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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May 10. 2016

새벽에 걸려온 전화

그래도 괜찮아, 너여서 괜찮아

그런 날이 있다. 별로 피곤한 일도 없었는데 퇴근하기가 무섭게 피로가 몰려오는 날. 씻기가 귀찮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옷도 벗지 않고 선잠이 들어버리는 날. 며칠 전의 내가 그랬다. 회사 사람들과 어울려 저녁 먹고 차를 마시며 노닥거리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9시. 씻기는 커녕 옷을 벗는 것도 귀찮아 침대에 그대로 누워 스마트폰을 켜고 밀린 웹툰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침대 옆 테이블에 아슬하게 걸쳐 있던 스마트폰이 평소보다 더 크게 울렸다. 십이년지기 친구의 전화였다. 아직 손목에 걸쳐있는 손목시계를 보니 시간은 새벽 한 시를 조금 넘어 있었다. 내가 평소에 일찍 잠든다는 것을 아는 녀석이 이 시간에 전화를 한 걸 보면 분명 '술을 마셨군' 싶었다. 받지 않으려다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흐르는 잠깐의 정적. 친구는 나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고는.


나 오늘 넘어졌어. 근데 그게 너무 서러워.


이 한 마디를 한 뒤 꺼억꺼억 서럽게 울었다.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친구는 정말 꺼억꺼억 울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 정장치마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고 강남 한복판에서 넘어졌다는 친구는 한참을 그렇게 울기만 했다. 친구의 울음에 잠이 달아난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수화기 너머로 친구는 꺼억꺼억 울다가 침묵한다. 그리고는 다시 훌쩍이며 코를 푼다. 그토록 작은 체구에 저렇게 많은 눈물이 있었는지 놀랄 만큼 오래 그리고 크게 울었다. 나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친구의 울음소리만 계속 들었다. 좀 진정이 된 친구가 오늘 일어난 일을 거친 숨과 함께 내뱉는다. 외근을 나갔다가 계열사 임원에게 한 소리를 들었던 모양이다. 또다시 터진 친구의 울음 때문에 정확한 정황은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 서러움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신입사원. 생각지도 못한 과중한 업무 때문에 지난 한 달을 내내 후달린다고 걱정했었던, 다소 거친 상사의 말투가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다며 울먹였었던 그녀와의 지난 통화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오늘은 그저 넘어지기만 했는데, 그것도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혼자 넘어지기만 했는데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고 했다. 아니 넘어졌는데 옆에 상사가 있어서 창피하고, 창피해서 울지도 못했던 그 순간이 떠올라 서럽다고 했다. '서럽다'는 단어만 내뱉어도 서러운지 친구는 자꾸만 울음을 터뜨렸다. 시간은 벌써 새벽 2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초저녁에 내리 잔 덕분일까. 피곤하지 않았다. 멀리 살지 않았더라면 달려가 손이라도 잡아줬을 텐데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친구와의 전화를 끊고 화장을 지우고, 세수를 하면서 3년 전 내 모습이 떠올라 생각이 많아졌다. 연희동에 살던 10월의 어느 날 밤, 동네 뒷산에서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뉴스 속보를 보고 연희동의 언덕을 오르며 괜히 서럽고 무서워 집으로 가자마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을 울기만 했던 그 날의 나를 이 친구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받아줬었다. 하루 종일 집요하게 시달리다가, 그 하루의 시달림에 응축된 지난날의 서러움이 더해져 작은 일 하나에도 울음이 터져버리는 그런 날.

아무것도 아닌 일로 전화를 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 울기만 해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잠을 방해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울음을 그치지 못하던 나에게 친구는 '괜찮다고, 너니깐 괜찮다고'를 몇 번이고 말해주었다. 통화의 말미,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지 아무 일도 아닌데, 괜히 서러워서 이렇게나 오래 울었다고, 내일 출근해야 할 너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도 '괜찮다고, 너니깐 괜찮다고.'를 여러 번 말해 주었다. 서러움이 폭발해 새벽을 내리 울어도 괜찮다고. 더 크게 울고 또 울어도 괜찮다고. 새로 조명을 달고 인테리어를 했다는 그 방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울고 있을 친구가 떠올라 나도 눈물이 났다. 함께 교복을 입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자꾸만 떠올라 잠이 오질 않았다. 제대로 된 위로 한 번 주고받은 적이 없지만 지금까지 서로의 곁을 잘 지켜온 우리의 관계가 새삼 고마웠다.


새벽에 전화 한 통 걸어 세상이 떠나가게 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든든해졌다. 시시콜콜 아주 작은 이야기까지 나누는 수많은 통화들 가운데 하루쯤은 '말'이 아닌 '눈물'이어도 아무 상관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날 무릎에는 멍이 들고, 두 눈은 팅팅 부어 출근을 했다는 친구의 카톡을 확인하며 ㅋㅋㅋㅋㅋㅋㅋㅋ를 남발하고 박장대소하는 이모티콘을 보냈지만 마음 속으로는 친구 마음에 들었던 멍이 어젯밤 눈물에 씻겨 없어졌길 기도해본다. 언제 오징어내장탕에 소주 한잔을 할 거냐고 바쁜 척하지 말라고 친구를 닦달하면서도 난 친구가 먼저 소주 한잔 기울이자고 말할 여유가 생기길 기다린다. 이렇게 서툰 위로들이 모여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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