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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Jul 31. 2016

Let it be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 어긋날 땐 그냥 내버려두자 

두 달 전부터 꼼꼼히 준비한 필리핀 여행을 취소했다. 짐도 다 싸놓았고 연차도 신청한 상태라 그저 캐리어를 끌고 집 밖을 나서기만 하면 되는데, 아파서 몸을 좀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난밤 위통과 두통이 있긴 했지만 약을 먹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출발 전 날 아침부터 병세가 심해지더니 출발 당일에는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 콕콕 바늘로 찌르는 듯한 위통과 땅이 뒷목을 잡아당기는 것 같은 피로감과 무력감에 필리핀행 대신 병원으로 향해 입원이라는 것까지 하게 되었다. 

오래 준비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한 적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초중고 12년 간 개근상을 받았던 내가 필리핀 여행을 취소하고, 일주일 간이나 출근도 못하고 꼼짝없이 환자로 누워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병원에 누워 링거를 맞으면서도 내내 이런 내 상태를 믿을 수가 없었다. 최근 무슨 일만 계획하면 괜히 몸이 아프거나 생각지도 못한 일로 일이 어긋나곤 했다. 처음에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고 컨디션과 주변 환경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괜히 화가 나서 또 다른 일을 계획하고, 그 일이 또 틀어지기를 벌써 몇 차례... 무기력함이 이런 느낌이구나 싶다.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시기가 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일마저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때가 있다. 치밀하게 세운 계획이 말도 안 되는 일로 가볍게 어그러질 때가 있다. 최근 굳게 맘을 먹고 노력을 했지만 번번이 어긋나 혼자 전전긍긍 힘들어하다가 문득 마음이 어렵던 시절 들었던 노래를 떠올린다. 가사를 읊조리며 괜찮다, 괜찮다를 반복했지만 결코 마음으로 받아들이긴 어려웠던 노래...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내가 고민의 때에 빠져 있을 때
Mother Mary comes to me
어머니께선 내게 와서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지혜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순리에 맡기거라
And in my hour of darkness
내가 암흑의 시기에 있을 때도
She is standing right in front of me
그녀는 내 앞에 다가와서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지혜의 말씀을 해주셨어요, 순리에 맡기거라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그대로 두거라, 순리에 맡기거라
Whisper words of wisdom, Let It be
지혜의 말을 속삭였죠, 순리에 맡기거라

-비틀스 'Let it be' 

내색하진 않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난 믿지 않았다. 굳은 의지만 있다면 뭐든 극복할 수 있고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마음이 바빠서 애매한 상황들이 생기면 바로 해결해 버리거나 그럴 수 없는 일은 아예 신경을 꺼버리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해왔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리 급하지도 않은 일들을 허겁지겁 해왔던 것 같다. 마치 피아노 학원에서 진도 카드의 동그라미만 빽빽하게 채우며 거짓말하던 일곱 살의 나처럼 말이다. 

지금까지의 행동에 딱히 후회가 남진 않지만 이대로 계속 모든 일을 '나'의 손으로 내 맘대로 해결하려다가는 지금처럼 무기력감에 빠져 결코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틀스 노래의 가사처럼 순리에 맡기고, 그냥 내버려두는 순간이 우리 삶에는 분명 필요한가 보다. 누군가는 이 시간을 '쉼'이라 하고, 누군가는 '기다림'이라고 부른다. 우리 엄마는 이 시간을 그저 '시간에 기대는 일'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수많은 노력을 했지만 과연 그 시간들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이어리에는 스케줄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 내게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숙제를 하듯 모든 일을 해치우고 나니 마치 기계처럼 모든 일을 마주하는 나를 발견한다. 어쩌면 앞의 모든 일들이 의미를 찾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일들이 자꾸만 삐걱대는 것일지도 모른다. 



폭풍 같은 시간 뒤에 찾아온 무기력감을 느끼고 나니 이제 조금은 시간에 기대어 볼 마음이 생긴다. 처음에는 이런 기다림이 더욱 무력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냥 조금만 더 참고 이 상태를 그대로 두어야겠다. 순리대로 이 모든 상황이 지나가길 기다려야겠다. 내가 억지로 했던 모든 일들이 실패하도록 내버려두고, 허겁지겁 해치우려던 많은 일들을 내려놓고 그저 순리대로 시간이 지나길 기다려야겠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이 시간이 지난 후에도 분명 하게 될 것이고, 남을 인연이라면 남아 있을 것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뭐 그게 순리라면 따르는 수밖에... 돌아오는 한 주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고요하게 지나길 기도해본다.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는 법.


Let it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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