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언니가 결혼을 하다니!
언니가 갑자기 결혼을 한단다. 내년 1월 말에 결혼을 한다는데, 급작스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결혼 당사자인 본인도 어리둥절 우왕좌왕하는 것 같으니 당사자의 여동생인 내가 당황스러운 건 당연한 일이다. 언니와 난 연년생이다. 난 비록 응답하라 1988 속의 추억 여행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지만 덕선이와 보라의 드센 싸움에는 누구보다 격한 공감을 할 수 있는 자매 소유자다. 그것도 딱 한 살 차이 나는 연년생 자매.
언니는 나와 정말 아주 '사소한' 일로도 큰 싸움을 만들 수 있는 평생의 적이고, 같은 성장 환경 속에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사건건 부딪히는 철천지 원수다. 물론 같은 성장 환경을 가졌기 때문에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내 편이기도 하고, 평생 헤어질 일 없이 어딜 가든 함께 놀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겨우 한 살 차이. 언니가 동생을 돌보기엔 버겁고 동생이 언니를 따르기엔 애매한 나이 차이.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매의 관계는 언니, 동생보다 동갑내기 친구가 더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나에게 '결혼'은 너무 멀찌감치 떨어진 단어인데, 나와 겨우 한 살 차이가 나는 우리 언니가 벌써 시집을 간다니! 물론 형부 될 사람과 두 어번 식사도 함께 했고, 지난 추석 때 우리 가족과 형부 될 사람이 함께 등산을 가기도 했지만 이렇게 빨리 결혼을 하게 될지 몰랐다. 만난 지 1년도 안 돼서 뭐가 그리 급하다고 결혼을 서두르는지 알 수가 없지만 두 사람이 서로 좋아 얼른 결혼을 해야겠다니 가족들 모두 딱히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반대를 한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고, 반대를 하면 악착같이 그 결혼하고야 말겠다고 할까 봐 우리 모두 침묵했었다.) 일단 결혼 날짜가 정해지고 나니 당사자도 아닌 내가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언니가 결혼을 한다. 어쩐지 배신감도 드는 것 같다. 이렇게 빨리? 올 설도 같이 못 보낸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먹먹해지기도 한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읽었던 루이제 린저의 소설 <생의 한 가운데>는 인상적인 첫 구절로 날 사로잡았다. 누군가 묻는다면 그 구절을 술술 읊을 수도 있으니 나한테 꽤 마음에 드는 문장임이 틀림없다.
자매들은 서로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가 일쑤다.
<생의 한 가운데>는 여주인공 니나 붓슈만의 일생을 통해 사랑과 삶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탐구한 소설로, 젊은 작가 니나를 사랑한 20살 연상의 의사 슈타인의 일기체 형식이 주를 이룬다. 이야기는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슈타인이 자신의 일기장과 편지 한 장을 니나에게 보내면서 시작된다. 슈타인은 일기장에서 18년 간의 니나의 삶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는데, 니나의 변화에 따른 슈타인의 심경 변화가 잘 드러난다. 니나에 관한 일기는 곧 슈타인 자신의 생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의 기록과 굴곡의 세월을 통해 독자는 다시 한 번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은 굴곡진 삶의 표본인 니나 붓슈만의 사랑과 좌절을 니나의 언니 어조로 그려낸다. 니나 언니에게 니나는 어린 시절부터 가까이 하기 어려웠고, 신비로운 존재였다. 자신이 결혼을 하고, 집을 나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니나와 더욱 거리를 두게 되었는데 떨어져 있던 긴 시간만큼이나 니나가 어색하다. 한 부모의 밑에서 나고 자란 자매이지만 니나의 언니에게 니나의 삶은, 니나에게 니나 언니의 삶은 제 3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거리가 있다.
나는 우리 언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언니는 나와 정반대의 캐릭터다. 어려서부터 외향적이고 밖에 나가 뛰어 놀기를 좋아하던 나와 달리 언니는 내향적인 집순이였다. 언니는 여성스럽게 생겼고, 난 씩씩하게 생겼다. 작은집의 외삼촌이 늘 "큰 딸은 미스코리아, 둘째 딸은 권투선수시키면 좋겠다."고 장난을 칠 정도였으니 외모나 성격 모두 언니와 나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가 없었다.
언니는 공부를 잘했고 난 운동부를 한 번에 2개나 들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다. 언니는 그림을 잘 그렸고, 난 글을 쓰는데 흥미를 느꼈다. 사실 난 모든 것이 완벽한 우리 언니에게 너무 큰 열등감을 느꼈다.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말수도 적은데 늘 인기가 많았던 언니가 늘 부러웠다. 언니가 가진 것이 더 커 보였고 언니가 하는 행동이면 곧잘 따라 하곤 했다. 물론 똑똑했던 언니는 이런 나의 성향을 이용해하기 싫은 일을 함께 하게 만들었고, 처리하고 싶은 물건을 나에게 아주 쉽게 처리했다. 그걸 늘 알면서도 난 언니에게 설득당했고, 언니를 따라 했다.
