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크노크 Apr 21. 2018

스타벅스에서 읽는
블루보틀 이야기

북저널리즘 <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를 읽고

마음 잡고 책을 읽어야지 싶어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집에서 나와 회사 옆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 냄새가 매장 가득하고 웅성웅성 소음은 적절히 분산되어 백색소음처럼 느껴진다. 원한다면 눈치 볼 필요 없이 오래 머물다 갈 수도 있다. 역시 스타벅스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 꽤나 완벽한 공간이다.


스타벅스란 브랜드에 입문한 건 2012년이었다. 특별한 기호 때문은 아니고 주옥같은 강의를 들려주시던 그분의 손에 늘 스타벅스 로고가 박힌 벤티 사이즈 종이컵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일종의 동경이랄까. 커피값이 부담되긴 했지만, 카페 안에서 편하게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할 수 있다는 매력에 빠져 2012년부터 지금까지 스타벅스의 골드 레벨 회원을 유지하고 있다.





여느 때처럼 사이렌 오더로 주문한 오늘의커피를 받아 구석자리에 앉았다. 책을 읽을 땐 구석자리가, 작업을 할 땐 콘센트가 달린 긴 테이블이 적절하다. 스타벅스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꺼내 든 책은 바로 북저널리즘 시리즈 중 하나인 <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였다. 스타벅스에서 읽는 블루보틀 이야기라니! 혼자 피식 웃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커피업계의 애플

첫 번째 챕터의 제목은 조금 진부한 표현 같지만 블루보틀을 모르는 사람도 블루보틀의 입지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만들 것 같은 '커피업계의 애플'이다. 실제 블루보틀의 창업자 프리먼은 2012년에 고객들이 애플스토어에서 누리는 경험을 블루보틀에 이식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13p) 먼저 마니아층을 사로잡아 그 가치를 인정받고 감성적인 브랜딩으로 고객을 매료시키는 것을 보면 커피업계의 애플이란 수식어는 매우 적절해 보인다. 기존과 다른 색다른 경험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았다는 점도 유사하다. 5분 안에 받아 들 수 있는 맥도날드의 햄버거나 스타벅스의 커피에 익숙해진 고객들은 10분가량 정성스럽게 핸드드립 한 스페셜티 커피를 내놓거나 라테 아트를 그려주는 블루보틀에서의 경험을 새롭게 느낄 수밖에 없다.



블루보틀 매장은 수익이 나기 어려운 구조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매장 규모가 작고, 커피를 제조하는 바리스타가 적어도 3명에서 4명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커피 한잔이 고객의 손에 전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저자가 언급한 대로 현재 7,000억 원의 가치 평가를 받은 블루보틀은 매장 하나 당 200억 원의 가치를 가지며 블루보틀의 2016년 매출은 약 9,400만 달러로 매장당 24억 원, 월평균 2억 원가량을 번다.


어떻게 이런 비효율적인 매장 운영 방식으로 높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까? 이 또한 애플의 전략과 비슷하다. 매장을 그저 카페로 보는 게 아니라 브랜드를 경험하는 쇼룸으로 여기기 때문이다.(54p) 가로수길에 국내 첫 애플스토어가 오픈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블루보틀의 매장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의 말을 빌려 블루보틀 매장을 설명하면 마치 연극 무대와 같다.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는 전문성을 갖춘 배우다. 블루보틀은 커피 바를 허리 높이 아래로 낮춰 바리스타, 고객, 커피라는 세 가지 요소가 주인공이 될 수 있게 만든다. 고객은 바리스타가 온도를 재고 커피를 내리는 등 정성을 다해 전문적으로 커피 한잔을 내놓는 과정에 집중하게 된다.


출처 : <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의 저자 양도영님의 브런치


바리스타의 공간은 마치 무대 세트처럼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다. 바리스타의 동선을 최적화한 디자인은 바리스타의 작업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아주 자연스럽게 고객의 경험 만족도를 높인다.



