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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Mar 30. 2018

봄과 죽음

할머니, 개나리꽃이 피면 소풍을 갈게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라고 했다. 작은 봉우리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꽃을 피워내고 이내 세상을 곱게 물들인다. 부산으로 출장을 간 친구 녀석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며 봄이 왔다고 했다.


지난 주는 내내 쌀쌀했고 날이 조금 푹해지자마자 미세먼지 때문에 봄기운을 느낄 수 없었는데 이제 정말 봄이 왔나 보다. 우스갯소리로 누군가 그랬다. 미세먼지 걱정을 하면 봄이 온 것이라고, 봄은 이미 왔다고.



지난달, 외할머니가 삶이란 소풍을 마치고 하늘나라에 갔다. 봄이 되면 외할머니와 볕 좋은 곳에서 가족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설 연휴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날은 추운 날씨가 계속되다가 오랜만에 푹한 날씨라 옷도 가벼웠고 마음도 가벼웠다. 괜히 들떠서 일찍 출근을 해 커피 한잔을 하며 하루를 준비하던 차였다. 진짜 출근시간이 되었을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만 했다.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았고 외할머니의 죽음이라는 사실만 전달되었다. 엄마는 장례식장이 정해지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었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분명 며칠 전만 해도 막내 손주가 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는 것 까지 보셔야 한다는 우리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할머니였다.


장례식장까지 가던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고속버스터미널을 가는 내내 울었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 범벅이었다. 버스를 타기 전 눈물을 닦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가 티슈를 샀다. 눈물이 계속 흘러 어느 순간 얼굴을 닦아내는 것도 잊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외할머니가 틀니를 넣어두던 황토색 호돌이컵이 생각났다. 안 본 지 꽤 오래된 물건인데 이가 조금 나간 그 컵의 모양이 어제 본 것처럼 그려졌다. 그리고 이내 할머니가 집에서 즐겨 입으시던 화려한 꽃무늬가 그려진 분홍 실크 반팔과 청소를 할 때 늘 둘렀던 하얀색 머릿수건이 둥둥 떠올랐다. 교회를 갈 때 들고 다니시던 검은색 가방, 어디든 차고 다니신 손목시계, 항상 걸고 계셨던 목걸이와 외출할 때 입으셨던 블라우스와 그 소매단을 고정하기 위한 은색 밴드가 떠올랐다.


그럴 리 없었다. 우리와 함께 살던 십여 년의 시간 동안 할머니가 돌아가실 거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세상 떠나갈 만큼 큰 목소리로 걸쭉하게 뱉어내는 욕설에 할머니는 평생을 저렇게 사실 거라고, 아마 우리보다 오래 사실 거라고 이야기하던 것이 생각났다. 치매로 5년을 넘게 치매요양센터에 계시면서도 한 손에는 늘 손수건을 들고 얼굴을 정리하고 늘 깔끔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리가 없다. 아이 예쁘다 하면 염색도 안 한 머리가 지저분하다며, 늙은 얼굴은 예쁘지 않다며 머리를 속 매만지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리가 없다. 계속 고개를 내저었지만 영정사진도 아직 준비되지 않은 장례식장에서 멍하니 앉아계신 엄마를 보며 조금씩 실감했다. 아... 이제 다시 할머니를 볼 수 없겠구나.


누군가의 죽음으로 내 일상이 멈췄던 건 스물두 살 증조할머니 죽음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도 봄이 오기 직전이었는데 수업을 듣다가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짐을 싸 시골에 내려갔었다. 이번엔 짐도 싸지 않고 그냥 회사에서 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부터 날 키워준 외할머니의 죽음은 모든 이성적인 사고를 멈추게 만들었다. 다시는 '엄마'를 부를 수 없게 된 나의 엄마가 걱정되었고 안쓰러웠다. 죽음이란 단어  앞에서 난 위로받을 수 있는 '엄마'가 있지만 우리 엄마는 이제 죽음 앞에서 위로받을 수 있는 엄마가 사라진 것이다.


장례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육체적인 피로는 둘째치고 고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지켜보는데 왜 이렇게 작고 또 작은지 괜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물리적으로 이렇게 작은 외할머니의 죽음이 우리에게는 큰 우주 하나를 잃은 것처럼 아프고 허했다. 눈물에 씻겨 삼일은 금세 지나갔다. 삼일장의 마지막 날 화장터에 가서 할머니 유골이 담긴 유골함을 장지까지 안고 갔는데, 유골함은 장지로 가는 내내 온기가 남아있었다. 장례 행렬은 할머니가 메뚜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던 논을 지나서, 개가 무섭다며 할머니 뒤로 숨는 나를 귀여워하며 업어주었던 언덕을 지나 햇볕이 가득한 장지에 멈춰 섰다.


아직 유골함에 온기가 남아있는데도 장례절차는 이어졌다. 모두 할머니를 위해 기도를 했고 다시는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깨달았다. 3일 내내 울고 제대로 먹지 않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었다.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배가 고팠다.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안 될 사람처럼 허기가 졌다. 가족 모두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도 오가기 시작했다. 날은 거짓말처럼 따듯했고  추운 겨울이 아예 끝난 것도 같았다.




외할머니는 화장을 했고 우린 그 자리에 나무를 심었다. 우린 매년 봄, 개나리꽃이 노랗게 올라올 때 할머니에게 소풍을 오겠노라 약속했다. 햇살이 가득한 그 자리에서 맛있는 도시락을 먹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할머니를 추억하기로 했다. 생명이 움트는 봄이 되니 할머니의 죽음이 여실히 느껴진다. 잊으려 애썼던 그리운 감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봄에는 사진을 찍으려 했었는데... 이별은 이렇게 늘 준비 없이 찾아온다.


외할머니 나무로 가는 소풍의 기획과 진행은 내 몫이 되었다. 마트에 가서 매년 사용할 두툼한 피크닉 매트를 구매해야겠다. 그 매트 위에 앉아 외할머니 사진을 모은 영상을 함께 보고 맛있는 김밥과 할머니가 좋아하던 치즈케이크를 나눠 먹으면서 퀴즈쇼를 해야지. 문제는 외할머니의 어록 중에서 골라야겠다. 문제를 맞히면 받을 수 있는 상품도 생각해뒀다. 청소할 때 머리에 두를 수 있는 하얀 머릿수건과 귀여운 손걸레다.


죽음을 마주했던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할머니, 개나리꽃이 피면 소풍을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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