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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Mar 05. 2016

게임성에 대한 성찰

갈라틱 카페 <스탠리 패러블>(2013) 플레이 하기

이것은 갈라틱 카페의 인터랙티브 픽션, 어드벤처 장르 게임 <스탠리 패러블(The Stanley Parable)>(2013)에 대한 게임 리뷰로, 게임에 대한 스포를 포함하고 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려고 했던 분들은 어서 온라인 게임 플랫폼 스팀으로 가서 구매 후 플레이를, 이 게임을  플레이할 마음이 없는 사람만 리뷰를 읽어주길 바란다.


인디 게임 분야에서 <스탠리 패러블>은 명성이 높다. 2011년 처음  발매되었을 때  게이머뿐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큰 호응을 얻어 2013년에 다시 정식  발매되었다. 정식 발매 후 <스탠리 패러블>은 유저들의 평가인 유저 스코어와 전문가 평가인 메타 스코어 두 분야에서 모두 높은 평점을 얻었다. 게임 관련 학술지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며 다양한 방식의 텍스트 분석이 이루어졌다. 아, 물론 학술지에서 다루어졌기 때문에 이 게임이 훌륭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다. 일단 재미있다. FPS류라 어지러움증 및 멀미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참아낼 만큼 흥미롭다.(물론 '재밌음' 또한 주관적인 평가다)    


<스탠리 패러블(The Stanley Parable)> 은 스탠리라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 즉 제목 그대로 스탠리 우화다. 우화(parable)라고 하면 이솝 우화가 먼저 떠오른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늘 교훈이 따라온다. '권선징악',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다',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 등의 메시지가 주로 동물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통해 전달된다. '인간'이 아닌 '동물'의 이야기라는 사실에 독자들은 거부감 없이 읽다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떠올린다. 스탠리 패러블은 게임 속 캐릭터인 '스탠리'의 경험을 통해 게이머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겨우  '게임'일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던 게이머들은  어느덧 '스탠리'가 되어 주체적으로 게임 공간을 탐험한다. <스탠리 패러블>은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각각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선택하는 순간 게이머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뒤바뀌는 '스탠리'의 모험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몰입의 순간은 게임과 현실의 경계를 확연하게 느끼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한다.


첫 번째 메시지, 자유 엔딩! 게임의 시작

게임 좀 한다는 사람들이 플레이하는 걸 보면 무척 신기하다. 어쩜 저렇게 솔루션을 잘 찾고, 인터페이스에 적응을 잘 하는지 help 버튼을 누르지 않고도 쓱 득점을 하거나 다음 레벨로 넘어가 버린다. 능숙한 게이머를 동경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부러운 능력이다. 처음 <스탠리 패러블>을  플레이할 때, 난 좀 의기양양했다. 친절한 내레이션이 내가 해야 할 행동, 가야 할 경로를 알려주었고 심지어 미션을 위해 방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까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쉬운 게임이었다. 내레이터가 일러주는 대로 게임을 플레이하자 20분 만에 게임은 엔딩을 맞았다. 하지만 엔딩은 아주 세게 나의 뒤통수를 때리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 게임 <스탠리 패러블>(2013) 자유엔딩

내레이션 즉 게임이 원하는 대로 플레이를 하면 '자유 엔딩'을 맞는다. 무조건 YES를 해서 나의 캐릭터 스탠리는 자유를 맞았지만 어쩐지 너무 허무하다. 개인 차가 있을 수 있지만 플레이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이 엔딩이 결코 이 게임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두 번째 메시지, 선택 엔딩! 게임에 익숙한 너에게

허무한 엔딩을 맞고, 다시 시작된 게임. 한 번 보았던 장면을 보고 같은 내레이션을 다시 듣고 있다 보니 클릭질을 주춤하게 된다. 너무 자연스럽게 내레이터의 말대로 들어갔던 왼쪽 문. 그리고 그 옆에 버젓하게 세워져 있는 오른쪽 문. 오른쪽 문을 클릭해보니 들어가진다. 내레이터의 말과 반대로 오른쪽으로 향한다.

이미지 출처 : <스탠리 패러블>(2013) 왼쪽 문과 오른쪽 문

처음부터 끝까지 남성 내레이터의 말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다 보면 남성 내레이터는 이성을 잃는다. 벨이 울리는 전화기를 받으라는 내레이션을 어길 때 비로소 남성 내레이터는 폭발하게 된다.