로스팅한 지 48시간 이내의

원두로 여덟 가지 메뉴만 판매

블루보틀이 창업 초기 반복적으로 내세운 문구다. 저자에 따르면 블루보틀이 확장되면서 로스팅한 지 4일 이내로 바뀌었지만 블루보틀 측에서는 이를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다소 제한된 듯 보이는 여덟 가지 메뉴를 고집하는 것 또한 메뉴 '엄선'의 느낌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스타벅스가 에스프레소 음료 외에 티바나, 프라푸치노 등 매 시즌 다양한 메뉴를 내놓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블루보틀은 우리에게 익숙한 아메리카노를 팔지 않는다.


드립 커피,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카페라테, 카페모카, 마키아토, 뉴올리언스 커피, 핫초코


고객은 이 여덟 가지 중에서 한 메뉴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매장 안에 아주 좋은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긴 하지만 에스프레소에 그저 물을 타서 주는 아메리카노는 판매하지 않는다. 모든 샷은 리스트레토로 제공하며 우유 음료를 주문하는 고객들은 바리스타의 라테아트를 즐길 수 있다. 또한 이 모든 메뉴는 동일한 사이즈의 컵에 제공된다. 적게는 두 가지 많게는 네 가지의 사이즈를 선택할 수 있는 여느 커피 브랜드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전략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내가 마시고 있는 커피잔의 사이즈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보통 스타벅스의 숏 사이즈를 선호한다. 작업량이 많아 3~4시간가량 매장에 머물던 시절에는 주로 그란데 사이즈나 벤티를 시켰지만 30분에서 1시간 정도 매장에 머물거나 테이크아웃을 많이 하는 요즘은 숏 사이즈가 가장 적당한 것 같다. 다양한 신메뉴를 도전하고 (물론 처절하게 실패도 하고) 즐기던 이전과 다르게 요즘은 리저브 매장이 아니면 늘 오늘의커피를 마시게 된다. 집 근처의 매장에서 유독 맛없는 에스프레소 음료를 경험했던 탓도 있지만, 이 메뉴가 어느 매장에 가든 가장 일관성 있는 맛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수의 커피 마니아가 먼저 그 가치를 알아본 블루보틀은 정말 '커피' 그 자체에 집중한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가 전 세계인 대다수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맛의 평균을 구현해냈다면, 블루보틀은 커피에 대한 애정과 조예가 깊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커피를 매장에서 경험하게 한다.


도쿄의 카페 '차테이 하토' (출처- instagram.com/@tarantaran)


저자는 이를 '장인정신'이라는 단어와 결부시켜 소개했는데, 실제 프리먼은 도쿄 시부야 지역의 오래된 카페 '차테이 하토'를 가리켜 "인생을 바꾸는 완벽함", "밍크코트의 사치를 마시는 것과 같다"라고 극찬하며 이곳에서 블루보틀 창업의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19p) 바리스타의 혼을 담아 서비스하는 일본의 카페는 흔히 '깃사텐'이라 불린다고 하는데 이는 일본의 다도 정신과 깊은 연관이 있고, 프리먼은 이 깃사텐 정신을 커피에 이식하면서 블루보틀의 철학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커피를 파는 블루보틀

너무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책의 소제목 '공간을 파는 스타벅스, 커피를 파는 블루보틀'을 읽고 생각해보면 마냥 당연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 내가 스타벅스에 온 이유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기보다 조금 더 집중해서 <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를 읽기 위해서였다. 가장 익숙한 자리를 찾고, 가장 익숙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공간에 돈을 지불했던 것이다. 실제 나는 자주 스타벅스에 드나들면서도 사람들을 만나면 '맛있는 커피'를 운운하며 유명한 스페셜티 커피를 찾아다닌다.


