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크노크 Apr 26. 2016

디바와 함께 춤을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아디오스 공연 (2016)

디바(Diva)는 본래 '여신'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일반적으로는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난 여가수를 일컫는다. 처음에는 오페라에서 실력 있는 소프라노 여가수를 디바라 불렀으나 그 의미는 점점 확장되어 대중가요에서도 정상에 선 여가수를 일컬어 디바라고 칭한다.


2016년 3월 1일,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Buena Vista Social Club 이하  BVSC)이 내한했다. 정확히 말하면 오르케스타(Orquesta)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다. 오르케스타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은 90년대 원년 멤버가 세상을 떠나고 남은 멤버들이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을 통해 BVSC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생존한 원년 멤버는 기타의 엘리아데스 오초아와 보컬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있는데 이번 내한에는 보컬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함께 했다. 그렇게 난 아디오스(adios작별) 공연을 위해 내한한 쿠바의 '디바'를 만나게 되었다.

2016 ORQUESTA BUENAVISTA SOCIAL CLUB ADIOS TOUR 포스터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2012년 봄이었다. 다큐멘터리에 관련된 수업을 들으면서 접한 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1999)은 솔직히 좀 지루했다. 젊고 생동감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극적인 이야기나 극적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한 가지 내용을 임팩트 있게 다루는 여타 다큐멘터리들에 비해 호감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다큐멘터리의 큰 내용은 혁명 이후, 쿠바의 음악이 잊힐 무렵 미국의 프로듀서 '라이 쿠더'가 뿔뿔이 흩어진 실력 있는 쿠바 뮤지션들을 찾아 모으는 내용이었다.


타국에 대해서는 '좋은 것'만 보고 들으며 환상만 키우던 나이였다. 쿠바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더욱이 쿠바의 음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가 한눈에 들어오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하게 기억나는 건, BVSC 멤버들이 음악이 일상인 듯, 일상이 음악인 듯 살아가던 모습이었다.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흩어졌던 이들이 모여들고, 음악이라는 하나의 매개로 열정 가득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한참 꿈에 대해 고민할 나이였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나이였다. 평생의 '나'를 '나'일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찾은 BVSC의 나이 든 멤버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작년 여름부터 내한 공연 소식을 듣자마자 표를 예매했던 건 어쩌면 일상이라는 방패 안에서 하루하루 안식해가는 삶에 대한 일탈적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음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던 나마저 어깨를 들썩이며 멤버들 간의 유대감에 젖어들게 만드는 그런 마법 같은 매력에 다시 한 번 취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만다린의 팽팽한 연주가 한여름 축 늘어진 엿가락 같던 마음을 잡아주었고, 생동감 있는 피아노 연주가 굳어있던 심장을 마사지해주었다. 그리고 원년 멤버인 보컬, 오마라 포르투온도의 등장은 저 높은 곳부터 쏟아지는 폭포수 같이 시원한 느낌을 발산해냈다. 그런 그녀를 보고 난 아주 식상하게도 하지만 아주 적절하게도 '디바!'라는 단어 하나만 떠올랐다.


우선 압도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가 나의 귀를 사로잡았다. 잠시 노래를 멈추는 것도, 마이크를 떼는 것도 이미 준비한 동작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런 그녀의 말 한 마디, 손동작 하나에 사로잡힌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의 외침에 따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손을 높이 올리고 박자에 맞춰 박수를 쳤다. 치명적인 박자 치인 나에게 박수는 점점 고난도 박자를 향해 갔지만, 엇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즐겁게 어깨를 들썩거리고 엉덩이를 살랑거렸다. 몇몇 노래는 아는 노래라 따라 부르기도 했다. 디바가 내뱉는 언어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풍부한 표정과 손짓만으로도 공연장 안의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 같았다. 


세월이라는 게 그렇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꾼다. 그리고 그 세월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절대 앗아갈 수 없는 하나의 가치를 남긴다. 비와 바람에 씻기고 씻기는 돌은 절대 변할 수 없는 돌이라는 속성 위에 바람의 숨결과 비의 발자국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세월 앞에서 '나'의 소중한 가치 하나만 남기고 세월의 주름을 담아낼 수 있다면 강가의 돌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 되지 않을까? 음악이라는 '매개'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인생'을 만난 그들의 공연을 보며, 난 내내 마음이 설렜다. 


10년 뒤, 50년 뒤 내게 남아 있는 건 무엇일까? 음악이라는 인생의 정상에 선 디바와 함께 춤을 추던 3월의 그 날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나는 누구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