"이런 당신은 스탠리가 아니에요. 당신은 진짜 사람이군요.(중략) 제가 실수를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요. 이게 바로 왜 당신이 옳고 그른 선택들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예요. 제가 지금까지 당신을 게임 내에서 돌아다니도록 나뒀었다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만약 당신이 잘못된 선택을 계속한다면, 이걸 완전히 망쳤을지도 몰라요!(중략) 저는 게임을 잠시 멈추고 당신에게 현실 세계의 올바른 의사결정 과정을 교육하겠어요. 이 유익한 교육용 비디오를 시청해주세요."


자신이 '스탠리'라고 여겼던 게이머들은 남성 내레이터가 '당신은 스탠리가 아니에요. 당신은 진짜 사람이군요.'라고 하는 말에 자신이 스탠리가 아닌 현실 속의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남성 내레이터는 내레이션을 통해 이 세계는 자신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이를 통제하는 것도 자신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이 게임이 허구에 의해 형성된 하나의 세계임을 게이머들이 인식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된다. 사실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은 게임이 주는 정확한 미션을 해결하고 레벨업이라든가, 아이템 확보, 높은 랭킹 등 목표 달성에 따라오는 다양한 보상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스탠리 패러블>의 경우 게임에서 제시하는 1차원적인 미션을 무시하고 게이머 독자적인 행동을 발전시킬수록 '다른 엔딩'이라는 기존의 게임에서 볼 수 없는 보상(?)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기존 게임 패러다임에 익숙한 게이머들은 '기계적인' 혹은 '획일적인' 게임 패러다임과 자신들의 '기계적인' 플레이에 대해 생각하며 게임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게 된다.


세 번째 메시지, 박물관 엔딩! 게임성에 대한 성찰

게임에는 두 명의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게임 전반을 이끄는 남성 내레이터와 게임의 데모 버전과 박물관 엔딩에 등장하는 여성 내레이터다. 남성 내레이터는 게이머가 '스탠리'로서 게임 세계를 경험하도록 유도하는 게임 세계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여성 내레이터는 게이머, 게임 세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게임 시스템 전반을 기획하는 게임 기획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여성 내레이터는 차분하게 게임 시스템 전반에 대해 설명하고, 박물관 엔딩을 통해 <스탠리 패러블>이라는 게임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이미지 출처 : <스탠리 패러블>(2013) 게임공간의 구조도

박물관 엔딩은 정말 박물관처럼 <스탠리 패러블>에 관한 모든 것이 모여있는 박물관이 등장한다. 스탠리가 누비던 회사 건물의 구조도 뿐만 아니라 스탠리가 '선택'을 통해 맞았던 다양한 엔딩들 그리고 이 엔딩과 공간을 만들고 구성한 게임기획자들의 크레딧까지 벽면에 제시하면서 <스탠리 패러블> 게임에 관한 모든 것을 제작자의 관점에서 보여준다.

이미지 출처 : <스탠리 패러블>(2013) 게임을 만든 이들에 대한 크레딧

<스탠리 패러블>은 하나의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게이머가 '캐릭터', '게이머' 그리고 '기획자'의 관점까지 아우르며 게임 플레이에만 급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게임 전반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치밀한 장치를 마련해둔다. 몰입하고 그 몰입을 통해 게임에 대한 충성도를 높였던 기존의 게임과 달리 <스탠리 패러블>은 게임 세계와 그 세계에 몰입하게 만들기 위해 감춰둔 장치들을 교묘하게 드러냄으로써 '게임' 그 자체에 관한 성찰을 유도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스탠리 패러블>은 불편한 게임이다. 생각해야 하는 게임이고 그 생각의 과정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 즉 게임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의미마저 흔들어 버리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사실 게이머는 성취감 때문에, 재미 때문에 게임을 플레이한다. 자연히 게임 세계에 몰입할수록 성취감과 만족감은 커지고, 재미 또한 배가 된다. 하지만 <스탠리 패러블>은 몰입할수록 성취감과 만족감은 사라지고, 빠르고 단조로운 엔딩으로 재미 또한 감소한다. 오히려 게임이 가지는 기존 패러다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불편하긴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함으로써 '게임'이라는 행위 그리고 게임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유연한 사고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다소 어려운 게임이었지만, 게임성 자체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스토리 체험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게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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