책에 언급된 것처럼 블루보틀은 커피를 판다. 그동안 '공간'과 함께 커피를 판매하던 기존 커피 브랜드와는 다르게 블루보틀은 '커피' 본연의 맛에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업계에서는 기존 커피 업계와는 다른 블루보틀의 행보를 '혁신'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스타트업의 핵심은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다기보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있다. 그런 면에서 블루보틀은 실리콘밸리에 있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의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사람들 가슴속 깊은 곳의 욕망을 몸소 실현하는 브랜드였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의 사랑을 받은 커피 브랜드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 물론 커피 맛도 좋고.


책을 읽기 전까지 난 블루보틀이 왜 유명한지도 몰랐고, 한국 사람들이 왜 블루보틀을 마시기 위해 일본까지 건너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크라프트지 위에 선명하게 그려진 터키 블루색의 블루보틀만을 떠올리면서 굉장히 인기 있는 브랜드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커피'를 파는 카페, 속도가 아닌 커피 본연의 맛과 향에 집중하는 브랜드 '블루보틀'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었다. 국내에 매장을 오픈하게 되면 꼬옥 가서 스페셜티 커피 한잔과 뉴올리언스 커피 한잔을 마셔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소비는 한 사람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가장 좋은 거울이다. 와이파이가 팡팡 잘 터지고 쾌적한 작업 공간이 필요했던 내게 스타벅스는 가장 완벽한 안식처였다. 근처에서 사이렌 오더로 미리 주문하면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커피를 받아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작업 시간이 길어져 추가 주문을 할 때도 굳이 다시 주문대로 달려갈 필요가 없어 좋았다. 커피 하나로 온전한 시간을 얻는 느낌이었달까. 갈수록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스타벅스 푸드에 실망하면서도, 종종 게거품을 문 스팀밀크가 라테에 올려있어 기분이 나쁘더라도 내 소비의 목적은 '커피'가 아니었기 때문에 점점 더 익숙해지는 이 '공간'을 사랑하며 아꼈던 것이 아닐까.


여전히 난 스타벅스가 좋다. 물론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종종 방문하는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들도 좋다. 세상이 변하는 것처럼 내 소비의 방식 또한 변하고 있다. 대학원을 다닐 땐 오전 수업이 있는 날엔 늘 맥도날드에 들러 맥모닝과 커피를 마셨지만 이젠 자주 가던 그 매장이 철수한다는 소식을 들어도 큰 아쉬움이 없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맥도날드에 갈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를 그만두고 다시 직장을 다니면서 스타벅스 이용률도 현저하게 줄었다. 전에는 거의 매일 갔는데 이젠 일주일에 2~3번 책을 읽거나 회의를 하기 위해 들른다. 맥도날드의 철수 소식은 아쉽지 않은 반면 맛있는 커피가 그리워 오랜만에 찾아간 카페가 사장님의 손목 관절염으로 며칠간 휴업을 한다는 알림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직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면 바쁜 아침을 빠르고 든든하게 챙겨줄 맥도날드가 무척 아쉬웠을 텐데, 지금은 종종 들러 커피 한잔에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장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자주 그곳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이건 아마 내 가치가, 내 소비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타벅스에서 읽은 블루보틀 이야기는 얼마 전 스타트업에 합류한 나에게 큰 영감이 되었다. 내가 아는 한 '새로운 것'만 추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기업보다는 기존의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애쓰며 작은 혁신을 이어가는 기업이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오래 살아남는다. 물론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프리먼이 커피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세상에서 인정받기까지 치열하게 반복한 '선택'과 '집중'의 과정을 엿볼 수 있어 행동할 용기를 조금은 얻은 것 같다. 커피 문외한이 보아도 어렵지 않게 서술되어 단숨에 읽어내렸지만 책장을 닫고 나서도 계속 사라지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다. 


난 앞으로 어떤 것을 소비하게 될까. 

난 앞으로 어떤 가치를 팔 수 있을까.



*이 책은 스리체어스의 북저널리즘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스리체어스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질문으로 돌아본 카카오스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