님이 계신, 유년의 기억이 축적된 그곳이라고 생각해왔던 내게는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이제부터 나의 집은 꼬박꼬박 월세와 공과금을 납부하는 7평 남짓의 내 공간이 될 것이다. 다소 비장한 나의 1인 가구 선언은 단지 부모님 집에서 보낸 5일의 불편함에서 비롯된 불평의 결과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살아갈 방향에 대한 일종의 '선택'이 될 것이다. 이제 부모님의 삶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나'의 삶을 존중받고 싶어졌다. 


내가 집에 가면 늘 엄마의 계획에 따라 하루를 보낸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과일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눈 뒤 씻고 들어가 잠을 자야 한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노트북을 두드리는 것도 부모님에게는 '쉬지 못하는' 혹은 '쓸데없이 피곤을 축적하는' 안타까운 딸의 모습일 뿐이라 무엇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내 방이었던 공간은 의료기와 잡동사니가 가득하고, 물건 하나를 찾으려면 엄마를 불러야 가능할 만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일단 집에 오면 쇼핑도, 외출도 엄마와 함께해야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면 엄마는 늘 함께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서운해했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보기, 드라마 보기를 엄마와 함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안일하는 엄마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엄마의 말동무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오랜만에 집에 온 딸과 함께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자유롭지 못한 일정은 너무 답답했다. 몇 번의 대화를 통해 자유의 범위는 확장되었지만 집에 올 때마다 드는 불편한 마음을 완전히 지우기는 어려웠다. 


1인 가구 선언은 타인에 대한 '이해'보다는 나의 것을 지키기 위한 '거절'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연휴에 집에 내려가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나'의 집을 청소하고, 지금 상황에 맞춰 내 일을 우선적으로 해결할 시간을 확보하고 싶다. 이번만 해도 그렇다. 중대한 인생 선택의 기로에서 '가족'과의 시간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었지만 가족의 서운함을 등질 수 없어 5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버리고 말았다. 어찌 보면 너무 이기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전혀 행복하지 않은 5일을 보내고 돌아와 왠지 모를 원망을 잔뜩 쏟아내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툭툭- 아빠의 일을 제외한 모든 일은 '쉽다'라고 생각하는 아빠에게 프리랜서란 이름으로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는 딸은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젊은이 중 한 명일 테고, 딸이 너무 그리웠던 엄마의 마음에 오자마자 서울에 갈 생각을 하고 하루 종일 노트북을 두들기려는 둘째 딸의 행동은 분명 상처가 될 것이다. 갓 태어난 딸에게 흠뻑 빠진 언니에게 난 조카를 그렇게 예뻐라 하면서 충분히 봐주지 않고 집에 와서까지 돈도 안 되는 일에 빠져있는 이해 불가능한 동생이 된다. 가족이 툭 던진 한마디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고 어깨가 무거워진다. 한집에서 얼굴을 보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진 내게 '함께'라는 무게를 장착한 가족의 가치관은 한없이 무겁고 부담스럽다. 부모님과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스스로 분리해내지 않으면 가족들을 만날 때마다 불편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 같아 이제는 마음속으로도 홀로 서기를 결심했다. 


떠나는 딸에게 이것저것 밑반찬을 챙겨주느라 분주한 엄마와 손에 든 짐이 무거울까 봐 역까지 차로 데려다주는 아빠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나의 편안함을 위해 가족을 등지는 배신자가 아닐까 싶어 마음 한편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역까지 따라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딸의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는 부모님을 보면서 굳이 1인 가구 선언을 하면서까지 '나'의 삶을 지키겠다는 다짐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연휴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 죄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1인 가구 선언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부모님의 제안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의보다는 거절이 조금 늘어날 것이고, 눈치를 보며 엄마의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시간이 적어지겠지만 가족에 대한 마음이 작아지거나 가족의 관계가 변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각을 글로 풀어내기까지 참 고민이 많았다. 



나는 가족을 사랑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것만큼 나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할 의무가 있다. 8년을 혼자 살면서 난 가족과 함께했던 삶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어 매우 피곤했다. 직업 특성상 새벽 3시, 4시까지 일하면서도 아침 7시 반이면 일어나 함께 식사를 하던 가족의 규칙을 버리지 못하고 7시 반에 기어코 눈을 뜨는 피곤한 삶을 이어갔고 야근 때문에 밤 11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면서도 어쩐지 통금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지난밤 열이 39도까지 올라 응급실을 다녀왔으면서도 청결하지 못한 집을 용납할 수 없어 다음날 걸레질을 하고 대청소를 했다. 야금야금 혼자 맥주 한 캔 마시는 것이 정말 행복했지만 누군가 술꾼이라고 타박을 줄 것만 같아 다 마신 맥주캔은 재활용 봉투에 꼭꼭 숨겼다. 20년간 길들여진 생활에 갇혀 난 좀 기형적인 삶을 살았고 이것이 나의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이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가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교육받으며 자랐기 때문이었다. 


서울 집에 돌아오자마자 환기를 시키고 냉장고에 사다 놓은 맥주를 한 캔 들이켰다. 건강에 좋지 않겠지만 맥주 안주로는 그만인 감자칩도 몇 개 집어 먹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느라 보지 못했던 드라마도 재생했다. 엄마에게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고 다시 드라마에 집중했다. 맥주 한 캔이 사라지자 마음이 가라앉으며 '집'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인 가구 선언의 시작으로 우선 다 마신 맥주캔을 치우지 않고 싱크대 위에 올려두었다.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새삼 작지만 편하고, 불편하지만 나만의 완벽한 하루를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나의 공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오늘부터 난 사랑하는 가족과 별개로 1인 가구가 되었다. 타인의 부탁이나 지난 20년을 지배하던 가족의 규칙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나'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이 삶이 정착되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더라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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