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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Aug 05. 2016

당신의 노래들

같은 노래를 듣는다면 내가 당신을 이해하게 될까요


출근길 버스, 옆에 선 남자의 이어폰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온다. 아직 잠에 취한 사람들이 손잡이에 겨우 기대 선 이 시간과는 어울리지 않게 강렬한 비트의 음악이다. 적막한 출근 버스에서 사람들은 이어폰 사이로 흘러나온 그의 노래를 함께 듣는다.


문득 그가 어떤 일을,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궁금해진다. 저렇게 크게 노래를 들으면 귀는 괜찮을지도 궁금하다. 음악이라는 것이 참 그렇다. 취향도 사람 수만큼이나 제각각이고 음악을 즐기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시간을 채우는 일부이고, 누군가에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음악은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고, 낯선 곳의 문을 여는 열쇠다. 비록 노동요로 아이돌의 노래를 듣고 몇몇 인디밴드의 음악들로 구성된 좀처럼 변화 없는 플레이리스트를 가지고 있지만 음악은 늘 예상치 못하는 순간 나를 자극한다. 


컨트리 뮤직을 처음 들었던 건 열여섯 크리스마스 때였다. 나의 첫 펜팔 친구 클레이의 크리스마스 선물 소포에는 달콤한 과자류와 좋아하는 풋볼팀의 기념 티셔츠 그리고 컨트리 뮤직 장르의 CD 한 장이 들어있었다. 사실 중학생이던 내게 음악이 중요했다기보다 친구가 준 CD를 재생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CD를 들으며 친구에게 보낼 선물 리스트를 작성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처음 알게 된 파란 눈의 친구는 내가 열여덟이 되던 해 다섯 번째 수술을 받는다는 메일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없었다. 벌써 십 년이 지났고 몇 번을 이사하며 망가진 CD를 버리지 못하는 건, 종종 뇌리를 스치는 그 리듬들이 클레이를 추억하게 하기 때문이다. 


에이브릴 라빈을 좋아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 덕분이었다. 에이브릴 라빈 노래를 듣고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던 친구의 말에 CD를 사서 듣다 보니 정말 좋아졌다. 노래에서 들리는 에이브릴 라빈의 억양이 마음에 들었달까. 


고3이 되면서 연락이 끊겼던 이 친구와 24살이 되어 우연히 다시 연락이 닿았다. 오랜만의 편지 한 통에 쇼팽의 CD가 동봉되었는데 우리의 연락만큼이나 오랜만에 듣는 클래식 선율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주말 오전에 즐겨 듣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색함 없는 우리 사이처럼 친구가 추천하는 음악들은 별 거부감이 없다.


영상작품마다 죽음에 대해 혹은 불편한 무언가에 대해 다루는 선배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종강기념 술자리에서 그가 헤비메탈 밴드의 리드보컬이며 어쩌다 헤비메탈을 좋아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듣고 난 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긴 머리에 스키니진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하는 이 남자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의 음악을 듣고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 자동차를 타고 갈 때마다 크게 뽕짝을 트는 아빠가 너무 창피해서 차를 타면 내가 먼저 음악을 선점하기 바빴는데 어느 날 문득 아빠 차를 타고 가며 음성파일에서 나오는 뽕짝을 몇 소절 따라 부르는 아빠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졸려서, 지루해서 뽕짝을 들었다는 아빠에게 커피 한잔을 건네고 하루빨리 면허를 따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아빠는 '큰 차'가 제일이라며 면허 따면 피곤하다고 답하셨지만...




가장 외롭다고 느껴지던 순간부터 인디밴드의 노래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장난스러운 가사에 담긴 진심을 느끼며 괜히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나란히 벤치에 앉아 '우리의 노래'라며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던 그를 추억하기도 했다. '우리의 노래'라는 말이 간지러우면서도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외롭던 순간의 나에게 인디밴드의 노래들은 정말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브로콜리너마저로 시작해서 가을방학, 전기뱀장어, 슈퍼키드, 스탠딩에그, 슈가볼, 에피톤 프로젝트, 커피소년, W, 오지은 등등 많은 이야기들이 마음에 남아 각각의 추억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점점 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이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래도 가끔은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앞 뒤가 꽉 막힌 꼰대 상사가 듣는 노래는 무엇일까. 


그 노래에 담긴 그 사람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함께했던 누군가 추천한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담아놓고 잊고 있다가 그 노래가 재생되면 난해한 멜로디와 몇 마디 안 되는 노랫말에 당황을 하면서도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이 노래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왜 내게 이 노래를 들어보라고 했을까. 적어도 노래가 재생되는 동안 당신을 한가득 생각한다. 


우리가 같은 노래를 듣는다면 서로를 조금은 이해하게 될까? 오히려 서로 너무 다름을 느끼며 돌아서게 될까. 그래도 당신의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 나는 조금 더 당신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매일 당신의 귓속을 가득 채우며 마음에 담고 있는 노랫말이, 멜로디가 무언지 알게 된다면 인간적인 모습의 당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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