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후기
인생에 있어 자신의 삶을 잘 헤아려 줄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얼마 전 서랍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편지 한 통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내가 널 모두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사이는 끝이 나버릴지도 몰라.
그런 긴장감이 우리가 친구로 14년을
함께하게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14년 지기의 생일에 쓰다만 편지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편지는커녕 밥 한 끼 먹지 못했던 지난 3월이 떠올랐다. 친구 관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비슷하지 않을까. 서로의 모든 것을 안다고 속단해 버리는 순간 영영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버릴 수도 있다. 배려를 위한 앎과 나의 편의를 위한 앎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여자들의 우정을 이보다 잘 표현한 영화가 있을까?
소설 <칠월과 안생>을 각색하여 영화 <첨밀밀>의 진가신 감독이 제작하고 영화 <도둑들>의 조니 역으로 출연했던 증국상 감독이 연출해 만든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모처럼 '친구'라는 단어에 대해, 그 존재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영화는 기꺼이 '운명'이라고 부르는 칠월과 안생의 우정을 각각 두 사람의 시점으로 그려내고 있다. 어느 한 편에 의해 감히 왜곡되지 않은 두 사람의 이야기는 관객의 진심을 건드리기 충분했다.
*칠월의 시점
평범하지만 화목한 과정에서 모범생으로 자란 칠월은 열세 살에 만난 친구 안생을 통해 세상을 항해한다. 위태롭지만 자유롭고, 야리야리하지만 강단 있는 안생은 칠월을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마음의 집으로 생각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바다를 항해하는 배와 항해를 마친 배가 정박할 수 있는 항구처럼 서로에게 꼭 맞는 존재로 성장한다. 칠월의 갈등은 안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없음을 깨닫고 시작된다.
칠월의 사랑, 가명이 안생에게 관심을 갖는 순간 그리고 가명에게 흔들리는 안생을 발견한 이후로 칠월과 안생의 우정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마침 클럽에서 만난 남자를 따라 다른 도시로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떠나는 안생을 칠월은 붙잡지 못한다. 헤어짐의 순간 안생의 목에서 발견한 가명의 목걸이는 안생을 잡지 못하고 떠나보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칠월의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안생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칠월은 안생의 위태롭고 불안한 삶과 다르게 하나하나 쌓아가는 안정적인 자신의 삶이 싫지 않다. 대학에 진학하고, 은행원이 되어 돈을 벌고, 가명과의 결혼까지 약속하게 된다.
가장 안정적인 순간 돌아온 안생이 반갑지만 그녀를 완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북경으로 간 가명이 안생과 재회하자 마음의 불안은 더욱 커지게 된다.
칠월은 고향으로 돌아온 가명과 결혼을 준비하지만, 결혼식 당일 가명은 사라져 돌아오지 않고 칠월은 안생이 그랬던 것처럼 넓은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며 자유를 만끽한다.
*안생의 시점
칠월의 마음에 방엔 안생으로 가득했고, 안생 또한 그랬다. 칠월이 마음 한편을 가명에게 내준 뒤로 안생은 더 이상 칠월에게 자신이 전부일 수 없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안생 또한 친구의 남자 가명에게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에 우정을 지킬 자신이 없어지고, 잃을 것이 칠월뿐인 안생은 고향을 떠나 세상을 떠돈다.
더러운 여관에 몸을 뉘이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노동을 하고, 모르는 이들과 섞여 술을 마시고 길에서 만난 남자를 따라 다음 목적지를 정하기도 하는 자유롭지만 결코 자유롭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이 모든 것에 지쳤을 무렵 안생은 마음의 집, 칠월에게 돌아간다.
안생은 칠월과 상해 여행을 떠나 어린 시절을 떠올리지만 칠월이 아직 안생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 아파한다. 너무 달라진 삶의 기반과 경제력에서 또 한 번 차이를 느끼고, 여전히 연적으로 자신을 경계하는 칠월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북경에서 약혼자가 죽은 뒤 갈 곳이 없어 머문 가명의 집에서 칠월과 마주하고 두 사람의 우정은 영영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말할 수 없는 비밀
두 사람의 연대기는 <칠월과 안생>이란 인터넷 소설로 연재된다. 작가명은 칠월로 칠월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가명은 상해의 한 지하철에서 우연히 재회한 안생에게 명함을 남기며 칠월의 소식을 묻지만 안생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가명과의 재회 이후 소설의 내용은 가명과의 결혼이 무산되고 자유롭게 세상을 다니면서, 안생의 삶을 경험한다는 칠월의 현재와 그런 칠월의 보금자리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안생의 현재를 기록한다.
하지만 안생의 영리한 딸 동동이 가명의 명함으로 연락을 하게 되면서 가명은 소설 속 내용이 다르고 동동이 자신과 칠월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소설의 작가가 칠월의 이름을 한 안생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안생은 칠월이 아이를 낳고 더 큰 세상으로 자유롭게 경험하고 있다고 가명에게 소식을 전하지만 칠월이 아이를 낳고 사망했다는 사실은 비밀로 남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가, 약함이 있다. 그마저도 끌어안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우리는 정말 성공한 삶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 채울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벌어진 틈을 메울 수 있는 마음이 있어 끈끈한 우정은 세월과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빛을 발할 수 있다.
칠월과 안생의 연대기를 보며 많은 생각이 스쳤다. 서랍에서 오래된 편지 꾸러미를 꺼내 다시 읽었다. 소소한 이야기부터 아직 오지도 않은 먼 미래에 대한 상상과 약속으로 가득 찬 편지가 마음을 간지럽혔다. 지난봄 부치지 못한 편지를 다시 써 보내야겠다. 평생 서로를 알 수 없음에 감사한 우리들의 우정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을 것 같은 여자들의 우정, 여자들마저도 의아해할 조금은 유별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매력 있는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였다. 연말이 되면 늘 떠오를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