언니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 보기 시작한 건 스무 살, 자율성을 찾겠다며 학원도 안 가고 집에서 재수 생활을 할 때였다. 언니는 스물한 살, 대학생이었다. 부모님의 권유로 사대에 간 언니는 나에게 숨이 막힐 정도의 모범생이었는데, 알고 보니 수업을 땡땡이치고 집에서 온라인 쇼핑을 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언니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구나 싶은 순간이 처음으로 찾아왔다.
야,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
라고 말하는 언니가 어찌나 친근하게 느껴지던지. 그 뒤로 내가 집을 떠나 대학생활, 대학원 생활,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계속 집에서 수험생활과 회사 생활을 이어가는 언니와는 방학이나 명절 때를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었다. 언니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친구들과는 어떤 대화를 주고받는지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내가 가진 여러 선입견으로 언니의 심경을 추측하곤 했다. 언니는 뭐 이렇겠지, 저렇겠지.
치열하게 싸우던 유년시절보다 너무 다른 삶의 길을 걸어가는 청년의 시절, 우리 자매는 더욱 멀어진 느낌이었다. 무슨 말만 하면 서로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로 악에 받쳐 치고받았던 어린 시절과 다르게 대화와 타협 그리고 시간에 걸쳐 쌓인 암묵적인 규칙에 따라 나름대로 평화롭게 만남을 지속하던 우리였다. 언니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기 시작한 지는 겨우 2년. 이제 겨우 언니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언니는 나와 통화를 하는 시간보다 신랑 될 사람과 만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서운하고, 늘 차갑게 보이던 언니가 저렇게 감정적인 사람이었나 싶어 종종 놀란다.
누군가를 완벽하게 '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데, 내가 남을 어떻게 완벽히 알 수 있을까. 가족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자소서(https://brunch.co.kr/@knockknock/19)를 읽고 엄마에 대해, 엄마의 삶 속에 기억된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처럼 우리는 실상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철저하게 타인이며, 내가 아닌 타인인 이상 그 누구도 섣불리 판단할 수가 없다.
난 언니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나만 언니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불쑥 나에게 큰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언니의 말에 충격을 받기도 했고, 우리 삼남매 중에 가장 똑똑한 언니가 '공부는 체질이 아니다'라며 고시 공부를 그만둘 때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용기가 없어 미술을 하고 싶던 꿈을 포기하고 부모님이 원하는 사대를 갔다는 언니의 숨은 진심도, 참하고 순하다는 대외적인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어린 시절 꾹꿈 참았던 숨은 욕망이 자신을 미치게 만들었다는 취중 고백도 나에게는 여전히 꿈 같이 느껴지는 걸 보면 나 또한 '언니'라는 역할에 부합하는 어떤 요소들을 은연중에 강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늘 나에게 어른인 척, '우리 아가'를 남발하던 언니(나는 언니보다 키가 13cm 크다)를 형부 될 사람은 '아가'라고 부른다. 오글거리는 게 딱 질색이라며 '사랑한다'는 말 한 번 해주지 않던 언니가 정말 아기처럼 형부 될 사람의 옆에서 편안하게 웃는 걸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물론 내 손발은 그들 앞에서 이미 사라졌다.) 누군가의 앞에서 언니는 '언니'가 아니라 언니 자신일 수 있다는 사실에 난 안도했고 그들의 결혼 결정을 축복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요 몇 년간 언니의 충격적인 발언들에 당황을 금치 못하던 엄마도, 아빠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자매의 관계는 정말 복잡 미묘하다.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일상이 유지되다가도 서로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어 충격을 받기도 한다. 미움과 증오와 열등감으로 서로의 머리채를 휘어잡다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잔뜩 주눅이 든 서로를 보면서 한참을 측은해하는 것이 자매다. 서로의 일기장을 그렇게 여러 번 훔쳐봤으면서도 서로가 원하는 것 하나 맞추지 못해 다시 언성을 높이는 것이 자매다. 서로 모든 것을 안다고 장담하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끼는 것이 자매다.
서로의 삶을 거울 삼아 함께 나이 들어 가는 것이 자매이며, 서로 다른 삶의 길에서 상황이 아니라 '감정'을 먼저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것이 자매이다. 결혼이라는 언니 인생의 2막을 앞두고 난 언니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간다. 어릴 땐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외동딸이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평생을 두고 알아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존재가 둘(언니와 남동생)이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니가 앞으로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늘 사랑받으며,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