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타인의 시간을 빚지고 산다
드디어 선풍기가 배송되었다. 예전에 살던 집은 에어컨이 포함된 풀옵션 원룸이라 선풍기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사 온 집은 냉장고, 세탁기부터 선풍기까지 내가 장만해야 했다. 덥다, 덥다 노래를 불렀더니 언니가 생일 선물로 선풍기를 사줬다.
택배 받을 사람이 없어 고민했지만, 몇 번 인사를 나눈 옆집 할머니께 부탁했더니 흔쾌히 택배를 받아주셨다. 집에 들어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상자를 열어 선풍기를 조립했다. 본래 기계치인데다, 기계치란 핑계로 이런저런 일을 다 남에게 미루느라 선풍기 조립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주 쉽게 조립할 수 있다고 설명서에도 적혀 있었지만,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크게 두 번을 호흡하고 선풍기 조립을 시작했다. 먼저 선풍기 몸체를 바닥 지지대에 세웠다. 다음으로는 날개를 조립하고, 뚜껑을 덮었다. 뚜껑을 덮는 과정에서 후크의 나사를 풀어야 하는데, 드라이버가 없어 고민하다가 가위를 들어 모서리로 나사를 풀었다. 별 일도 아닌데 괜히 뿌듯했다.
날이 별로 덥지 않았는데, 선풍기를 조립한다고 꽤 긴장한 탓인지 땀이 낫다. 서둘러 씻고 나와 선풍기를 틀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잔을 꺼내 마셨다. 맥주 때문일까. 순간 마음이 이상해졌다. 혼자만의 방에서 혼자 선풍기를 조립하고 혼자 마시는 맥주라니.
누구나 타인의 시간을 빚지고 산다. 잘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를 따라 몇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먼저 대학 시절, 노트북이 고장 났을 때마다 포맷을 해주던 한 선배가 떠올랐다. 본인 핸드폰 액정 보호필름을 붙이는데, 필름이 남았다며 내 액정 보호필름도 주기적으로 바꿔주던 동기 녀석이, 혼자 추운데 고생한다며 본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홍보 전단을 함께 붙여준 과방 죽돌이 선배들이 생각났다.
고맙다는 내 말에 ‘심심해서 해 준거야.’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오히려 일을 시킨 나에게 떡볶이며, 순대를 사주던 그들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정말 심심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들은 소문난 잉여였다. 과방에 앉아 이런저런 선배, 후배, 동기들의 일에 참견하다가 저녁 어스름에 술을 마시러 가는 대표적인 잉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내게 값진 시간을 내어준 것이었다.
언제나 바빴던 나는 그들의 시간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잉여들이 우르르 군대니, 인턴이니, 워킹 홀리데이니 학교를 휴학해 버리자 멈춰버린 내 컴퓨터는 내가 포맷해야 했다. 제대로 듣지도 않는 나에게 선배가 친절하게 이런저런 설명을 했던 덕에 그나마 감을 잡고 한참을 걸려 혼자 포맷에 성공했었다.
예전에 액정 필름을 갈아주던 동기 녀석이 어찌나 잘난 척하며 팁을 줬는지 그가 떠나고 나서도 난 액정 보호필름을 제법 깔끔하게 잘 붙이게 되었다. 학부 시절, 선배들과 붙이던 몇십 장의 전단지 덕에 대학원 막내 시절, 혼자 수백 장의 공연 홍보 전단을 붙이는 것이 덜 외롭게 느껴졌다. 물론 선배들이 전수해준 깨알 요령도 삶의 재산이 되었다. 그들에게 빚진 시간 덕에 난 좀 더 생활력 있고, 요령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늘 바쁘고 쉴 틈이 없는 사람이어서 친구들에게 시간을 내주기가 참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은 날 위해 자신의 시간을 선뜻 내줬다. 아프다는 날 위해 기차를 타고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와서 토닥여주었고, 새벽에 전화를 걸어 내내 울기만 하는 나를 이해해줬다. 늘 말없이 고민을 들어주던 선배는 새벽 막차를 탔다가 엉뚱한 곳에 내려 무서움에 떠는 날 위해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와 그 어두운 시간을 함께 보내주었다.
선풍기 바람을 타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내가 아플 때 밤새워 간호해 준 엄마, 툴툴 거리면서도 미술 숙제를 도와주고, 이런저런 공부를 가르쳐주던 언니, 누나를 위해 귀찮은 기색 없이 매일 함께 운동장을 돌아주던 착한 동생. 생계를 위해 긴 시간 인내하며 노동해야 했던 아빠까지. 가족들에게 진 시간의 빚은 매순간마다 눈덩이 같이 이자가 불어난다.
나는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먹고 자랐다. 누워서 울고 먹고 싸기밖에 하지 않았던 나는 부모님의 시간을 먹고 한참을 자랐다. 기다리는 것이 스승의 일이라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기다려줬던 선생님 덕에 배움에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힘들 때, 우울의 늪에서 헤엄치던 나를 지켜봐주던 친구들과 내가 만들어 내는 서툰 글을 꼼꼼하게 읽어주며 매력을 발견해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지인들 덕에 지금의 밝은 내가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이 내게 준 것은 팔 할이 시간이었다. 어른이 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들이 내어준 시간이 엄청난 것임을 깨닫는다. 나는 바쁜 척 그들의 고민 한 번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들은 나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 시간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부족함으로 가득한 내가 스스로 채워갈 수 있게 기다려주었다. 본인들이 지내온 시간들을 아낌없이 동강 내어 나의 삶에 부어주기도 했다. 쉽게 성장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는 날 위해 그들은 긴 시간을 들여 축적한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나누어주기도 했다.
시간을 빚진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대충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를 위해 많은 이들이 내준 시간 때문이다. 여전히 부족한 내가 자존감은 반드시 지켜야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는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알려주려 친구들이, 선생님들이, 가족들이 내게 퍼준 위로의 시간 때문이다.
이렇게 나는 당신의 시간을 먹고 자랐다. 갑자기 시간이 재화로 철저하게 환산되는 설정의 영화 <인타임>이 떠오른다. 지금 자판을 누르고 있는 1초의 시간마저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되는 세상을 생각하니 갑자기 숨이 막힌다. 그래서 더욱 그들이 내게 준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사실 자신이 빚진 시간들을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여전히 바쁘고, 정신이 없으며,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빚진 시간들을 기억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내가 당신의 시간을 먹고 자랐듯, 누군가 나의 시간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대하면서.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빚진 시간들을 기억하며 따듯한 마음으로 자신의 시간을 내어 줄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당신의 시간을 먹고 자란 나는 오늘도 참 건강하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연락을 돌려야겠다. 아무 용건 없이,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시간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