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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Apr 15. 2016

지금 나는 누구인가

아사이 료의 소설 <누구>를 읽고

책 한 권 읽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책 한 권 읽는다고 마음이 동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마음이 어지러울 땐 소설보다 실용서를 읽는 편인데, 며칠 전엔 만날 때마다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분의 추천으로 아사이 료의 소설 <누구>를 읽게 되었다. 가볍게 읽기 시작한 <누구>는 그 어떤 실용서보다 일목요연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자기합리화로 점철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 '아픈 책' 이어서 적지 않게 당황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땐, 정말 맥주를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고, 맥주 한 병을 비우고도 쉬이 취할 수 없게 만들었다. 



<누구>는 마치 '취준'의 고통을 공감하게 하는 청춘소설의 하나인 것처럼 시작한다. 젊은 작가(1989년생)의 감각 때문인지 등장인물은 트위터 형태로 소개되는데, 140자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소개는 캐릭터를 잘 설명한다. 소설엔 화자인 다쿠토, 그의 룸메이트 고타로, 고타로의 구 여자 친구이자 다쿠토가 짝사랑한 미즈키, 그리고 미즈키의 취준 메이트 리카, 리카의 동거남 다카요시가 주로 등장한다. 다쿠토는 연극을 고타로는 밴드를 한다. 미즈키는 해외 인턴 경험이 있고, 리카 또한 해외 유학 경험과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등장인물은 모두 트위터를 하고,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상황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지 출처 : blog.socialmkt.co.kr

다쿠토, 고타로가 함께 사는 집의 위층엔 아주 우연히 미즈키의 친구 리카가 남자친구 다카요시와 함께 살고 있다. 이를 알게 된 다섯 명은 함께 모여 취업스터디를 하게 된다. 서로 자소서를 봐주거나, 취업 정보를 공유하고 취준의 스트레스를 맥주와 함께 풀기도 한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소설의 주인공들에게도 취업은 한양에서 김서방 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해외 인턴을 다녀온 미즈키나 리카에게도 어렵고, 취업에는 전혀 관심 없는 듯 행동하는 다카요시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취준 기간이 얼마나 예민하고 날카로운 때인지, 준비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들려오는 친구의 합격 소식도 마음껏 축하해주지 못할 만큼 마음은 작아지고, 자존감은 바닥을 드러내 아주 작은 말에도 크게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이미지 출처 : chunchu.yonsei.ac.kr

같은 처지에 놓인 다섯 사람은 누구보다 깊이 서로의 아픔을 공감하지만, 누구 하나 서로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이해할 겨를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 자신이 쌓아온 것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전전긍긍하며 버텨갈 뿐이다. 리카는 계속 취준 생활을 하며 이루어 나가는 것들, 이루고 싶은 것들을 야무지게 트위터에 올리고, 다카요시는 여전히 취업에는 관심이 없는 듯 아르바이트로 하는 전시 일에 몰두하는 듯 트윗 글을 작성한다. 화자인 다쿠토는 극단 이야기를, 고타로는 일상이나 밴드 이야기를 올린다. 미즈키는 트위터로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친구들과의 연락의 매개로 활용한다. 이렇게 에피소드 중간에 등장인물들의 트위터 내용이 공개되고, 트위터의 내용을 통해 독자는 캐릭터의 성격을 조금씩 파악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 iropke.com

개인적으로 거슬렸던 캐릭터는 다름 아닌 리카였다. 어쩐지 허영이 가득한 것 같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기 보다 본질엔 다가서지 못하고, 주변을 겉돌며 '노력'만 하는 모습이 지난날 혹은 지금의 나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화자인 다쿠토 또한 비슷한 생각을 펼쳐낸다. 고타로는 좋은 녀석인 것 같았다. 적당히 위트 있고, 소신 있고 진정성이 있는... 여러모로 매력이 있는 캐릭터였다. 미즈키는 소심한 듯 하지만 소신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과 그것을 얻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듯했다. 가만히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싶을 만큼 말이다. 리카의 남자친구인 다카요시는 전형적으로 이중적인 인물이다. 겉으로는 취업에 전혀 관심 없는 척 하지만 뒤에서는 그 누구보다 열심인 것이다. 다쿠토는 다카요시의 이중적인 모습을 다카요시가 운영하는 두 개의 트위터 계정을 찾아내면서 목격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 www.boannews.com

소설의 후반, 내가 소설 속 캐릭터의 성향에 대해 왈가왈부 이런저런 평가들을 늘어놓는 것 같이 다쿠토가 함께 모여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에 대해 내리는 평도 날카로워진다. 연극의 시나리오를 쓰는 다쿠토는 특유의 냉철함과 인간의 감성을 활용한 140자의 작은 아트웍을 늘어놓게 된다. 본인이 손가락질했던 다카요시의 두 계정처럼 하나의 또 다른 계정을 통해 함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는 친구들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을 늘어놓게 된 것이다. 친구들은 함께 쓴 컴퓨터의 검색 기록을 통해, 다쿠토의 이메일 주소 검색을 통해 이런 다쿠토의 행보를 눈치채고 있지만 애써 모른 척한다. 오직 리카만이 이런 다쿠토의 이중적인 모습을 속 시원하게 비판하는데, 한껏 다쿠토가 되어 소설 속 캐릭터들에 대해 평을 내리던 나에게 리카의 비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꽂히게 된다. 

이미지 출처 : photoflake.deviantart.com

익명성과 휘발력이 적절하게 가미된 SNS의 공간은 '나'를 꺼내 놓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여기서 '나'는 정말 '나' 일수도 있지만, 내가 되고 싶었던 나의 워너비 일수도 있고, '나'로서는 결코 되지 못할 완전한 타인일 수도 있다. 내가 브런치에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 글을 쓰는 것 또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보았을 때, 의외라고 느낄 수 있는 내 모습이 발견되는 것이 싫고, 브런치라는 공간이 그만큼 현실의 나보다 훨씬 솔직하고 과감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아사이 료의 소설 <누구>는 생각할만한 여지를 (아주) 많이 남긴다. 익명의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다만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끊임없이 평가와 비판을 이어가는 것에 대한 생각은 반드시 필요하다. 마치 SNS란 바다 한 가운데에 놓인 우리에게 혹시 모를 침수에 대비할 구명조끼 같은 것이라고 봐도 좋겠다. 친구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업데이트되는 사진들로, 글로 친구를 판단하고 평가한 적은 없었는지,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어떤 글이나 사진을 올린 적은 없는지. 잘잘못을 떠나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아니면 그저 아사이 료의 소설 <누구>를 한 번 읽어보는 게 좋겠다. 다쿠토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SNS란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를 읽고 내가 브런치에 쓴 글, 트위터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봤다. 다행스럽게도 양심에 찔릴만한 글은 없었으나 내가 아는 누군가는 그 글을 발견하지 않았으면 싶은 글은 있었다. 부끄러운 과거지사 이기도 하고,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종종 지인이 치밀한 관찰력을 발휘하여 브런치의 내 계정을 찾아내고, 나의 글들을 읽었노라 이야기하면 난 한없이 작아지곤 한다. 누군가를 평가하고 있어서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나의 솔직한 마음이, 아직은 잘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이 '나'라는 이미지를 서로 다르게 가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설지 그 반응이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씩 용기를 내는 중이고, 조금씩 더 자유롭게 표현을 하는 중이다. <누구>는 그 성장의 과정에서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할, 그리고 내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논점들을 던져주는 좋은 텍스트였고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조금은 '아픈' 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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