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크노크 Nov 21. 2017

영화가 만든 빛

영화 <빛나는> 후기

요즘 난 모든 것에 비뚫어져 있다.


별 것 아닌 일에 짜증이 나고, 여러 사회 제도에 불만이 생긴다. 지하철에서 날 엄청 세게 밀치고 지나가는 할아버지도 너그럽게 용서가 안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툭툭 - 나쁜 말을 건네고 후회한다. 하필 그럴 때 영화 <빛나는>을 봤다. 세상에. 마음이 버석한 상태여서 그런지 영화는 초반부터 내 숨통을 조여왔다.


특히 이 장면!



영화의 여주인공은 시각 장애우를 위해 영화 해설 대본을 쓰는 작가 미사코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말로 담아내는 연습을 평소에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길을 걸을 때도 해설을 해주는 것처럼 찬찬히 움직이는 것을 말로 옮긴다. 미사코가 해설을 맡은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한 노인의 이야기다.



서정적인 해설과 친절한 묘사를 위한 미사코의 노력을 시각 장애우들이 알아주는 듯 하지만 피드백은 생각보다 날카롭게 돌아온다. 그리고 아주 조금의 시력이 남아있는 나카무라의 한 마디는 미사코의 마음을 후벼 판다. 그리고 세상 불평을 모두 지고 있는 나의 숨통도 확 조여버린다.


'고맙다'로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단도직입적으로 '이대로라면 방해만 됩니다'라니! 나카무라는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미사코의 작업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괜히 미사코에게 이입해서 짜증이 확 솟구쳐 버렸다.



하지만 미사코는 미약하게나마 남은 시력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나카무라의 삶을 목격하면서, 함께 일하던 동료 사진가에게 '심장'과도 같은 카메라를 도둑맞아 온갖 허탈함을 느낀 채 집에 돌아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리고 한줄기 남은 빛마저 볼 수 없게 되는 나카무라의 짙은 절망을 함께하면서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영화를 해설하는 것에 대한 태도를 점차 바꿔나가게 된다.


그저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것, 그리고 영화를 따라 빛이 마음을 비추게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일임을 깨닫는다.



영화의 후반으로 가면서 꽉 조였던 숨통이 트이며 영화 속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을 캄캄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에게 전달하는 일에 대해 아주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미사코는 시력을 완벽하게 잃은 나카무라에게 나카무라가 찍었던 아름다운 석양이 있는 장소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나카무라는 그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았던, 자신의 심장과도 같은 카메라를 절벽 아래로 던져버린다. 그리고 어둠의 세계, 하지만 상상으로 여전히 빛날 수 있는 세계를 받아들인다.



영화는 미사코가 해설 대본을 쓴 영화가 시각 장애우들 앞에서 상영되는 것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누군가에게 마음의 빛을 되살려주는 그 과정 속에서 이런저런 불만으로 얼어있던 내 마음이 조금씩 녹는 느낌이 들었다. 비뚫어진 내 마음을 움직이는 데 빛을 활용한 특유한 영상미도 큰 몫을 해낸다.



후반부의 미사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부분,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작업해도 될까요?"


'본다'라고 해서 모든 것을 볼 수 없듯, '보이지 않는다'라고 해서 마음의 눈마저 어두운 것은 아니다. 세상이 너무 어둡게만 보이는 나와 같은 상태의 사람들에게 영화가 만드는 마음의 '빛'을 한층 더 빛나게 그려낸 영화 <빛나는>을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에 있어 제 3자가 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